예레미아 44:15:-23
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2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이르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고관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셨고 그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아닌가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여성이 참 중요하죠. 한국 교회 부흥 뒤에도 어머니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 부부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남편 보다 아내 먼저 언급된 것이 아마 브리스길라가 신앙 세대주 되어서 남편을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여성이 참 중요할까요? 부부목장도 권찰님이 중요하잖아요. 그것은 하나님이 여자를 돕는 베필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돕느냐, 무엇을 위해 돕느냐에 따라서 남편 뿐만 아니라 가정도 공동체도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이 여인들의 선택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남유다는 망했고 총독 그다랴도 암살 당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한 애굽으로 기어코 내려가서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이 때에 아내들이, 여인들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좋을텐데 앞장서서 이방의 여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럼 어떤 이방 신을 섬긴 걸까요? 이름이 아스다롯입니다. 사사기에서 많이 들었던 우상 바알의 아내인 아스다롯입니다. 아스다롯의 뜻은 번식하다 입니다. 많이 낳고 기르다라는 뜻입니다. 그당시에는 번식하는 게 힘이고 능력이니까 풍요의 신, 다산의 신으로 불림 받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번식이 무엇일까요? 아마 성공일 것입니다. 성공의 신 입니다. 남편 성공, 자녀 성공을 목적으로 둔 여인이라고 한다면 이 우상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여신의 이름은 하늘의 여왕 이라고 불립니다. 요즘 시대의 여성들의 관심과 목적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하늘의 여왕이라고 불릴까요? 외모가 높임을 받고 돈이 높임을 받으니 외모의 여왕, 돈의 여왕이지 않을까... 자녀가 있는 분들은 입시가 중요하니 입시의 여왕을 쫓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만족이 되지 않아서 무언가 채워줄 다른 우상을 찾는 것입니다. 이정도 쯤이야 하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절에 하나님이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고... 그리고 22절에 너희의 악행과 가증한 행위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끊어내지 못하는 남유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을 통하여서 그렇게 끊어내기 어렵고 힘들지만 꼭 끊어내야 할 하늘의 여왕의 모습 3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늘의 여왕은 듣기를 거절하게 합니다.
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 앞에 모든 여인, 모든 남자, 모든 사람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서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그렇게 언급하기 전에 여인들에 대해서 자기 아내가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것을 아는 남자들의 여인들에 대해 언급한 것은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이렇게 여성들의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서를 얘기 할 때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합니다. 그럼 여자는 과연 무엇일까요? 고개를 한 번 돌려보십요. 목이 돌아야 머리가 돕니다. 남자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할지라도 그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합니다. 42장에서는 비록 순종은 안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기는 했는데 이제는 듣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에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들이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산다고 합니다.(15절) 바드로스라는 지역은 애굽 국경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 남쪽 깊은 내륙 지방에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애굽 땅 깊은 내륙에 있으면 바벨론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사실 애굽에서 우상 숭배의 심장부였습니다. 이곳에 옛날 부터 정착해 살고 있는 유대인 무리들이 조금 있었다고 합니다. 동족들이 있으니까 거기에 가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울리는 무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죄 짓는 무리 속에서 내가 죄 한 번 짓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 때문에 우상 숭배에 훨씬 더 쉽게 다가갔을 것 같습니다. 이 바드로스 라는 지역에 고대 도시 테베가 있습니다. 테베는 지금 이집트의 룩소르 라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가면 지금도 고대의 벽화가 그려진 큰 기둥이 있는 신전이 위용을 자랑하면서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입이 벌어지더라구요. 참 멋있다 그 때는 참 대단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봐도 대단한 위용인데 그당시 남유다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어마어마 했을 것입니다. 