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60:1-12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저의 죄패는 겸손으로 포장된 교만과 온실에서 자라난 잡초입니다. 이것은 예전 전도사로 섬겼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제게 말씀하시곤 했던 말입니다. 그 교회에서 함께 사역했던 다른 교역자들은 여러 고난의 삶을 살다가 주의 종으로 살겠다고 오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약재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유한 가정에서 큰 고난 없이 자라서 그 때는 그렇게 간증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런 인생을 사신 분들을 부르셨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나는 저런 고난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게 담임목사님이 온실재배라고 하셨을 때 한 편으로는 나는 그들과 격이 다르다며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think양육을 받으며 깨닫게 된 것은 온실에서도 잡초가 자란다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시편60편 말씀의 제목은 구원하소서 응답하소서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해주시는가의 내용으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표제를 보면 다윗이 교훈하기 위해 지은 믹담이라고 소개합니다. 시편은 다윗이 아람 나아라임과 아람 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12,000명을 죽인 때라고 합니다. 다윗이 에돔과의 전쟁에서 시작은 패할 위기에 쳐했는데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했더니 그 전쟁에서 대승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시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교훈하기 위해 지은 믹담이라고 합니다. 전체 시편 중 믹담이란 표제로 기록된 말씀은 6편입니다. 16,56,57,58,59,60편입니다. 이 시편의 공통점은 다윗이 고난 가운데 지은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믹담은 원어로는 마음판에 새기다 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새긴 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시편 말씀입니다.
성도님들은 나의 삶의 환난 가운데 있을 때 마음에 무엇을 새기고 계십니까? 우리가 최근까지 묵상한 사도행전의 바울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런 복음의 증거자의 여정,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삶의 여정에 잃지 않고 빼앗기지 않고 지키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결국 상실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킬 수 있는 것보다 지킬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가정을 지키려하고 배우자를 지키려하고 자녀를 지키려하고 나 자신을 지키려 많은 노력과 많은 수고를 하지만 그 무엇도 내 힘과 내 능으로 지키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잠언 4장에 우리가 지키고자 하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상실하지 않고자 하는 모든 것 중에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잠언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많은 것이 있지만 분명히 잠언 저자는 지킬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너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성도님들 가운데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상실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것이 지켜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본다면 그 모든 상실의 시작이 마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을 지키고, 지키지 못함에 따라 우리 삶의 결과를 지금 내가 누리거나, 누리지 못함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내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option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순종치 못하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역사, 충만하심으로 살아갈 때만이 그 맘이 지켜집니다. 그러나 그 맘이 지켜짐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자 또 나의 책임이라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즉 성도님들 가운데 지금 내 마음을 빼앗는 세상의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풍요로움이 나의 마음을 빼앗고 세상의 물질이, 세상의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내 마음을 빼앗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변명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을 빼앗김 당하는 것은 결국 나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 마음은 성령의 역사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켜가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원하십니까? 목장, 직장, 내 사업, 건강, 자녀와 배우자 이 모든 것을 지키기 원하신다면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지키셔야 합니다.
