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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말씀의 흥왕과 세력 (강승현 목사님)

by relife_es 2025. 10. 28.

사도행전 19:8-20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라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바울은 1차와 2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다니며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구속사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정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박해와 핍박과 매맞음도 있었고 죽은 자처럼 되어 성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들을 경험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시며 바울의 힘듬을 알아주시고 확신을 주십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고난과 박해가 심할 때마다 대적이 생기고 또 생길 때마다 각 도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생겨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습니다. 어려움이 많을수록 말씀은 흥왕했습니다. 곤란하고 핍박을 받을 수록 혼자가 아니라 주위에 합력하는 세력들인 사역자와 동역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의 세력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마지막 20절에서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도 하십니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더라도 주의 말씀이 힘이 있고 흥왕하게 되고 세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는지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려면

1. 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 서원'에 있어야 합니다.

 

3차 전도 여행의 특징은 1,2차 때 다녔던 여러 지역들을 재방문하여 그 공동체에 들어가서 처음에 가르쳤던 복음을 재 강화하고 돈독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교회 공동체가 에베소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에베소에 배를 정박하고 유대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결실을 맺지는 못했나봅니다. 그 뒤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상업적, 문화적, 군사적 요충지이고 엄청 큰 도서관도 있었고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아데미 신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본문에서 보듯 종교적 신비주의가 그 지역에 엄청나게 유행하고 성행했습니다. 마술, 마법 등이 흥행했던 지역입니다. 바울은 다른 지역에서와 같이 그 도시에 들어가서 회당을 먼저 찾아가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합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의 복음 시작은 늘 유대인 중심, 회당 중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기 동족들을 너무 사랑했고 또 유대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에서도 3개월이나 먼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담대히' 그리고 '권면하되'라고 합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권면하되라고 끝났지만 뉘앙스를 보면 권면하되 힘써 계속했다는 뜻입니다. '담대히'는 미완료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시간 날 때 잠깐 별로 힘 안쓰고 회당에 들어가 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든 안 나든 3개월 동안 계속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힘써 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3개월이나 전해서 그들이 변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 절에 유대인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유대인들의 반응이 비방했다 라고 합니다. 비방은 그만 말해도 돼. 됐어. 접어둬.의 수준이 아닙니다. 욕하고 저주하고 모욕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바울이 전하는 구속사의 복음을 훼방하고 못하게하고 말렸다는 것입니다. 왜 이사람들이 비방했을까? 본문에 따르면 마음이 굳어져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은 딱딱하고 뻣뻣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고 말씀을 품어야 하는데 불편해 했다는 것입니다. 왜그랬을까요? 유대인들은 그들의 전통 관습에 따라 율법을 이야기했고 또 그들이 이야기하는 구원의 기준은 할례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오셔서 그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할례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랜 시간 동안 평생 율법과 할례를 믿어왔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여 먹고 품기에는 너무 불편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하고 자기가 누리고 경험하고 알고 있던 것들이 다 reset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도 미완료형입니다.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한 번 싫어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바울이 있는 3개월 동안 믿지 않고 굳어있는 딱딱한 마음으로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말씀을 통해서 순종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날마다 말씀 듣는 공동체, 매일 큐티하는 공동체, 우리들 서원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3달 만에 회당을 떠나서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 가서 날마다 말씀을 전합니다. 서원은 스콜레에서 파생된 단어로 학교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여가 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가를 누리는 배움의 장소인 것입니다. 복음을 듣는 장소이고 그 들은 복음을 배우는 자리이고 듣고 배우는 복음을 믿고 살고 누리는 곳이 바로 서원입니다. 오늘로 치면 우리들교회와 같은 공동체 즉 우리들서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고 뻣뻣해서 불편했던 사람들이 말씀 앞에 서니까 유연해지고 여유가 생겨서 쉼도 있고 즐거움을 누립니다. 