남유다는 완전히 황폐해졌는데 이 애굽의 시전은 어마어마 하고 애굽의 문화, 애굽의 종교, 애굽인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은 영향을 받았고 점점 말씀에서 멀어졌을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점점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제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인데 어른이 되어 살고 싶은 동네가 롯데타워가 잘 보이는 서울 잠실이라고 합니다.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동네는 판교 바로 옆에 있는 사성동이라는 동네입니다. 아시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마치 나사렛처럼 좀처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동네에 제가 살고 있습니다. ^^ 이 동네는 공장이 많아서 밤에는 편의점 밖에 갈 데가 없는 동네인데 제 아들이 그런데서만 있다가 잠실에 가서 롯데타워를 보니까 눈이 휘둥그레 질만한 대단한 것들이 정말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잠실에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믿음 대로 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황폐해진 남유다로 가면 볼 게 하나도 없고 소망이 없을 것 같은데 자녀들이 애굽에 살면서 신식교육을 받으며 살면 참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점점 말씀 듣기가 싫어집니다. 이미 그들 안에 우상이 자라나서 귀를 막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니까 왜 하나님이 그토록 애굽에 가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조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살면 내가 안전한가? 하는 질문보다 과연 내가 어디에 있어야 말씀을 듣기에 적합한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말씀 듣는 구조 속에 있지 않으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애굽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니 예레미야도 너무 하찮게 보였을 것입니다. 애굽의 왕, 바벨론의 왕은 저렇게 건재한데 이 예레미야는 너무 무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네가 하는 말보다 내가 하는 말을 더 믿고 살아가겠다, 하나님 말씀보다 내 판단을 더 믿고 이것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내가 맹세까지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늘의 여왕을 숭배해 보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황폐한 가정, 황폐한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제발 그만 좀 얘기하세요, 이제 내가 지금 얼마나 잘 살수 있는지 보여드릴게요 라고 증명하려고 헛된 맹세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때마다 예레미야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예레미야 앞에 귀를 막고 인생의 시간을 허비할 때가 많습니다.
제게도 예레미야가 늘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양육해주시는 담임 목사님이 계십니다. 제게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은 '최목사는 묻지는 않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뚱뚱한 목사에게는 들을 게 없다고 촌철살인을 해주시는 권사님도 계십니다. 제가 갖 목자가 되었을 때 저보다 연세가 있으신 부목자님이 제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목사가 아니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귀를 막고 듣지 않겠다고 무시한 예레미야가 계십니다. 지금은 천국에 가신 장인 이십니다. 저는 25살에 결혼했습니다. 처음 장인을 뵈었을 때 70대 중반의 연세이셨습니다. 처가에 가서 뵌 장인의 모습은 인생의 여러 실패를 경험하고 자녀들에게 수억원의 빚을 남기신 채 부엌 끝 작은 방에 자신 만의 동굴을 가지고 사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방에는 겹겹이 쌓여진 수많은 책과 본인만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와 TV가 전부였습니다. 하루 종일 방에서 책을 보시거나 신문 스크랩을 하시는 게 하루 일과 이셨습니다. 식당에 가시면 고성을 지르거나 식당 아주머니들과 싸우는 일이 종종 많아서 가족들과 함께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3살의 나이에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서 평생 외로움에 쌓여 사셨는데 그 외로움을 해결하려 여러가지 인생의 사셨지만 또 실패를 겪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굳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을 풀어보고자 또 인생을 증명하려고 책도 읽으시고 자랑을 하지만 누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제가 처가에 가면 장인이 항상 저를 부르셔서 한 시간 정도 연설을 하셨습니다. 책에서 보셨던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목사는 이래야 된다는 이야기를 제게 계속 하셨습니다. 제 마음에는 이미 너무나도 인생의 실패를 맛보고 작은 동굴에 거하시는 아버님이 무시가 되는 것입니다. 내게 물려주실 것은 없거니와 빚을 갚아드려야 되는 현실을 남겨주신 아버님에 대한 무시와 원망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아버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듣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은 만나면 종종 기쁘게 저를 자신의 앞으로 초대하셨지만 저는 그 앞에 나가서 듣는 척 연기는 했지만 14년 동안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남유다의 사람들처럼 내 안의 무시가 우상이 되고 내 안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상이 되고 차별이 우상이 되고 원망이 우상이 되어 완고한 마음이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연하다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2020년 1월 88세의 나이에 고관절을 다치시면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요양 병원에 계시면서 몸이 쇠약해지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참 많은 서운함을 그리고 많은 빚을 남겨주었지만 그래도 자녀들은 아버지가 구원 받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13살에 모든 가족을 두고 혼자만 내려오셨으니까 평생 아버님은 북에 계신 오마니를 그렇게 그리워하셨습니다. 