믹담은 마음판에 쓰이다가 아니라 마음판에 새기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쓰는 것과 새긴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쓰는 것은 쉽게 지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긴 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그 마음에 무엇이 쓰여지느냐 하지 않으시고 무엇이 새겨지고 있냐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 가운데 내 마음에 불신이 새겨지고 원망이 새겨지고 서로에 대한 불편함이 새겨진다면 우리 믿음의 삶이 믿음의 열매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이 오늘 말씀의 다윗과 같이 이러한 진리가 새겨지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약속의 말씀에 따라 은혜로 세워지는 귀한 삶이,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우리 앞에 위험이 올 때마다 절대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은 우리 앞에 두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는 위험의 길이고 하나는 기회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험의 길은 잘 보이는데 기회의 길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익숙한 것이 먼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염려하고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보여주시는데 그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려운 길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큐티할 때 하나님은 큐티를 통해 우리의 위기 가운데 기회의 길을 볼 수 있는 눈을 연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과 위기가 왔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주님의 응답하심의 기회로 누리고자 한다면, 그래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한다면 3가지 중요한 진리를 그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1.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는 자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고 구원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이러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랑은 구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는 자가 있고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자가 있고 기쁨이 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이 찾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찾으시고 누구를 기뻐하시고 누구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에돔과의 전쟁에서 패배의 위기를 당했을 때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절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절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이 고백 가운데 깨닫게 되는 첫번째는 이 고난과 환난 가운데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 주권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1,2,3절 모두 '주께서'로 시작됩니다. 나의 삶의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절대 고난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모든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고난과 환난도 다스리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내 인생의 고난이 우연이라는 것과 내 인생의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 중 무엇이 더 마음에 평안을 주겠습니까? 우연이라는 것은 우리는 굉장히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때와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고난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허락하신 주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제게 왜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가끔 어떤 분들은 '저 믿음 자라기 원치 않아요. 그냥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믿음이 자라면 자랄 수록 시험이 커지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내 믿음이 자라가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정도, 깊이, 넓이, 높이는 환난 가운데 들어가야지만 나타납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요 하고 기도하시면...
두번째는 주께서 우리는 흩으셨고 분노하셨으나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하신다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흩으시고 고난 가운데 두시되 바로 오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지금!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현재를 영어로 present 라고 말하는 이유는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present)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물로 주신 하루를 하나님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내 생각, 내 뜻, 내 주관, 내 계획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하루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최선의 기회로 삼기 위해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회복하심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4절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
5절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하나님의 회복하심은 승리의 깃발을 거시고 그것을 진리의 깃발로 세우시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되 주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응답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저는 교회를 분열시킨 죄인입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제가 속한 미국의 unc연합감리교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이슈로 교단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갈라지고 분리되어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단과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는 교단이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에 제가 있었습니다. 저희 교단의 감독님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쪽으로 가기를 원하셨고 저와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 가정을 중수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이 남녀로 하나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동성애에 안수하는 것에 동참할 수 없다는 갈등 가운데 결국 교단을 떠나야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점에 감독님이 눈치를 채고 바로 그 날 저를 정직하고 파면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의 목사안수증을 반납하게 하셨고 교회 건물을 출입할 수 없도록 바로 통제하셨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교회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그 날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임목사님 리더십 아래 30년 동안 순탄하게 안정적으로 성장했던 이민 교회에 큰 진동이 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성도님들 가운데 땅이 갈라지고 흔들리는 위기의 상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umc의 규정에는 각 교회에 교회에 목회자를 파송하는 것, 목회자의 정직과 파면은 전적인 감독의 권한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 어려운 와중에 그 당시 미국 umc 안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 선배 목사님을 찾아뵙고 감독님께 잘 말씀드려서 이 상황이 수습될 수 있도록 중재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제게 하신 말씀은 목사님이 죽으셔야 교회가 삽니다 라는 한마디였습니다. 교회를 조용히 떠나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제자의 삶이요 또한 주님을 섬기는 증인의 삶임을 저도 알고 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성도님께 많이 설교했지만 막상 제게 죽으라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섭섭하기도 했고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왜 내가 죽어야 해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감독님의 이런 결정이 저의 실수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면 제가 실책을 인정하고 떠날 수 있었겠지만 이건 부당하고 불의한 처사로 인해 당한 사건이라 믿었기에 전적으로 나는 속은자이다 라고 분노가 앞섰고 정의와 공의를 실현함을 위해 내가 옳바르게 표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습니다.
성도님들 왜 외도한 남편 앞에 내가 죽어야 합니까? 나를 인정하지 않고 늘 나를 무시하는 아내 앞에 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부모 된 우리가 왜 자녀들 앞에 죽어야 합니까?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삽니다. 내가 죽어야 목장이 살고 교회가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중요한 것은 내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입니다. 어느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더라구요.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님들, 우리가 한쪽만 볼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살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나의 혈기. 나의 분노, 나의 욕심, 나의 탐심, 나의 의심, 나의 자존심 그리고 나의 형님인 이기심(^^)이 죽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는 나 때문에 무너지는 삶입니다.
