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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말씀이 흥왕하더라(김성우 목사님)

by relife_es 2025. 10. 7.

사도행전12:18-24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벨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우리가 묵상하는 12장에서는 전무후무한 박해가 시작됩니다. 이전에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박해했다면 이제는 국가가 개입해서 박해를 합니다. 국가가 개입해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잡습니다. 이렇게 야고보가 죽음으로 시작되고 베드로가 투옥되고 풀려나고 베드로가 사라졌을 때 소동이 일어난 배경이 본문 12장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왜 이렇게 박해가 심하지? 하는 12장 마지막에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더라 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결론이고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는 것입니다. 언제 흥왕합니까? 내 모든 힘이 빠지고 내 생각이 무너져내린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합니다. 흥왕하다는 생명력이 자라나간다는 뜻입니다. 식물이 단단한 흙을 꿰뚫고 자라나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자라나는데 그 자라님이 흥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현실이든 , 12장에서 헤롯이 득세하는 상황을 하나님이 보여주시지만 말씀을 여전한 방식으로 묵상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 결론이 흥왕하여 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굳게 붙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라고 합니다. 말씀 자체에 생명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에 동참한다는 것은 생명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말씀이 힘을 얻어서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또 이 나라에 말씀이 흥왕하기 위해서는

 

1. 소동이 흥왕합니다.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어떤 날이 새었냐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가둡니다. 12장의 주인공인 헤롯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4명의 헤롯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이 땅에 태어났을 때 왕을 없애려고 모든 유아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헤롯은 헤롯 대왕입니다. 이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빌라도와 함께 예수님을 심문한 사람이고 세례요한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헤롯 아그리파 1세입니다. 어찌보면 헤롯 가문중에 굉장히 제일 탁월한 사람입니다. 이 헤롯 왕의 조카이고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도 바울을 심문한 사람이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아들 헤롯 아그리파 2세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헤롯 아그리파 1세가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어떻게 잡았나요? 베드로를 투옥했는데 베드로가 풀려났습니다. 풀려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로마 감옥은 하옥, 중옥, 상옥의 3층 구조로 되어있었고 하옥은 지하 깊숙한 곳이었고 제일 심각한 죄인을 가두는 곳입니다. 이 하옥에 베드로를 옆에 군인들과 수갑을 같이 채워 도망갈 수 없게 하고 쇠 문에도, 두 번째 문에도 이중 삼중으로 군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결코 풀려날 수 없는 상황인데 베드로가 풀려난 것입니다. 그러니 날이 새자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본문에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여 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이것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데 하며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헤롯이나 군인들이 무엇을 믿었을까요? 감옥을 믿었을 것입니다. 절대 풀려날 수 없어. 이중 삼중 오중으로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니까 소동이 일어납니다. 옆에 군인도 묶여있고 문도 쇠문이고 이중 삼중이고 하옥인데...