일평생 오마니를 한 번 뵙는 것이 소원이셨다고 말씀을 늘 하셨는데 금강산에 몇 번 다녀 오시면서 이북 땅에 가신 것 만으로도 기뻐하셨습니다. 자녀들이 예수 믿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와 바램과는 달리 아버님은 예수가 길이요 진리인 것은 믿겠지만 생명인 것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오마니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만약 오마니가 천국에 계시지 않으면 그 곳은 나에게 천국이 아니다 라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에 저는 애통한 마음이 들기 보다 빨리 그냥 믿으시지 이것마저 왜이리 힘들게 하실까하며 무시가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무시가 되면 회개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도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고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북한에도 지하 교회가 있다고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혹 어머니께서 누군가에게 복음을 듣고 천국에 가셨으면 어떻게 합니까? 혹시 어머님이 지금 천국에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버님이 꼭 천국에 가셔서 그 어머니를 꼭 찾아보세요.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다는 것을 떠나서 우리 아버님에게는 복음으로 들렸습니다.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2020년 1월 6일 임종이 가까워서 온 가족이 모여서 목사인 제가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아버님의 귓가에 누가복음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는 말씀을 읽어드리며 '아버님,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대요. 죄 사함을 받고 천국 문 앞에 서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들어가신다는 것을 믿으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버님을 둘러싼 자녀들이 나중에 꼭 예수 믿고 다 천국에서 만나요 아버님 먼저 가 계세요 라고 인사하고 30분 후에 소천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님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예레미야를 묵상하면서 아! 나는 14년 동안 그렇게 많은 말을 하시는 아버님 앞에 앉아 있었지만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버님은 사위라고, 사위가 목사라고, 또 자녀들이 기도하면서 바람이 천국 문 앞에서 예수 이름으로 들어가세요 했을 때 아멘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신 아버님이 나보다 옳구나. 하나님이 보실 때 누가 예레미야일까요? 제가 예레미야 일까요? 아니면 아버님이 예레미야일까요?
적용 질문
- 내가 꿈꾸는 여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신 예레미야는 누구인가요?
- 내 말을 증명하려고 헛맹세까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말씀을 듣고 거절하는 나보다 듣고 순종하는 그가 나보다 옳도다가 인정되나요?
2. 하늘의 여왕은 본래 하던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듣지 않으면 이렇게 엉뚱하게 해석하고 결국에는 삶의 결론이 틀려지는 것 같습니다.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에 임한 심판의 원인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섬겼던 하늘의 여왕 우상 숭배를 끊어서 생긴 결과라고 결론내립니다. 이렇게 해석이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구속사를 모르고 인생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배우자가 배신하고 사업이 힘들어지고 자녀가 속을 썪이고 몸도 아파지는 가운데 아, 내 인생이 끝났구나, 망했구나, 저주 받았구나, 이혼 외에는 답이 없어, 죽을 것 밖에 답이 없어 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저도 행복을 목적으로 두고 결혼했습니다. 20년 전에 전도사로 사역할 때 사례비가 30만원 정도 였는데 아내가 직장에 다니니 아내와 결혼하면 그래도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부담은 덜 하겠다, 아내 덕을 보며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장이니까 가정을 책임져야지 하는 마음보다 아내가 조금 버니까 아내 뒤에 숨어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랑은 하고 그 위에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책에 손을 얹고 서약하고 평생 사역자 가정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돈 때문에 힘든 삶은 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돈은 모아서 둘이 유학을 가거나 선교지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 듣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져버리니까 제가 결혼을 잘못했구나, 결혼을 괜히했구나 하고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결혼했지? 하며 마치 우상 숭배를 폐한 후부터 궁핍해졌다고 해석하는 그들처럼 결혼하면서부터 내 삶이 망가졌다고 해석을 하고 있더라구요. 우리들교회에 오고 나서도 한동안 이것이 해석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양육을 받고 진짜로 예레미야 같은 분들을 통해서 계속 얘기를 들으면서 2016년 1월 30일 우리들교회에 와서 들은 말씀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그날 말씀이 불신결혼이었습니다. 그 때는 내가 믿는 사람과 교회에서 결혼했는데 무슨 불신 결혼? 하며 내 이야기가 아니야 하면서 잘 듣지 않았는데 주님께서 그 날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시면서 '대규야, 네가 한 것은 믿음으로 한 게 아니야. 