적용 질문
- 지금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목장에서 직장에서 나는 죽지 않고, 오히려 내가 죽이려 하는 가족, 목장, 직장 식구는 누구입니까?
- 그리고 내가 죽지 못함은 나의 교만입니까, 아니면 나의 두려움입니까?
2. 삶의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의 기회로 마음에 새기려 한다면, "나를 목욕통"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시고 측량하시고 또한 주님께서 너는 나의 소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월요일 묵상한 시편54편 말씀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붙들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나의 생명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만이 붙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8절 말씀에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의 던진다는 표현은 고대 근동 사람에게 앞의 사람에게 신발을 던지는 행위는 상대에 대한 지배의지의 표시로 간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신발을 던지는 것은 당신은 내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이야 라는 뜻입니다. 블레셋은 나로 말미암아 외칠 것이라는 말씀은 기쁨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물리치셔서 블레셋이 패배를 당했을때 그 아픔과 고통의 외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시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욕통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목욕통은 선한 것입니다. 목욕통이라는 표현은 종속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복속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종속과 복속입니다.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확대해서 적용해 본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되고 복속되어서 우리 주의 종에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자,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목욕통은 몸을 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집에 들어오는 문 바로 옆에 목욕통이 놓여졌는데 이것은 가장 낮은 자, 종된 자가 그 집으로 들어오는 주인이나 손님의 발을 씻겨주기 위한 물통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십자가의 적용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배 목사님께서 목사가 죽는 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전 죽기 싫었습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는가 하고 하나님 앞에 항의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앞에 나서서 교회의 분열과 분리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교회를 떠나겠다는 성도님들을 강권적으로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성도님들 지금 혹시 가정에 분열이 있으십니까? 섬기는 목장에 분열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나 사이에 분열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부부 싸움을 하다보면 자꾸 상대방을 원망합니다. 당신만 잘하면, 너희들만 잘하면 내가 화낼 일이 무엇이 있냐? 엄마, 아빠가 화낼 이유가 뭐가 있냐고 하면서 우리 배우자와 자녀를 탓하지만 결국 내가 화내는 것은 내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화의 원인은 절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결국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분리되고 함께 나온 성도님들은 3년 동안 힘든 광야의 여정을 지나야 했습니다. 3년 동안 6번 교회 처소를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늘 잘 준비되고 안정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던 것에 익숙했던 성도님들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장년들은 날씨가 춥지 않으면 야외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에 나오시는 가정들에게는 적잖은 헌신과 결단이 요구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 교회를 이끄시는 장로님과 성도님들은 제게 한 번도 불평이나 불만 없이 그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가 처한 이 사건을 해석하게 하시고 적용하게 하시고 그 말씀으로 기도의 자리에 서게 하셨습니다. 되돌아보면 저희 교인 한 분 한 분이 하나님 앞에 목욕통으로 쓰임 받은 적용을 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내가 주의 종이다, 나는 주님을 섬기는 자다 라고 고백하지만 그 누구도 목욕통으로 쓰임 받기는 원치않습니다. 성공해서, 잘 되서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그릇으로 쓰임 받기 원하지, 나의 인생이, 나의 삶이 옛 부대, 낡은 부대 같이 쓰여지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목욕통으로 쓰임 받는 것, 다른 사람의 종으로 쓰임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인정 받고 우리 성공과 행복을 위해 기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삶의 고난과 환난을 부끄러운 수치로 여길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적용 질문
-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도구로 쓰임 받기 원합니까?
- 나의 가족과 나의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목욕통'으로 쓰임 받는 적용을 하고 계십니까?