우리는 내가 믿는 것이 흔들려 버리니까 소동합니다. 내가 믿은 것들이 완전히 흔들려 버리니까, 내가 체크하고 또 체크해서 결혼했는데 그 남편이 바람피니까 저 사람이 저럴 사람이 아닌데 하며 소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었던 체크하고 또 체크하며 오랫동안 믿었던 친구가 배신을 하니 소동이 일어납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었던 회사가 와르르 무너지니 소동이 일어납니다. 저도 예전에 어떤 회사의 주식을 체크하고 또 체크해서 샀는데 상장폐지가 되어 소동이 일어났었습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 손잡이를 잡았는데 한 할머니가 타셔서 사람이 많아 손잡이를 잡을 수 없으니까 제 팔을 잡더라구요. 제가 믿음직해 보였나봅니다. 그런데 버스가 흔들리니까 내가 흔들리고 나를 믿었던 할머니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안 흔들려야 우리는 소동하지 않는데 내가 믿는 것들이 흔들려 버리니까 믿었기에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게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소동은 일어나야 됩니다. 담임 목사님이 늘 말씀하시듯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동이 없는 게 문제인데 우리는 소동을 제거하려 합니다. 믿을만한 것들을 계속 찾아다닙니다. 사람을 믿고 남편을 믿고 나를 소동치 않게 하는 든든한 근거를 믿습니다. 거기에 내 두 발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요동치 않는 게 없습니다. 다 무너집니다. 사람은 배신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근거를 딛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변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제 인생에 소동이 있었습니다. 제 인생을 뒤바꾼 사건은 바로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사건입니다. 고 3때 하교해 집에 와보니 어머니가 안계셨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만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바람을 피워서 때려서 쫓아냈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어보니 밤새 너무 심하게 맞아서 어쩔 수 없이 죽으려고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나가고 나니 제 삶이 흔들렸습니다. 제 가치관이 흔들렸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수능 점수가 잘 나왔어도 가고 싶은 대학이 없었습니다. 이 땅이 흔들려버리니 저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열심히 기도해서 키운 모태신앙 이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로 제 시선이 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선택할 것은 신학교였습니다. 그 때는 사명감 보다는 죽고 싶어서 신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들렸던 뉴스에는 어떤 사람이 선교를 나가서 설교를 하자마자 죽였다는 겁니다. 이 땅에 아무 소망이 없던 저는 이거다 하며 흔들리지 않는 저 하나님의 하늘 나라를 빨리 가야겠다 생각했고 빨리 가는 비결은 목사가 되고 신학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서 신학교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 인생에 소동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구나 알게되고 이제 흔들리지 않는 것에 시선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 삶에 소동이 흥왕하면 흔들리지 않는 말씀이 흥왕할 때입니다. 그 말씀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 설교에서 그림 동화책에 호랑이가 없다 하고 한 장을 넘기면 그 호랑이가 까꿍 하고 또 강아지가 없다 하고 한 장을 넘기면 그 강아지가 까꿍하는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이정도면 나도 작가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영아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 있어 엄마는 그냥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우주 전체,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없으면 세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동하는 것이고 요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오는 충격과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없어졌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느낌을 그대로 이 책이 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까꿍하면서 엄마가 다시 나타납니다. 그 때 없어졌던 그 세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라졌던 우주가 다시금 펼쳐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 스릴인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모든 것인데 그 엄마가 없다가 다시 보이는 것, 자기가 경험했던 그것을 어흥이가 해주고, 멍멍이가 해주니까 막 좋아서 박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소동하고 말 한마디에 감정이 요동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말씀을 펼치면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까꿍하시는 겁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래 하며 모든 세계가 다 무너져내라고 온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 말씀을 펼치니 하나님께서 까꿍하며 나 여기 있다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학교 갔다 돌아와도 사라지지 않더라구요. 하나님은 요동하지 않으십니다. 소동할 때 말씀을 펴야합니다. 아내가 스파게티 가게를 10년 이상 했는데 스파게티 가게가 망했을 때도 폐업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폈습니다. 하나님이 까꿍하며 말씀해주시더라구요. 그 때 말씀이 엘리사가 모든 것을 다 불태우고 엘리야를 쫓는 본문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때 쯤 되면 저희 사역자들은 요동이 일어납니다. 사역 담당이 변경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유아부 갔다가 초등부, 장년부, 고등부, 중등부 갔다가 하며 변경되면 요동이 일어나는데 그 때 말씀을 펼치면 까꿍하시는 겁니다. 유아부 갔을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고 철학이나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유아부  아이들은 마이쮸가 온 세계더라구요. 처음 설교 때 적용 질문으로 너의 염려가 뭐니? 하고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아이들은 염려라는 단어를 몰라요 하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말씀을 폈습니다. 아낙 자손 말씀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낙 자손 거인 같고 제가 메뚜기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까꿍 하면서 하나님이 뭐라 말씀해 주시냐면 이 아이들이 네 밥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이 해석해주셨습니다. 그 때 부터 유아부를 하는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아이들이 이제 중등부로 올라왔습니다. 추석 명절에도 많은 소동이 있을텐데 우리가 그렇게 소동이 흥왕하는 순간에도 하나님 말씀을 펼쳐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62:6 에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십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흔들리지 아니하는 그 하나님 말씀에 내 두 발을 딛고 서있으니 결코 변하지 않는, 창세 이래로 한 번도 변하지 않는 그 하나님의 말씀, 나를 사랑하시는 그 말씀이 굳건하게 서있으니 내가 변하지 않으리로다.

 

적용 질문

-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통장인가요? 남편인가요? 자녀인가요? 나 자신인가요?

- 내 인생에 가장 심하게 소동이 일어난 적은 언제인가요?

