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장 1-9절
오늘 말씀을 우리 목사님께서 ‘성령의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주셨는데요. 본문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데리고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누가는 성령의 감동으로 더둘로가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는 내용을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요.
왜 하나님은 바울을 고발하는 내용을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실까요? 증인으로 사는 우리가 이렇게 우리를 향해 고발하는 내용을 직면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우리 가족을 고발하는 ‘아나니아’이고 ‘더둘로’라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잘 보고 갈때, 이 고발을 통해서 오히려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게 하실줄 믿습니다.
고발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지난 4월에 처음 주일설교를 하고나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인생이 막장 드라마 같고 저와는 상관 없는 거 같아서 말씀을 안들었어요.” “왜 맨날 혼외자 얘기만 해요?” 그래서 혼외자 간증을 하기가 사실 부담스러웠습니다. 왜 위출이 될까 하고 생각을 하며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영혼에 대한 애통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만 받고 싶은 제 욕심이 있었습니다. 오직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나아가시는 목사님이 계시기에 인정만 받고 싶었던 제 마음을 회개하며, 성령의 고발을 잘 듣고 오히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통해서 더둘로 같이 고발하는 내 모습은 직면하여 온 천하에 복음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바울을 고발하니라
첫째,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며 사는 것이 복음을 막는 고발입니다.
앞서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벨릭스에게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는 사십 명’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바울이 미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천부장은 비밀리에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했어요. 그리고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서 옵니다.
1-a.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
닷새 후에라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오 일’만에 바울 고소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지금으로 하면 대통령입니다. 얼마나 바빴을까요? 그런데, 바쁜 일을 다 제쳐두고 닷새 만에 바울을 고소할 최고의 팀을 꾸려서 가이사랴로 내려온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왔나요? 먼저 ‘어떤 장로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앞서 바울이 천부장 앞에서 증언할 때, 산헤드린 공회의 반은 바리새인이고 반은 사두개인이라서 부활을 말했다가 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대제사장이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이 온거예요. 그러니 자기 말을 잘 따를 ‘어떤 장로들’을 데리고 왔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한 변호사 더둘로‘입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이라고 해요. 그런데, ‘더둘로’라는 이름이 로마식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보면 유학파가 아닐까 생각해요. 고대 로마는 평소에는 헬라어로 대화하고 법정이나 행정 용어로는 라틴어를 썼습니다. 변호사니까 로마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로 된 법조문을 일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둘로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자유 자제로 사용하는 당대의 수재였을 것입니다. 엘리트입니다. 대제사장이 고용했으니 대형로펌에서 그것도 최고 승률을 자랑하는 잘나가는 변호사였을 거예요.
이런 사람들을 닷새만에 모으고 함께 올 수 있는 대제사장 아나니아입니다. 생각해보면, 아나니아는 대제사장 가문에서 금수저로 태어나서 평생 이렇게 살아왔을 것 같습니다. 내가 정한 때에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내가 원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가이사랴로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동행하기 편한 어떤 장로들을 모으고 당시에 최고라고 생각한 변호사 더둘로를 고용해서 ‘닷새’만에 오는 것이지요.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바울을 고발하려는 최고의 팀이 되어서 가이사랴에 가는데요. 누가는 여기서 그들이 ‘내려갔다’고 합니다. 앞서 바울을 데리고 들어간 군사들은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가이사랴에 근야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대제사장의 일행은 가이사랴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내려갔다는 것이 이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단어인데요. 그들의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도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세상으로 멀리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정한 것을 다 이루고 사는 인생들이 내려가서 하는 일을 보십시오.
1-b. …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여기서 고발하니라는 단어는 ‘드러내다’라는 동사와 ‘~를 대적하여’라는 전치사가 만난 문장입니다. 대적하여 그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내가 너무나 잘났고 내가 대단하니까 바울을 대적하고 복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너무 착하고 잘났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전혀 필요없다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다 이뤄지니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착착 대동할 수 있는 인생은 이렇게 복음을 대적하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떨어지는 사건, 실패하는 사건이 찾아오는 것은 복입니다. 붙회떨감해야 해요. 왜냐하면 앞으로는 밑지는 것같지만, 뒤로는 영원히 남을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닷새만에 아나니아가 도착했는데요. 딱 수학능력시험을 닷새 앞둔 어제 붙회떨감 이른비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간증을 하기로 미리 약속한 한 학생이 있었는데요. 이번 주에 그만 수시에서 떨어지는 결과를 받았어요.
그런데, 앞에 나와서 붙회떨감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 부분만 잠깐 읽어드릴게요.
하나님은 수시 결과를 ‘불합격’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처음엔 낙심했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이 결과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긴 천부장의 편지였다는 것을요. 저는 주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주님, 제 노력의 흔적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삶이 되게 해주세요.”