3. 삶의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의 기회로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면 사람의 구원은 헛됨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결단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저희들이 지난 3년 동안 교회 건물을 찾고 다니던 수고 끝에 하나님께서 작년에 예배 처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교단과 연회의 부당한 처사에 마음에 큰 갈등이 있었고 저는 옳고 교단과 연회 감독님을 틀렸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또 내가 신뢰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반과 배신을 당했을 때 그 생각은 나는 속은자이고 나를 속인자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메세지가 있었습니다. 그 질문 앞에 제 자신을 말씀으로 묵상해보니 자신의 성품에 속는다는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착함으로 포장된 제 마음의 교만, 온실에서 재배된 좋은 열매도 있었겠지만 제가 깨닫지 못했던 잡초,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지 쳐주셨습니다. 저의 양육이 5주 되었는데 만약 첫주에 제게 말씀을 부탁하셨다면 이런 설교는 안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이 자리에 서서 침을 튀기며 배신 당한 나, 그 원망과 여전히 남아 있는 쓴뿌리, 아픔, 상처, 부당함 등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을 터인데 5주 동안 훈련을 받다 보니 내가 죄인이었구나. 하나님께서 그 분들을 통하여 나를 훈련시켜 주셨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자주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외도하는 남편, 힘들게 하는 자녀들에게 가서 나 때문에 수고 많이 한다고 고백하는데 이것이 저도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 잘 알고 계셨기에 100% 옳으신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담고 있는 탐욕, 탐심 이러한 잡초를 가지쳐 주시고 계십니다. 이번에 think 양육을 받으며 가장 큰 감사는 이러한 제 자신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금은 저희가 떠난 그 교회도 잘 성장해서 최근 창립 40주년을 맞이해서 감사 예배를 드렸고 또 저희 gmc도 4살이 되었는데 은혜 가운데 잘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민 교회 가운데 교회가 분리되어서 두 개로 나눠졌지만 두 개가 잘 성장하고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 자신을 연단시키시면서 이를 위해 함께 수고해주신 옛교회 성도님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지금 이 시간까지 긴 과정을 보내고 저를 위해서 늘 기도하시는 gmc 교역자님들, 장로님들, 모든 성도님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 gmc가 지금까지 10년 넘게 매일 큐티를 하면서 그 때 그 때 주시는 본문의 하나님 말씀과 내용과 간증이 얼마나 우리 삶에 고난이 있을 때 그 삶을 해석해 주셨는지, 또 적용하게 하셨는지, 성도님들의 간증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약재료로 쓰였는지를 이자리를 빌어서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의 모든 수고에 감사드리고 이끄시는 김양재 목사님과 부교역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와서 여러 성도님들도 접하고 양육도 받고 부목사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과제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렸던 두 단어는 '손수건'과 '앞치마'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깊이 뜻을 생각해보니까 '손수건'은 목장에서 서로 울어주고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의 섬김과 자신의 죄인 됨과 악함을 깨닫고 나의 눈물을 닦는 순종을 통해서 목장에 모일 때마다 목장 식구들을 위해서 정성스레 음식을 대접하고 베품의 삶을 살아가는 앞치마의 적용. 제가 감히 이자리를 떠나면서 우리들교회 성도님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성도님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큽니다. 그래서 그 앞치마와 손수건이 우리들교회 뿐만이 아니라 열방에 미국 땅에 있는 여러 가정과 교회를 살리고 세우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좀 더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적용질문
-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은 우리들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 이를 위해 쓰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진정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있으십니까?
지금 나는 나의 마음에 무엇을 새기려 합니까? 삶의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의 기회로 누리고자 한다면 내 마음에 무엇이 새겨져야 하는지 점검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는 자와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고 구원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심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둘째는 나를 목욕통으로 부르신, 섬김의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결단이 그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 > 주일설교녹취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 날이 이르리니(최대규 목사님) (0) | 2025.12.14 |
|---|---|
| 하늘의 여왕(최대규 목사님) (1) | 2025.12.08 |
| 돌이키실 때에 기뻐하리로다(김현우 목사님) (1) | 2025.11.24 |
|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김상건 장로님) (1) | 2025.11.16 |
| 바울을 고발하니라(김현우 목사님) (1) | 202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