-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소동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권력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우리는 대단한 일에 소동하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 카톡에 내 말에 답을 안 했을 때, 목장에서도 목자의 말 한마디에 뛰쳐나가버립니다. 저도 추석에 아버지와 예배 드리고 돌아가며 기도하는데 아버지가 고향의 갈매기와 물고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니 마음에 소동이 일어났었습니다. 아들이 목사로 얼마나 힘들게 사역하는데 아들이 갈매기보다 못한 존재인가 하고 마음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 한마디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권력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헤롯은 권력이 있으니까 다 죽여버립니다. 군인들을 다 죽여버리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 한다고 합니다. 내게 권력이 있냐 없냐의 척도는 내가 화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내가 화를 낼수 있으면 권력자입니다. 헤롯이 대단히 노여워하는 대상은 두로와 시돈입니다. 두로와 시돈에게 헤롯이 왜 권력자입니까? 헤롯이 가아사랴로 갔습니다.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도시로 싺 밀어버리고 대리석을 쫙 깔아서 멋지게 만들어 황제에게 헌정한 도시였습니다. 그 때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거나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갔다는 설이 있는데 권력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지난 주 나눔에서 한 부목자님이 어릴 때 아버지가 교도소도 갔다오시고 정신과도 갔다오시고 온 가족을 죽이려고 집에서 가스통을 열기도 해서 죽을 뻔하기도 하니 너무 무서워서 도망 나와서 20년이 넘게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목장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아버지를 찾아뵈는 적용을 했는데 가보니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누워계셨고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계셨는데 그럼에도 아버지가 너무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번 추석에는 찾아뵙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가해자이고 이 아들은 피해자죠. 그런데 이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는 선택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하나님이 주신 권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를 입었으면 하나님이 내게 권세를 주셨구나 하고 가해자를 찾아가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권력이 흥왕할수록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권세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이 부목자님께 아버지를 찾아가셔야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려야 부목자님이 기도하고 있는 아파트에 당첨이 될 것이다고 말씀드렸는데 당첨에 솔깃해서 찾아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 이게 권세입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너무 큰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가 권세자가 아니고 이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는 부목자님이 권세자인 것입니다. 내가 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내가 권력자입니다. 

헤롯이 누구에게 화내고 있나요? 두로와 시돈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무역 항구 도시고 이스라엘 땅이 아닌 이방 도시입니다. 그런데헤롯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무역이 활발하니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식량이 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량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로와 시돈은 헤롯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이 헤롯에게 돈이 많으니까 블라스도를 구슬려서 돈으로 로비를 합니다. 누가 권력자입니까? 눈치만 살피는 두로와 시돈이 아니라 헤롯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만나면 늘 제 눈치를 살피십니다. 어머니는 집 나간 아픔이 있고 새아버지와 새아버지의 세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밥만 먹고 일어나 가려고 하면 어머니는 문 앞에서 새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제게 몰래 돈을 줍니다. 미안하신 것이죠. 저는 그런 모습에 짜증도 나고 서럽기도 한데 어머니와 화목을 청할 때 누구에게 권세가 있습니까? 제게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하나님이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낼 수 있다면 말씀의 권세를 붙들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그 분을 데려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어머니를 교회에 모셔왔는데 활짝 웃으시며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우리 눈치를 보는 사람은 두로와 시돈처럼 눈치를 보며 화목하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약점을 꽉 틀어잡고 화목할지 말지가 아니라 화목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상처 속에 갇혀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얼마나 피해자인지 알아?" 누가 권력자인가요? 가해자가 아닙니다. 

헤롯이 어디서 권력을 받았습니다. 로마 클라디우스 황제가 헤롯의 동기 동창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로부터 권세를 입어서 두로와 시돈을 압박하고 교회를 핍박합니다. 우리의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피해를 아시고 '나도 너와 같은 피해자이다. 너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면 이것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명절에 각자의 가이사랴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내 삶이, 내 상처가 말씀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이 권능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실수한 군인들을 용납하고 두로와 시돈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능이고 그 때 우리는 이 권세를 가지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기념하기 위해, 내 목적을 위해 가이사랴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을 위해 가는 그 발걸음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권세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적용질문

- 용서해야 할 군인은 누구인가요? 먹고 살 문제가 급한 두로와 시돈이 내 옆에 있나요?

- 가족에게 받은 상처속에 아직도 살아가나요? 말씀으로 해석받았나요?