너무 이기적으로 너를 생각하며 한 결혼이야. 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 반을 버리고 상대방의 반을 채우는 것이 신결혼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상대방이 다 나를 맞춰주기를 바라는 결혼을 꿈꿨구나, 이게 불신 결혼이 아니고 뭐냐? 라는 마음이 제 안에 들더라구요. 이것이 저의 회개였고 적용이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정말 잘못된 해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벌이 당장 내려오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참으심을 우상의 축복으로 바꿔서 해석을 한 것입니다. 폐한 후부터 우리에게 이렇게 힘들어졌다 라고 폐한 때가 남유다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 때입니다. 남유다 요시아 왕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하나 발견한 겁니다. 율법책을 펴보니 회개할 것이 너무 많은 거에요. 그래서 옷을 찢고 회개하며 산당을 다 허물자, 하늘의 왕 숭배하는 것을 다 금지시키자 하는 결단을 내리며 행했습니다. 너무 잘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요시아 왕이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 나가서 갑작스럽게 죽게됩니다. 성경은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역대하 35:22 요시아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요시아가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 말을 무시하고 나가 싸운 것입니다. 거기서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사람들은 옛날을 상기하고 떠올려 보면서 요시아가 죽은 것은 하늘의 여왕 숭배를 폐했기 때문에 그런 재앙이 온 것이라고 해석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기억에 의존하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왜곡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던 허위 기억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두 사람이 잘못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잘못된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집단이 잘못된 기억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집단적 오기억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만델라 효과라고 합니다. 예전에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2009년에 투병을 하고 있다고 뉴스에 보도가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만델라가 1980년대에 교도소에서 죽었던 게 아니야? 하고 기억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서 왜 그런가 조사해보니 그 때 당시 사람들이 뉴스에서 만델라가 결핵에 걸려 아프다는 보도를 들었고 뒤이어 정치 지도자가 결핵에 걸려 많이 죽는다는 보도를 들으며 사람들이 만델라가 죽었구나 생각하고 그 기억을 가지고 오랫 동안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이 위험한 것 같습니다. 기억보다 기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큐티를 적어서 해야 하는 이유가 너무도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어요, 하나님을 만났어요, 깨달았어요 그런데 옛날 받은 은혜를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기억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유다 사람들이 현실이 힘들어지니 과거를 미화합니다. 옛날에 좋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아 하면서 그 때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 때로 돌아가는 게 우리가 살 길이야 하면서 그 때를 떠올립니다. 지금이 힘드니 과거 그 사람과 만났던 것을 좋았다고 생각하고 그 때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떠올려서 생각한 자리가 우상 숭배하는 자리 밖에 없었습니다. 왜요? 그것은 우리 조상, 우리 선조, 우리 왕들, 우리 고관들이 성읍과 거리에서 행했던 것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 밖에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에 옛날에 참 좋았어 하며 떠올리며 가고자 하는 자리가 그 자리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이혼과 재혼과 혈기와 다툼과 중독과 술과 담배와 폭력, 자살, 쇼핑, 폭식, 음란물, 여러가지 비방과 비난하는 말들, 악한 말들, 우리가 너무 너무 싫어했던 것들이 어느새 우리에게도 그 모습이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배어 있는 죄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생각은 의식의 영역이지만 말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해 라는 말을 합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악한 것이 내 몸으로 익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본래 돌아가려는 자리를 끊어내고 새롭게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내는 훈련인 것입니다. 큐티하고 예배하고 목장에 오는 것을 새롭게 몸으로 익히는 겁니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예날의 우상을 섬기는 자리가 아니라 내 안에 새롭게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이 참 어렵습니다. 잔소리 한다고 안 바뀌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시험 당할 때, 내가 상처 받았을 때,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혈기가 올라올 때, 사람에 대해 너무 회의감이 들 때, 그럴 때에 내 성질대로 행했던 것, 내 부모님들이 그렇게 갔던 것, 그냥 내가 과거대로 본래 행했던 그 자리로 가지 않고 하나님께 가려고 하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자녀 양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 우리는 절대 묻지 않는데 이제는 조금 묻습니다. 