제가 우리들교회 와서 받았던 은혜와 감명중 하나는 성도님들이 너무 방긋 웃어주시고 재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딱딱함이나 가식이나 형식적인 것이 없고 진심으로 웃으며 이야기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진심으로 재미없으면 안 웃습니다. ^^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보며 어떻게 가식적이지 않을까,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매일 주시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나의 문제와 고난이 그 말씀을 통해 해석 받고 다른 사람보다 나를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라는 단어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들교회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서 날마다 말씀을 주시는 우리들 서원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전 교회에서 저를 부르는 두 가지 별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강프로입니다. professional의 프로가 아니라 항상 2% 오버하며 힘을 많이 준다고 해서 2% 오버하는 강승현이라고 해서 강프로라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 별명은 강수행입니다. 예전에 모셨던 목사님을 수행해서 외부에 많이 나갔었는데 이 오버하는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며 목사님 수행을 잘한다고 얻은 별명이었습니다. 우리들교회 와서 담임목사님 집회에 3박4일 동안 같이 외부집회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수행이 자신있으니 목사님을 vip러 잘 모시겠다며 목사님을 잘 모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께서 딱 한 마디 평가를 하셨습니다. '강목사, 넌 열심은 있는데, 불편해~' ^^ 저는 보디가드처럼 지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제가 아는 수행을 하며 일로 했는데 목사님이 원하셨던 것은 수행이 아니라 나눔하고 오늘 큐티한 것들로 대화하며 마음의 교제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부목사로 수행하길 원했던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인격적인 동행을 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역할에만 충실하며 인격적인 동행을 놓쳤던 것입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 내 시야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뚫어져라 쳐다봤겠습니까. 그러니까 목사님이 참 불편하셨겠구나 싶습니다. 제 마음이 뻣뻣하고 딱딱했기 때문에 제가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잣대로 잘 모실 수 있는 기준이 이거다  나의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내 방식대로 이런식으로 사역하면 된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뻣뻣하고 딱딱하고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두란노서원과 같은  우리들서원에 보내주셔서 날마다 말씀 앞에 서게해주시고 먼저 내가 얼마나 불편한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조금씩 마음이 풀리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올 여름 담당하는 청년들과 전라도 노하도에 있는 섬교회에 TT를 갔습니다. 섬에 가서 짐을 풀고 준비해온 사역 물품들을 정리하는데 또 제가 뻣뻣해지는 겁니다. 멀리 전라도까지 청년들과 함께 구속사의 복음을 전하러 갔으면 내가 살아난 이야기를 하고 또 내가 복음으로 자유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간 것인데 여전히 일만 하려고 하는 저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간을 찌푸리며 너는 이것하고 너는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 옆에 가서 도와줘. 이런 식으로 계속 진두지휘만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제 옆으로 조용히 와서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이렇게 사역이 시작되면 모드 전환을 하시네요. 일하는 사람의 모드로 바로 전환하시네요. 그러지마시고 저희랑 즐기고 누리다 가요.'라고 하는 겁니다. 누리다 가요 라는 한 마디가 제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즐기지 못하고 마음이 뻣뻣하고 몸이 불편해 일하려고만 하며 누림이 전혀 없었던 제게 하나님이 이렇게 얘기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승현아, 네가 여기 목사로 있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먼저는 나의 아들로 이 자리에서 살아난 것들을 청년들과 함께 누리며 즐기다 가면 어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씀에 너무 큰 울림이 있어서 바로 큐티책을 폈습니다.

본문이 사사기 말씀이었는데 13:25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역을 일로만 하고 또 저와 함께한 청년의 입을 통해서 답답했던 저를 하나님께서 변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뒤로는 tt의 3박 4일을 너무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고 저부터 누리는 사람이 되어 청녀들과 함께 살아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살아난 모습을 간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또 손과 발이 가는 수고로 그 지역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구속사에 대해 딱딱하셨던 목사님께서 그 다음의 광주 목세에도 오셔서 참속하시고 은혜를 참 많이 받고 가셨습니다. 우리들서원 안에서 매일의 말씀으로 드디어 자유를 얻다보니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된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것은 제가 얼마나 불편한 사람인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것이 깨달아져 조금씩 자유를 누리니까 또 다른 사명의 길로 또 다른 사역지로 하나님께서 이동시켜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적용 질문

- 날마다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나요, 반대로 날마다의 잔소리로 의심하고 죽이고 불안해하나요?

- 나는 다른 사람에게 뻣뻣하니 불편한 존재인가요, 부드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하고 싶은 존재인가요?