-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말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내가 화목하기를 청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3 칭찬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벨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이 날을 택해 왕복을 입고 연설을 합니다. 그런데 헤롯이 자기의 권력을 가지고 택한 이 날이 헤롯이 죽는 날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권력을 가지고 생각하고 두드리고 했던, 자기의 유익을 위해 찾아간 그 장소가 헤롯이 죽는 장소이고 헤롯이 택한 날이 죽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욕심을 꺾고 날마다 말씀으로 날을 택해야 합니다. 날을 택한 헤롯이 연설을 합니다. 21절에 이 때 왕복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라는 책에 보면 그냥 왕북을 입은 것이 아니라 은빛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은빛 옷을 입으니 멀리서 봐도 반짝반짝 했을 것입니다. 택한 날의 때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데 뒤에는 지중해가 펼쳐져있습니다. 지중해가 펼쳐진 그 곳에 태양이 떠올라 햇빛을 비추는 배경에 타고난 달변가였던 헤롯의 연설이 들리니 사람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23절에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함으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합니다.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했답니다. 저는 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죽을 일인가? 박수 좀 받으면 안되나? 칭찬 좀 들으면 안되나? 그렇게 죽을 일인가? 그런데 23절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했다는 말을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이다 외치니까 헤롯이 그 말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내가 신 맞아 하고... 본인의 모든 수치를 가리는 은빛 옷을 입고 나 그런 사람 맞아. 하나님이 주신 영광,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그 모든 영광을 자기가 취해버린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 칭찬을 듣는 사람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칭찬이 들릴 때 우리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고 그런 사람이 아닌 그것을 말씀 앞에 검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내 속에 어떤 벌레가 가득한지, 내 속의 벌레를 드러내지 않으니까 내 안에 있는 그 벌레로 말미암아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 벌레는 해충이라고 하는데 밖에 내놓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전히 내 속에 품고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약함, 추함, 더러움을 내가 오픈하지 않고 품고 있기 때문에 뿐만아니라 은갈치 옷을 입고 내가 그런 사람이다 하니 내가 그 해충으로 말미암아 죽게되는 것입니다.

헤롯은 이것이 정말 인정되지 않았나봅니다. 헤롯을 묵상하며 저와 많이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나르시스티인 헤롯이 자기가 신인 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하고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두로와 시돈도 와서 아부를 하니까 신인 줄 아는데 이렇게 칭찬이 범람했을 때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제가 우리들교회 자타가 인정하는 나르시스트인데  담임목사님이 제게 늘 너는 나르시스트다 라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 내가 심각한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심리학 박사인 친구에게 내가 나르시스트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하니까 모든 사람에게는 나르시시즘이 있는데 병적으로 가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 너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생기냐고 하니까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애가 강한 것이라고 합니다. 겉이 화려하고 반짝 거릴 수록 자기 안에 열등감이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등감이 권력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나르시즘은 보통 어릴 때 생긴다고 합니다. 어릴 때 내가 정말 온 우주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으로부터 어떤 피드백이 없을 때, 내가 뭔가 잘했으면 잘했다 못했으면 못했다고 피드백을 해주고 뭔가 성취를 하면 부모님이 그 성취에 대해 반응을 해주는데 부모님이 반응을 안해주니까 자기 스스로 보상을 준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이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힘들어서 늘 밖에서 고스톱을 치시고 아무 반응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에게 보상을 하는 이것이 나르시즘 입니다. 나르시즘은 빈약한 자기상과 열등감이 근원입니다. 가장 중요한 대상에게 결핍을 느끼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대상으로부터 무응답일 때... 그러니 내가 이것을 행했는데 하나님이 하게 해주신 것도 그 영광을 나에게 취해버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보상해 버리는 것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 모든 영광을 자기가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하나님이 주셔서 내가 성공도 이루고 부도 이루고 가정도 이루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했다고 생각하고 그 성공에 대한 보상을 내가 취하는 것입니다. 이게 내가 신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죽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됩니까? 이 벌레를 드러내 오픈해야 됩니다. 이 오픈이 굉장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오픈하면 내가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들교회 처음 왔을 때 은갈치 옷을 입은 게 아니고 얼굴에 비비크림을 바르고 다녔습니다. 그 비비크림 안에 엄청난 열들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저의 부모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못했습니다. 아내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니까 멋있게 하고 은갈치 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죽는 것 같이 힘든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내가 죽어질 때 이것을 드러낼수 있는 것입니다. 이 벌레는 드러내야만 내 안에 말씀이 흥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사람들이 칭찬할 때 우리는 말씀 앞으로 가야합니다. 이 말씀이 흥왕하지 않으면 칭찬은 우리를 죽이는 독이 됩니다. 다음과 같은 레바논 속담이 있습니다. 칭찬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니까 거기에 맞는 칭찬을 해주는 것입니다. 헤롯은 어떤 열등감이 있었나요? 헤롯의 가계도를 살펴보니 헤롯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여버렸고 할아버지가 헤롯 아버지도 죽였습니다.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죽인 것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으니까 이 헤롯은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에서 황제를 만나고 그의 환심을 사서 성공을 이루고 클라디우스 황제와도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위세를 엎고 다시 유대로 와서 유대 왕이 되었지만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입니다. 그러니 열등감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심지어 하나 밖에 없는 누나는 삼촌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또 다른 삼촌과 결혼합니다. 그 다른 삼촌이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에게 요한이 그 부인과 결혼이 잘못되었다고 하니까 듣기 싫어서 세례 요한의 목을 쳐버립니다. 누나는 자녀를 낳았는데 자녀가 남매지간에 근친을 행합니다. 그러니 헤롯 안에 얼마나 벌레가 많았겠습니까? 그러니 옷을 입고 얼마나 권력을 휘둘렀겠습니까? 그 대단한 야고보 사도가 앞에 있어도 그 대단한 베드로 사도가 앞에 있어도 말씀이 들어오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칭찬이 그 모든 것을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그 생각이 모든 것을 다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칭찬이 범람할 때 우리는 정말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게 말씀의 흥왕입니다.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살 길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한테 어떤 존재이고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동시에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를 날마다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말씀이 뚫고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에게는 말씀이 없었고 주변에는 칭찬하는 사람들밖에 없으니 들리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헤롯은 자기 안의 벌레에게 먹혀 죽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5일 동안 복통을 앓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 5일이 헤롯이 회개해야 될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죽이지 않으시고 이 악한 헤롯에게도 5일의 시간을 주시더라구요. 말씀이 들렸다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벌레를 고백하고 오픈해서 해결받고 회개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직도 내가 끊지못한 추악한 더러운 죄가 있는데 고백하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죽을 날을 내가 선택하고 죽을 장소를 내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선택이 어그러진다는 것입니다. 해결은 내 안의 벌레를 드러내고 봐야된다는 것입니다. 