간증 인터뷰를 했는데요. 이 학생의 소원은 대학붙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기도회 자리에 앉아있는 아빠가 목장에 왔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정말 하나님이 상급이시라고 고백하는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그것이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증인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떨어지는 시간을 허락하셔서라도 우리를 영생으로 부르시는 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간증] 저는 어린 시절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서 자랐습니다.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항상 참으며 자랐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데요. 저도 공룡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돈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저는 대형 문구점에 가서 공룡 이빨 갯수를 새고 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점토로 공룡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았어요.
이렇게 결핍이 있으니까 소명을 받은 이후에 사명도 있었지만, 무서운 열심으로 무언가 이뤄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학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3,4학년때 공부하는 과목을 수강해서 1학년에 라틴어 2학년에 히브리어 3학년 때 헬라어를 배웠습니다. 더둘로 킴이 되고 싶었어요. 심지어 삼수사수가 기본이라고 하는 신학대학원 입시를 갑자기 몇 달 앞두고 성경만 읽으면서 준비했습니다. 주위 형들이 그렇게 하면 떨어진다고 했는데, 단 한 번에 붙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교만했을까요? 저는 제가 혼외자로 태어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특별하다고 스스로 자만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어요.
하지만, 결혼이라는 벽 앞에서는 또 다시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버지가 없이 자란 저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가 된 아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 사귀던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찾아가게 되면, 제 주제를 철저하게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결혼에 대한 자신감이 날이 갈수록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빨리 결혼 하는 것은 포기하고 살았는데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제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겸손한 환경을 주셔서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못하게 보호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환경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최고의 환경인 줄로 믿습니다!
[적용질문] 내가 정한 때에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며 복음을 대적한 적이 있습니까? 교만한 나를 낮추셔서라도 영원한 천국을 주시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바울을 고발하니라
둘째, 인간적인 방법으로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복음을 막는 고발입니다.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로마 총독 벨릭스가 바울을 부르자 이 대단한 변호사 더둘로가 고발을 시작합니다. 더둘로는 인간적으로 재판장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바울을 고발하는데, 더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영업직에 계신 분들은 너무 이해가 되실거 같습니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먼저 친해져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둘로는 먼저 총독 벨릭스에게 아부를 하는데요.
3-a.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린다’고 합니다. 원어로는 ‘많은 평안을 누린다’고 해요. 로마 황제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국들을 점령해서 강제로 평화를 유지했어요. 황제가 이 평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시대지요. 그러니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린다는 표현은 당신이 우리에게 황제나 다름 없다고 하는 최고의 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유대인인 대제사장이 데려온 유대인이 하는 말이예요.
그뒤에 따라 나오는 말은 더욱 처참합니다.
3-b. …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벨릭스는 총독으로 지내는 기간 내내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피의 대학살’을 해왔다고 하는데요. 이 때도 유대 민족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둘로는 자기도 유대인이면서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민족은 대학살을 당하고 있는데,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한다고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말하지요? 바울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대적해서 이겨야 하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 이렇게 자기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아부를 합니다.
근본적으로 타락한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내 이익이 먼저이기 때문에 복음이 없이는 나라도 사랑하지 못해요. 그러니 진짜 나라를 위하고 가정을 살리는 길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며 사명 감당하는 것이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인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어요. 우리가 가정에서 아부를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우리가 자녀들에게 배우자에 대한 비난을 해서 니편 내편을 나누는 것은 아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부는 상대를 높여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비난은 상대를 낮춰서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아부와 비난은 비슷한 원리 같아요.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배우자를 향한 비난을 한다면, 우리 가정에 예수씨가 들어가는 길을 막는 고발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대적이 되는 거예요.
[간증] 저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녀 앞에서 배우자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박수무당의 딸로 태어난 외할머니는 시도때도 없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소환하셨어요. 외할머니는 중년에 부부싸움을 하시다가 외할아버지의 발에 채이셔서 넘어졌는데, 다리가 부러지셨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잘못되어서 돌아가실 때까지도 두 다리로 걷지 못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외할머니가 하시는 모든 말씀의 결론은 자신이 시집을 잘못왔고 외할아버지 때문에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기승전외할아버지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욕을 먹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도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셨습니다. 저를 앉혀놓고 생부를 비난하셨습니다. 생부가 저를 낙태하지 말고 낳으라고는 했지만, 경제적인 책임은 등한시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하루가 끝났습니다. 어떻게 생활하라고 하루에 오천원만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다른 저의 형이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생활비를 오히려 더 적게 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품었고 어머니는 한없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어머니에게 배운대로 저의 생부를 아버지가 아니라 ‘OO동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너무 양육을 잘 받은 나머지 그분이 너무 미워서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불러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있었는데요. 제가 중학교 때, 오락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어머니께 들킨 날이었습니다. 저는 사춘기 청소년이었지만, 어머니는 갱년기 아줌마였습니다. 이상하게 어머니가 차분하게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안방에 앉으라고 하고 본인은 주방으로 가셨어요. 그리고 안방에 돌아온 어머니는 식칼을 안방에 꽃으시고는 ‘너랑 나랑 같이 죽자’고 하셨습니다. 갱년기 무섭습니다. 그 때 저는 주저 앉고 말았지요. 정신이 들고 나서 저는 그 칼을 보면서 식칼을 뽑아서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를 낳게 한 아버지 탓이라고 원망했어요.