- 날마다의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나요? 예전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나를 여류롭게 하나요? 여전히 불편하다면 왜 그럴까요?

 

2.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 안에 있어야 합니다.

두란노 서원으로 바울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무려 2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많은 사람들이 다 복음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결과와 경험을 하게 됩니다.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앞서 에베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때 에베소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은 마술과 종교적 신비적인 것들이 유행하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역마다 각 문화와 특색에 맞겠끔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시는데 지난 주 본문의 철학이 강했던 아덴 지역에서는 바울이 철학적으로 사상적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헬라 시인의 인용 구절을 접목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을 시대 언어로 바꾼 것입니다. 그 시대가 원하는 언어로 그 시대가 듣고 싶어하는 언어로 바꾼 것입니다. 에베소는 신비적인 체험이 시대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과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해서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자 병도 떠나가고 악귀도 도망 갔다고 하는 신비적 경험, 에베소 지역이 필요로 하고 듣고 싶어하는 것들로, 그들의 언어로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시대 언어로 바울의 손, 손수건, 앞치마는 어떤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손수건은 우리가 들고 있는 모양의 손수건이 아니라 이마에 동여 매서 땀이 흐르는 것도 닦고 여러가지 묻은 것도 닦아주고 눈물도 닦는 역할을 했던 것이고 앞치마는 바울이 낮에는 텐트 메이커로서 자비량 선교를 했는데 텐트 만들 때 옷을 보호해주고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바울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도구들인 것입니다. 우리 목장이 그러합니다. 직장에서 억지로 버티며 사표를 낼까 말까 갈등하는 집사님들이 목장에 가면 어떻게 합니까? 목자님들과 여러 목원들이 함께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진짜 움직이라고 할 때까지 붙어만 있으라고 하면서 수고했던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목장입니다. 또 부부관계가 무너져서 이혼 직전까지 가서 눈물 밖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아픔이 있는 가정의 방황 속에 눈물을 닦아주는, 그리고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신 가정이 최고의 가치라고 이야기 해주고 처방해주는 손수건과 같은 목장입니다. 중독과 폭력의 소용돌이에 돌아가면서 술과 도바과 성 중독 등으로 무너진 가정을 향해서 공동체가 밤낮 가릴 것 없이 쫓아가고 심방 가서 말리고 아픔을 막아주는 앞치마와 같은 목장이 바로 우리들 목장입니다. 장년 뿐 아니라 청년과 청소년, 주일학교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자살 시도하고 자해하고 성적으로 혼란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목장이 벌 떼처럼 달려갑니다. 벌 떼처럼 일어 나서 힘 내라고 괜찮다고 기도하라고 계속해서 카톡 보내며 오늘은 어땠었냐고 오늘 주시는 말씀을 읽어보았냐고 하며 말씀을 전달해 줍니다. 그러면서 살아만 있어달라고 붙들어주는 처방을 합니다. 목자와 목원들이 기도하고 연락하며서 악한 생각와 악한 영으로부터 막아주는 앞치마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줍니다. 바울의 손에서 능력이 흘러갔듯이 목자의 손에서 목원들의 손에서 위로와 격려 공감과 중보가 흘러가서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 나가는 경험을 우리들교회 모든 목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매주 똑같은 말을 하고 듣는 것 같아도 이 자체가 이미 손수건으로 앞치마로 닦아주고 막아주는 목장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 목장이야말로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최고의 현장 공동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목자 모임에서 나눠주신 이야기입니다. 아내 집사님과 딸이 큰 소동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아내 집사님이 딸고 말다툼을 심하게 했는데 딸이 adhd와 우울증이 심하게 있어서 감정이 격해져서 엄마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흥분해서 딸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딸이 가재도구를 던졌습니다. 아빠도 화가 나서 딸을 밀쳐버렸습니다. 그러자 딸이 112에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해서 딸이 쉼터로 가는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아빠는 딸이 너무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나는 뭐가 부족해서 맨날 마음대로 하냐고, 대학가자마자 바로 자퇴해버리고 개명을 하기도 하고 4년 째 폐인처럼 살면서 이제는 엄마까지 때리고 경찰까지 불러서 불리시키는 일까지 하냐며 도저히 용서되지 않아서 혈기가 났습니다. 잘해준 것보다 잘못해주고 안해준 것들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딸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신의 모습이 딸의 모습인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목자님이 어릴 때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고 어머니가 외도를 하셔서 부모님이 이혼하고 각각 재혼하셨답니다. 그러면서 목자님의 혈기와 외도의 근원, 뿌리가 부모님의 건강하지 못한 생활 때문이라며 원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두 분이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또 대학까지 보내주신 감사한 것들이 있었는데도 목자님도 딸처럼 원망과 불평만 했다는 겁니다. 이제 아내 역시도 딸 보기가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얼굴 보기도 힘들고 관계를 새롭게 맺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는데 청소년부의 한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에 엄마가 자기와 똑같이 자녀에게 뺨을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뺨 맞은 두 분의 엄마가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괜찮아~ 하시면서 손수건이 되어주셨다고 합니다. 또 주일학교 한 아이가 adhd가 있어 예전보다 행동이 달라지고 격해져서 담당 교역자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엄마가 집을 나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빚 때문에 아이 아빠와 말다툼을 하다가 화를 내며 나가버렸고 아빠는 너무 무기력하고 힘이 없어서 집안 살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원지기와 여자목자님과 평원님이 그 여자 집사님께 벌떼처럼 달려갔습니다. 집에 들어가자고... 집에 들어가 집을 지키며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부부목장, 여자목장, 초원 목자님들이 벌떼로 가서 그 집을 청소하고 모든 가재 도구들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여러가지 어려움에 입으로만 어떻게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말씀이 힘이 있어서 흥왕하고 세력이 있는 공동체는 손이 가는 수고로 그 가정에 찾아가서 눈물을 닦아줍니다. 나도 그랬다고, 나도 매 맞았다고. 진짜 실력있는 목장은 그 사람의 아픔을 막아주고 그 사람의 치부를 막아주는 것이 진정한 세력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적용 질문