본래에서 이제는 이 된 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해놓고 저는 안하면 안되잖아요. 나도 자녀들이 우리 아빠를 생각했을 때 내가 저 자리로 돌아가야지 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딸이 대학에 다 떨어져서 우는데 제가 한숨을 푹 쉬고 있으니까 딸이 '아빠, 왜 한숨을 쉬어, 한숨으로 나를 뭐라고 하는 거야 ?'라고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고 조금 한 숨 쉰거야. 아빠도 한 숨 쉴 수 있잖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딸이 엄마에게 아빠가 한숨 쉬며 뭐라고 한다고 고발을 하는 겁니다. 그 생각이 나서 우리 딸이 이렇게 힘들 때 돌아가려고 하는 자리가 뭘까? 아빠의 한숨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으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에 카톡을 보냈습니다. 네가 시험 점수 받고 울음을 터뜨릴 때 아빠가 잘했어, 고생했어 하며 안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가 욕심이 많아서 한숨으로 네게 얘기했다. 미안해. 잘했어 수고했어 사랑해. 하며 딸이 본래 기억해야 할 자리를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딸의 답변은 '갑자기 와그라노?' 였습니다. ^^
우리가 이렇게 힘겹게라도 적용하고 가정 지키고 말씀대로 목장 가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뭔가 떠올렸을 때 엄마, 아빠가 본래 그 자리에 갔구나, 나도 인생의 여러가지 시험이 올 때 떠올릴 자리가 술 마시고 망가지고 죽어야겠다 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갔던 그 자리로 가야겠다고 하면 너무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 양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우리가 본래 대로 행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를 숭배하고 세상을 숭배하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숭배하기 위해서 분향도 하고 전제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죄 사함의 은혜가 예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 없는 죄 사함이 절대 없습니다. 숭배는 회개가 없습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하려는 거래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과의 거래처럼 여기면 그것이 본래 숭배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새가족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청년 새가족 중 중,고등학생 때까지 다니다 떠났다가 다시 오는 청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청년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예배를 잘 드렸는데 성인이 되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문득문득 부모님이 계신 교회에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은혜가 있을까요?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본래 돌아와야 될 믿음의 자리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자매 청년의 간증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혈기 내고 술 마시고 빚지고 가출하고 그런 아버지와 싸우는 엄마는 마음이 상했는지 하루이틀 자기를 놔두고 가출을 해서 홀로 있는 불안감에 자랐답니다. 책상 서랍 한켠에 늘 이혼 도장이 찍힌 이혼 서류를 보고 노심초사하며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청소년이 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답니다. 자해하고 학교도 안 가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니까 청소년부에서 나눔을 하는 것이 참 좋았고 말씀이 들려 은혜도 받으며 좋은 시절을 보냈답니다. 그러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부모님의 사랑에 갈급했던 것이 남자 친구한테서 외로움을 채우고 사랑을 얻고자 불신 교제를 끊임없이 하고 혼전순결도 지키지 못했답니다. 그런 와중에 부모님은 교회에 정착하시고 아빠의 방황의 주기는 짧아지고 두 분이 목자까지 되시면서 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이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때가 되니 다시 돌아와서 양교도 받고 취업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니 취업도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취업이 되어 돈을 버니까 그 때 뿐이고 내가 이렇게 힘들고 못 먹으며 돈을 버는데 왜 십일조를 이 돈으로 드려야 되냐, 왜 혼전 순결을 지켜야 되냐 하며 다시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딸을 위해서 늘 기도하며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 한 통에 딸의 마음이 움직여서 다시 처음으로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일이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교회로 다시 돌아와서 예배 드리고 부서 섬기며 다시금 예배를 회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아,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기도를 하나도 놓치않고 계속 주목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더라구요.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던 이 청년은 때마침 봉헌을 하게되는 날 마음에 감동이 되어 십일조를 드리는 적용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이제는 인과응보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진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런 은혜가 있을까요? 왔다 갔다 들어갔다 나왔다... 부모님이 자녀가 다시 돌아올 자리를 잘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적용질문
- 자꾸 돌아가고 싶은 옛 자리는 어디인가요?