제가 고2때부터 큐티를 하고 목회자 소명을 받아서 학교에서 30명을 한 번에 전도한 전도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있으니 단 한번도 아버지를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발이 언제 끊어졌냐면요. 제가 죄인이 되니까 누구를 고발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제가 군생활을 하면서 온부대에 신학생으로 다 알려졌는데, 부대 회식을 함녀서 대대장님의 술을 받아 마시는 사건으로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제가 공식적인 죄인이 되니까 저의 고발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버지를 끝내 전도하지 못했어요. 세 번 찾아갔는데, 아버지가 제가 온 모습에 당황하면서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돌려보내셨어요. 저는 그 앞에서 아부를 했습니다. 작은 눈을 사슴처럼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그 말을 경청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예의 바르게 잘 자랐다고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세번째 찾아갔을 때에도 그렇게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끊지 않고 아부하다가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13년을 지냈는데, 몇 년 전에 자살로 생을 마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부하고 비난해서라도 인간적으로 내가 인정받고 내 편을 만들려는 것은 복음을 막는 고발이 맞더라고요. 제가 더둘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도 내 배우자도 자녀도 오직 하나님 편에 서야 할 줄 믿습니다. 남편이 인간적으로 내 편을 들지 않고 남의 편이라도 구원을 위해서 한 말씀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로 수지맞은 인생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아부를 하든지 비난을 하든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내 편을 만들려다가 복음을 대적하고 구원을 가로막지 않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자녀들 앞에서 배우자를 고발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런 전통이 있는 집안이 많은 줄로 압니다. 이런 전통은 끊으셔도 되겠습니다.
[적용질문]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부하거나 비난한 적이 있습니까? 복음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서 멈춰야 하는 고발은 무엇입니까? 전도 대상자로는 생각하고 싶지않은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울을 고발하니라
셋째, 증거없는 확신이 복음을 막는 고발입니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더둘로는 벨릭스를 굉장이 배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대강 말하는 것이 총독 벨릭스를 괴롭게 아니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고발 할 내용이 없기 때문에 대강 말하는 것입니다. 진짜 그 사람이 잘못되어서 처벌을 받아야 하거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면 더둘로처럼 대강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일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대답을 보시면 더둘러 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렇다고 말을 많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천당”만 외쳐도 전도가 될 정도로 다급한 시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디테일하게 전도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너무나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대강 고발하는 고발은 오히려 우리를 돕는 고발이 됩니다. 살펴볼게요.
5-a.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
더둘로는 바울이 바로 전염병 같은 자라고 합니다. 바울 시대에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요소로 뽑힐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한 재앙입니다.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현대를 사는 우리도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우리 삶 자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더둘로의 고발처럼 바울은 전염병 같은 자가 맞습니다.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가서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복음이 들어와서 가정이 중수되고 이혼이 막아지고 자살도 막아졌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를 바꾸고 살리는 놀라운 전염병이 맞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전염병은 언제 옮겨집니까? 가까이 가야 옮겨집니다. 바울이 마게도니아에 가까이 갔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둘로처럼 배려를 한다면서 대강하지 말고 가까이 붙어서 구원의 디테일을 챙길 때 우리 가족과 주변에 구원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살리는 전염병인 복음을 옮기기 위해서 우리가 힘든 가족에게 가까이 가야 합니다. 외로운 부모님에게 가까이 가고 힘든 사람에게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우지면 안되겠지요? 우리 청소년 자녀들에게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주시고 문을 열지 않는 것도 지혜입니다.
어제 기도회에 오신 한 집사님이 너무 감동적으로 인사를 해주셨어요. 남편이 오랫만에 예배에 와서 설교를 들었는데, 바로 적용해서 그동안 찾아가지 않았던 부모님을 찾아가서 같이 외출까지도 하셨다고 해요. 바로 들어가는 적용으로 가까이 가신 것이 너무나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 전염병 같은 바울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하나요?
5-b. …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했다고 해요. 그리고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요. 벨릭스가 유대인 과격 단체를 숙청하기 위해서 학살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과격단체가 했던 모든 죄목을 바울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내 죄뿐만 아니라 민족의 죄를 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 죄도 남탓을 해도 우리는 부모님의 죄 민족의 죄를 붙들고 회개하는 게 맞습니다. 느헤미야도 조상들의 죄까지도 주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더둘로가 예수님만 안믿지 예수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강 아는 것 같아요.