- 내가 목장에서 경험했던 손수건과 앞치마는 무엇인가요?

- 나는 뺨을 맞으면 화만 나나요, 이번 일이 손수건의 적용으로 쓰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나요?

- 나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너무 깨끗한가요, 목원의 땀, 눈물, 콧물의 흔적이 가득한가요?

 

3.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자복이란 단어는 헬라어 원뜻으로는 '같이 말하다, 공개적으로 인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편에 서는 고백이 바로 자복입니다. 자복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은혜의 사건인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나는 옳도다라고 주장했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말씀 앞에서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무너졌고 나 때문에 공동체가 아프고 나 때문에 가정이 갈라졌습니다 하고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고백이 바로 자복입니다. 하나님 편에서요. 그래서 이것을 드러냄의 회개라고 합니다. 숨기고 감추었던 죄를 드러내는 것은 어찌보면 수치의 사건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복음적으로 볼 때 예수님이 그 수치의 죄를 짊어질 수 있는 통로입니다. 자복해야지만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 편에서 드러남의 회개가 있어야지만 비로소 예수님께서 그 죄를 십자가로 대신 져 주실수 있도록 연결되는 통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복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야 됩니다. 혼자서 끙끙 앓는 회개가 아니라 목장 공동체 앞에 그 죄를 고백해야 말씀의 흥왕과 세력을 경험할 수 있는 자복인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복한 것인지, 진짜 드러냄의 회개로 하나님 편에 섰는지 아니면 그냥 감정적으로 뉘우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자복의 열매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 열매는 바로 값을 지불하는 회개라는 것입니다.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여기서 말하는 그 책은 지금으로 보면 부적, 점술서와 같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갖다 줄, 복을 줄, 우리 가정에 평강을 줄, 나의 가정을 지켜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내가, 내가 잘 되어야 하는 부적 같은 그 책을 말합니다. 만사형통 만을 위해서 평생 모으고 모은 것입니다. 이고 지고 살면서 그것만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은 오만이라고 하는데 요즘 화폐 가치로 최소 30억에서 50억 까지 되는 돈입니다. 평생을 모은 재산과 같은데  이것을 불사르라고 합니다.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값일까요?  자복하고 회개한 값입니다. 