- 구속사가 아니라 세속사로 해석해 잘못 결론 내린 것이 있나요?
- 내 자녀가 돌아올 신앙의 자리는 준비되어 있나요?
3. 하늘의 여왕은 교묘한 혼합주의로 포장합니다.
19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여인들이 당당하게 얘기를 합니다. 우상 숭배가 참 무서운 것이 하나님과 우상 둘 다 섬겨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착각인 것 같습니다. 여인들이 하늘의 여왕 숭배가 엄청난 배교가 아니라 굉장히 가정적이고 아름다운 문화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당시 애굽이나 바벨론의 아스다롯을 섬기는 우상 숭배는 사실 음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전 안에는 신전 창기와 함께 음란한 일들이 계속 많이 이루어지는, 봤을 때 이건 아닌데 라고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남유다 사람들이 가정에서 숭배하는 하늘의 여왕 숭배는 그렇게까지가 아니고 뭔가 괜찮아 보이는 모습인 거에요. 분향을 합니다. 분향은 그 집 지붕 위에서 조그만한 제단을 쌓아놓고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보면서 하늘로 피워올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도라고 하는 거지요. 생각해 보세요. 밤하늘에 별은 빛나고 그렇게 불을 피워서 향이 쫙 올라가는 겁니다. 꼭 캠핑같지 않습니까? 전제는 포도주나 독주를 땅에 부어버리는 겁니다. 땅에 쏟아서 하늘에서 비가 내려 대지를 적셔달라고 기원하는 액션입니다. 많이 받고 싶으면 많이 쏟는 겁니다. 많이 쏟으면 많이 받을거야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마지막으로 숭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가져와서 모양을 만듭니다. 여신의 모양, 여신을 상징하는 별 모양도 만들고 초승달 모양도 만들면서 빵을 구워서 제사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나눠 먹습니다.
예레미야 7: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영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지붕에서 과자 굽고 향을 피우고 술을 붓고 온 가족이 하하호호 하면서 나눠 먹습니다. 한마음으로 각자 자기 일을 척척 잘하는 것을 보니 겉으로 볼 때는 너무 좋아보이고 따듯해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본질은 거기에 하나님이 없는 거짓 화평이기 때문에 주님이 노할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보이니까 이게 뭐가 문제에요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행하는데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라며 남편의 허락을 받고 하는 거에요, 남편 허락 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닙니다. 남편 뒤에 숨어서 핑게 대고 있는 게 아니라 민수기 30장에 나와 있는 서원과 맹세의 율법을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아내나 딸이 서원, 즉 맹세를 할 때 아버지나 남편이 허락을 해줘야지만 할 수 있는 게 율법에 나와있습니다. 내가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하는데 남편이 안돼 하면 율법적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남편이 허락을 해줘야 맹세할 수 있다고 나온 율법대로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말씀을 안 듣겠다며 말씀을 거절하면서도 율법의 한 조각 만을 들고 와서 나는 지금 잘하고 있어요 하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허락을 받았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저 그냥 교회에 잘 다녀요 라고 하는 한마디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과 방향이 성공, 자녀교육, 돈을 잘 사용하는데 있어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무 문제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지 않나요?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니 문제가 없지 않나요?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기복은 이렇게 우리 신앙에 가장 위험한 혼합주의로 찾아옵니다. 너무너무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속에는 온갖 우상들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필요합니다. 저것이 필요합니다. 하고 구하면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기복인 것이 아니라 기복은 하나님 없이 내가 누리고 싶은 평안입니다. 하나님 없이 화목하고 단란한 분향과 전제를 드리는 게 무슨 문제에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찾아온 혼합주의의 모습입니다. 고난을 많이 당한 분들은 이것마저라도 있으면 좋지 않겠나, 우리 가족이 너무 화목하지 못하니까 예수가 없어도 우리 가족이 화목하면 안될까?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늘의 여왕을 쫓는 것이다. 비록 화평이 없고 검이 있다 할지라고 화평이 없고 불화가 있다 할지라도 네게 예수가 있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겁니다. 오늘날 혼합주의는 세련된 문화의 옷을 입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재미있으면 돼. 힐링되면 돼.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면 돼. 라고 하면서 무속과 전생과 온갖 불륜과 성적인 혼합주의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가운데 찾아옵니다. 우리가 비판 없이 이것을 받아들이면 이것이 악의 평범성이 되어서 나는 모르고 했어요 하는 문제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여왕을 무시해야 됩니다.