그리고 더둘로는 바울을 고발하는 결정적인 죄목을 가장 나중에 말하는데요.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로마가 넓은 지역을 다스리기 때문에 민족들마다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을 더럽게 한 사람을 처형할 자치권이 있었어요. 그러니 바울이 성전을 더럽힌 것이 사실이라면 벨릭스가 아무리 총독이라도 바울을 그들에게 내줘야 합니다. 더둘로가 똑똑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더둘로에게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급하게 마칩니다.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왜 더둘로는 당신이 심문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할까요? 증거도 없이 고발을 하니까 세상적으로 잘난 더둘로가 고발 할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 입니다. 증거가 없으니 끝까지 증인이 되지 못하고 증거를 벨릭스에게 직접 심문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다수가 몰려와도 증인이 없습니다.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여기서 유대인들이 누구겠습니까? 아나니야와 같이 내려갔던 ‘어떤 장로들’입니다. 이 말이 옳다고 주장은 하지만, 증인이 없으니 확신도 없습니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의 고발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자체가 복음의 증인이지요.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가 내 죄를 보면 해 줄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장이 끝나지를 않아요. 예수님을 믿고 말씀으로 내 죄를 보는 증인들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시 위해서 오셨다는 확실한 구속사가 있습니다. 시편 34편 8절에도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맛보아 아는 것을 확신있게 전하는 증인들이예요.
우리가 더둘로와 다르게 확신있게 증거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우리에게 약재료로 주신 것들을 확신있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죄와 내 고난이 전공과목이 되어서 확신있게 전할 수 있는거예요.
[간증] 제가 공동체에 오기 전에는 사실 정신과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강도사 시험을 볼 때, 정신과에서 전반적인 검사를 받았는데 그 때에는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년 심방을 다니면서 정신과 얘기가 나오면 더둘로처럼 대강 얘기할 뿐이었습니다. 해줄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기 위해서 약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너무 귀하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제가 부정적 피드백을 듣고 마음이 우울할 때, 마침 힘든 목장 식구들을 위해서 목자인 제가 먼저 정신과를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경험만 해보려고 갔어요. 그런데, 결과지를 본 선생님은 제가 만성 우울증이라고 하시는거예요.
이렇게 목장식구들을 위해 정신과에 갔던 저는 만성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마음이 너무 다운되는 일이 종종 있었거든요. 아버지와 비슷해 보이는 어른들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면서 가라앉고 혹시 실수라고 하면 저 스스로 자책하면서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정신과약까지 먹으니까 너무 편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더욱 확신이 생겼어요. 약만 먹는다고 불안과 우울이 낫지 않더라고요. 약도 먹지만 말씀을 볼 때에야 진정한 평안 누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목장을 하면서 약을 먹어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번주 화요일 여전한 방식으로 목장 예배를 마칠때 쯤이었어요. 한 아내 집사님께서 남편 집사님의 나눔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놀랐습니다. 저희 목장에서 가장 많이 살아나신 분이거든요. 이번에 양육도 다시 받으시고, 중보기도학교도 하고 계시는데 오히려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았어요.
너무 이상해서 요즘 약 잘 드시고 계시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3개월째 안 드시고 계셨다는 거예요. 남편 집사님도 놀라고, 모든 목장식구들이 놀랐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목장예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목원식구들 모두가 다 벌떼같이 몰려들어 한마음으로 권면을 드렸어요. 극리고 저도 약을 먹고 있기에 더 강하고 확신있게 권면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집사님 약 드시는 적용 해야 해요.”
그렇게 꼭 약을 드시는 적용을 하도록 설득을 하면서 나눔을 하다보니까 자정이 넘었더라고요. 그 집사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약을 드시고 남편 집사님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주셨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도 모든 목장식구들이 한분도 빠짐없이 한 마음으로 격려하고 기뻐하고 안도하며 글을 올려주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주님을 만나야 복음을 확신있게 전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살아나야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아무리 엘리트여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 고발에 한계가 있잖아요. 반면에 우리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요. 내가 살아났기 때문에 확실한 약재료가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어디있겠습니까? 내가 살아난 간증으로 많이 살리시고 다음 주 전도축제에 초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질문] 배려를 가장해서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나눠줄 수 있는 약재료는 무엇입니까? 내가 살아난 이야기를 확신있게 할 수 있습니까?
정리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며 사는 것이 복음을 막는 고발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복음을 막는 고발입니다.
증거없는 확신이 복음을 막는 고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뒤집어서 증인이 되어야 하잖아요?
내가 정한 것이 실패하고 육이 무너지는 사건을 통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부하고 비난하는 내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 편에 서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난 이야기를 해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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