불사르니 앞에 보면 '모든 사람 앞에서'라고 나와 있습니다. 입으로 고백하고 죄를 시인하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고 그 자복의 열매로 내가 가지고 품고 있고 모으고 있던 죄의 삯, 열매들을 불태우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해야됩니다. 왜일까요? 우리 사람은 버리는 것에 참되지 않습니다. 특히 전적으로 의지했던 것을 버리는 것에는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큰 돈이 걸려있으면 더욱 힘들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버려야지, 불태워야지, 많은 사람 앞에서 없애야지 하며 아무리 결단해도 이 정도는 남겨둬도 되지 않을 까? 백 개 중에 한 개 정도는 두고 신앙생활해도 예수님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어차피 죄인인데 내가 한 개 정도는 몰래 가지고 있어도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이정도는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내가 가진 것이 이것입니다 하며 모든 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불사를 때 비로서 자복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저울질 하다가 아무도 안보면 슬쩍 남기게 되기 때문에 자복의 열매, 값을 지불하는 회개는 일부러라도 의식적으로라도 공동체 앞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짜 말씀의 세력이 흥왕할 때는 내가 세력이라고 여겼던 것들, 내가 의지했던 흥왕한 것들을 끊고 불태우고 값을 지불할 때 그 세력이 흥왕합니다. 

이번 목세에 참석하시며 목장 탐방 가셔서 나눠주신 이야기입니다. 21살 때 교회 리더로 섬기면서 교회의 부흥을 경험했고 자연스레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신학대학원을 진학하고 부교역자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해서 아내와 사역을 하면서 10년 안에 교회를 건축하자는 비전을 품고 교회를 개척할 기회가 왔을 때 그 당시 유행했던 셀 목회를 도입해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성도가 늘어나고 교회가 부흥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가부터 숫자 중심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실적 중심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 분란이 생기고 가정 마다 삐그덕 거렸습니다. 계속 손 쓸 틈도 없이 성도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세 가정이나 이혼하게 되어 큰 낙심을 했습니다. 다시 회복하려해도 반복되니 목회에 대한 회의감만 들었는데 다른 교회 청빈 제의가 와서 지원했지만 그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둘째 딸이 뇌종야 진단까지 받는 큰 고난의 사건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막혀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아내는 힘 없이 목회하는 저를 책망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 벽에 머리까지 박는 극심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막히는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하게 맡길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묵상하던 중 큐티책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그 말씀 나눔을 정말 좋아했고 지금은 교인 수는 많지 않지만 교회 분위기가 너무 따듯하고 행복합니다. 얼마전 돌발성 난청이 생겨서 치료를 받던 중 뇌동맥류가 발견되어 이어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일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최근 교회 수련회에서 둘러 앉아 삶을 나누는 시간에 평소 과묵하신 한 여집사님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남편 몰래 억단위의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했는데 다 실패했고 남편이 알면 이혼당할 수도 있다고... 순간 목사님의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는데 그렇게 고백한 이후에 함께 모여있던 다른 성도들도 나도 그런 고난이 있었다고, 나도 남편 몰래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나도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다고 하나 둘씩 이야기하며 정말 은혜로운 나눔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들교회에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 우리들교회 와서 강의를 들었는데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저의 태도가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이런 저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와 아내의 결혼은 죄인과 죄인의 만남이 아니라 의인과 의인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사역의 고난에서 한 집사님이 나눔을 할 때 하나님 편에 서는 나눔을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고백을 하니 공동체 많은 사람이 나도, 나도, 나도 하고 괜찮아 라고 하며 격려해주고 손수건과 같은 모임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편에 선 고백, 진정한 자복입니다. 다른 이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내 죄를 더 깊이 보게 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서는 자복입니다. 수련회 나눔 시간에 성령의 세력을 모든 사람이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적용 질문

- 나의 회개는 하나님 편에서 하는 자복입니까, 감정의 편에서 하는 후회입니까?

- 최근에 가장 큰 값을 치루면서 얻어낸 세력과 흥왕은 무엇입니까?

- 아직까지 이고 지고 모으면서 불사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값을 치루겠다고 결단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