제가 법률 스님의 영상을 봤습니다. 한 여성이 질문합니다. 결혼하고 아이 두 명을 낳고 살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또다른 남자랑 만나서 재혼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는게 너무 힘들어요 하며 이 여성 분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제가 어디서부터 잘못한 걸까요? 라고 심각하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왜 잘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한 번도 못한 결혼을 두 번이나 했는데 얼마나 잘한 겁니까? 나도 없는 자녀를 두 명 씩이나 낳아 길렀는데 뭐가 잘못된 겁니까? 잘 살았습니다. 잘 살았다고 생각하고 사세요. 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교회는 매일 죄를 보라고 하는데 불교는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니 내가 불교를 좋아합니다. 라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회개하라보다 잘 살았다가 듣기는 좋을 수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회개하라가 듣기에는 힘들 수 있지만 그것이 나를 살리시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
- 내 신앙은 팔복과 기복은 몇프로씩 있나요?
- 예배드리고 목장에 나가니 이것쯤은 괜찮겠지 하고 있는 타협은 무엇인가요?
- 문화와 재미라는 이유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하늘의 여왕을 쫓아내라는 예레미야 말씀을 들은 그들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시간 순서상으로 예레미야 44장은 예레미야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이 설교 후에 예레미야의 설교는 없고 예레미야가 어떻게 되었다는 얘기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 전승에 보면 예레미야는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끝까지 듣기를 거절한 자들의 손에 의해서 아마 순교 당했을 겁니다. 자신들이 끝까지 옳다고 여기는 남유다 백성의 손에 말입니다. 혹 여기 있는 분들 중에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해야 할까? 내가 이렇게까지 적용을 해야 할까? 이렇게까지 내가 가정을 지켜야할까? 듣지도 않는 말을 40년 동안 한 예레미야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할까? 그 예레미야가 결국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은 이 예레미야의 끝이 비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보라는 하나님의 존엄한 말씀 대로 남유다 백성은 다 멸망하고 아주 극소수만 남아 남유다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했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금 주님은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돌에 맞아가면서 이런 일을 해야될까 라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은 것은 우리가 죽어서라도 우리가 남긴 말, 우리 유언이 우리 자녀와 가족들의 마음에서 결국에는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지 않아도 끝까지 외쳤던 예레미야의 말처럼 끝까지 듣지 않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듣지 않는 그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외쳐야 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안듣거든요. 그리고 저는 예레미야 같은 설교자가 싫은 거에요. 저는 베드로와 요나 같은 설교자가 좋은 겁니다. 그냥 설교했더니 3천명이 회개하고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하는 그런 설교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같이 되려고 하니 너무 싫은 겁니다. 그 말을 하기가 싫은 겁니다. 보통은 주일 설교 준비할 때 아내가 설교 잘하라고 제게 잘해주는데 어제는 싸웠습니다. 아버님 얘기를 설교에 쓰면서 제가 안 들었던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했는데 아내가 제게 아버님이 임종 전 마지막 신앙 고백하시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30초 보고 됐어 안봐도 돼 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보며 오늘 설교에 쓸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것에 화가 나서 당신이 듣기는 뭘 들어. 이 영상 하나도 끝까지 못 보는데 하며 엄청 화를 냈습니다. 화내는 모습에 저도 화가 나서 아니라며 남유다처럼 증명하고 항변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맞더라구요. 제가 이렇게 설교를 하지만 내가 안 듣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예레미야를 설교하는 게 힘듭니다. 내가 안 듣는데 들으라고 하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저를 살리시기 위해서 저를 통해 하나님이 또 그 한 분을 살리시기 위해서 하게 하실텐데 여러분의 우상 때문에 듣지 못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 우상을 내려놓고 한 번 들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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