24절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로 끝이 납니다. 12장은 헤롯으로 시작해서 헤롯으로 끝이 납니다. 12장 1절에 보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오늘 본문에도 계속 19,20,21,23절에 헤롯이 주어인데 24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등장합니다. 문맥으로 안맞습니다. 무엇입니까? 이세상의 세속사는 이렇게 멸망하고 망하고 죽이고 권력으로 부를 가지고 아부하며 아첨하며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속사와는 상관없이 흥왕하여 더한다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더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이라는 것은 이 세속사에서 이 흥왕하는 말씀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 만나는 것이 말씀 묵상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승리하셨고 승리하셨던 그 말씀은 갈수록 하나님이 역사를 뚫고 이겨나가는 그 말씀의 흥왕 앞에 우리가 큐티함으로 나는 망하고 소동하고 권력을 가지고 칭찬에 아부하고 흔들리고 하지만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큰 줄기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씀의 흥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있으면 결코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망한 것도 망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상이 다 망하는 것같이 흘러가더라도 이 세상은 망하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말씀으로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날 때 까꿍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 내가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은 화려함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칭찬을 가장 좋아하나요?

- 추석 명절 때 칭찬 들을 은갈치 옷을 입고 가나요? 죄인의 옷을 입고 가족들에게 가나요?

- 말씀 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늘 점검하며 고백하고 있나요?

 

소동이 일어나야 우리는 소동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발로 딛고 서야할 곳은 결코 소동치 않는, 결코 요동치 않는 하나님 말씀 위입니다. 이것이 근거이고 우리의 자존감이고 본질입니다. 거대한 권력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이제는 그 권력으로 가고싶은데 가고 여행가고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피해자의 권세를 가지고 말씀을 전할, 말씀이 흥왕하게 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하늘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말 한마디로 풀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말씀을 붙들고 가는 추석 명절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내 칭찬이 주변에 팽배하다면 굉장히 위험할 때입니다.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내 안의 벌레를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은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목장에서 드러내고 만났던 가족들에게 나의 연약함을 오픈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흥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