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6:10-17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학생들을 모아서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그룹에는 하얀 의사 가운을 입히고 다른 그룹은 평상복을 입게 했습니다. 그리고 집중력 테스트를 했더니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집중력과 주의력이 현저하게 높았는데 실수와 오답의 비율이 50%나 적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착용자 인식이라고 합니다. 착용하는 옷이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옷을 입으라는 말씀을 종종 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는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고 본문에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로마의 집에 감금된 상태로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감금된 상태였기 때문에 24시간 보는 사람이 다름 아닌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이 입는 갑옷, 전신 갑주는 바울이 24시간 봐야만 했을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갇혀있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면 로마 군인의 갑옷을 볼 때마다 너무 짜증이 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 안에서 갇힌 자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로마의 갑옷을 보면서도 깊이 묵상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본문에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입어야 하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1. 끝까지 서게 합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끝으로 하니까 다 끝나는 것 같죠. 결론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끝으로를 헬라어로 보면 끝까지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우리 성도들이 받은 복이 무엇인지 충분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구원의 선물에 합당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제 들을 것 다 들었으니까 이제부터 너희들의 인생이 마치는 그 끝날까지 주 안에서 강건해져라는 사도 바울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건해져라는 수동태입니다. 힘 내라가 아니고 힘을 받아라고 수동태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아무리 듣고 훌륭한 가르침을 잘 들어도 우리 몸과 마음은 우리 머리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훌륭한 가르침을 듣고 좋은 말씀을 들으면 더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보여서 낙심되고 위축되고 절망됩니다. 세상에 힘을 내야한다는 것 몰라서 힘 안 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내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힘 내서 열심히 해야 되는 것 다 알지만 그냥 우리는 힘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어렵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늘 말씀처럼 주 안에서, 주님의 힘과 능력으로, 바울이 여기서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보이시죠. 힘만 써도 되고 능력만 써도 되는데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오직 우리 힘의 원천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주님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강건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면서 우리 힘 내보자, 잘해보자 하며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당부를 합니다.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는 힘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힘이 안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힘이 안 난다고 그냥 주저앉지 말고 힘이 안 난다고 누워있지 말고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우리 뜻과 상관 없는 슬픈 현실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성도의 인생은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정말 전쟁터와 같습니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을 상대하는 전쟁이 전부이면 사실 조금 쉬울 텐데 그 혈과 육, 사람과의 전쟁, 사건과의 전쟁이 끝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현상에 불과하고 진짜 무서운 전쟁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세상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전쟁인 것이고 마귀의 간계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그 영적 전쟁이 우리가 진짜 치뤄야 되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에클레시아 밀리탄스 라고 합니다. 싸우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인 것입니다. 세상의 죄를 향해서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죄악과 갈등과 싸우지 않는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죄와 갈등하면서 싸우면서 고민하면서 힘들어하는 그런 전쟁을 치루지 않는 다면 우리 안에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떠나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이 마귀의 간계는 너무도 치밀하고 교묘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알아보는 특별한 악이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죄악이 있습니다. 그것도 무섭습니다.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섭고 심각한 것은 너무도 평범해져서 악 인줄도 모르는 악들이 더 심각하고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의도적인 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의도하지 않고서 부지 중에 행한 악, 악인 줄도 모르고 행하는 악이 사실 더 심각한 악인 것입니다. 그래서 습관화 된 악, 우리 사회에 관습화 된 악, 심지어 제도화 된 악도 있고 요새는 법제화된 악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세상은 정의를 외칩니다만 실제로는 불의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면서 생각하게 하는 바늘 도둑은 벌을 받지만 나라 도둑은 왕이 된다는 오래된 말이 있습니다. 게다가 마귀는 지금도 쉬지 않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과 감정을 가만히 엿보다가 작은 틈만 생겨도 그 틈으로 확 파고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쿡 찔러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은 좋은 하루를 살게 해주시옵소서, 오늘은 주님만 의지하면서 거룩하게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이런 생각 안하면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몇 분이나 계시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큐티책을 펴면서 말씀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맡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큐티를 하고 결단을 하고 적용을 했지만 점심이 지나서 오후가 되면 우리도 모르게 짜증과 화와 불만과 원망이 가득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또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대하는 사탄은 우리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뤄되는 영적 전쟁에 잊어버리면 안되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영적 전쟁은 이미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모든 권세를 물리치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를 이미 얻었습니다. 다 이겨놓으신 싸움을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힘든 상대와 싸우기 때문에 너무도 힘들고 지치지만 우리가 싸우는 이 싸움은 뭔가를 이겨서 빼앗는 공성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라고 하니까 무섭고 겁나지 않습니까? 도대체 어떤 전장으로 우리를 내모실지, 우리가 어떤 수고를 감당해야 될지 너무 긴장이 되는데 우리가 정작 나가서 싸워야 되는 전쟁은 공성전이 아니라 수성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기셔서 이미 점령하고 계신 구원의 성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 자리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전신 갑주 입혀놓으시고 치루라고 하시는, 돌격하며 화살이 빚발치는 전장으로 내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 나를 세워두신 이 자리에서 오늘도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 자리에 가만 서서 잘 지키게 하시는, 그 자리에 서게 하시는 것, 그것도 끝까지 서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늘 생각하면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부담을 느낄 때도 있고,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깊이 생각해 보세요. 말씀을 생각하고 우리 자신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큐티를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수준을 너무도 잘 아신다,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과제를 우리에게 맡기신다, 우리의 눈높이를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 수준에 맞는 것을 맡기시면서 함께 인도해 가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리 잘 지키고 주저앉고 싶을 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일어나시고 누워있고 싶을 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다시 일어나셔서 그 자리 잘 지키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내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할 부분은 어디입니까?
-요즘 나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의 간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끝까지 서서 버텨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2. 내가 맞춰야 합니다.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군복 입은 군인을 거리에서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 만으로, 머리 스타일만 보고 군인인 것을 맞추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더라구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차를 타고 동두천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헌병 검문소가 많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다 무사 통과인데 헌병이 우리 차를 세우고 제가 타고 있는 쪽으로 와서 창문을 내렸더니 제게 휴가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휴가증이 뭔지 몰라 긴장해서 어리둥절하고 당황했는데 옆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껄껄 웃으시더니 얘 중학교 1학년이에요. 내 손자에요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군복 보다 더 군인처럼 보이게 하는 열 세살 소년의 얼굴이 바로 저의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머리를 스포츠로 짧게 짤랐었는데 그래서 20대 청년의 얼굴로 보였나봅니다. ^^
로마 사람들은 얼굴이나 갑옷이 없이도 로마 군인을 거리에서 딱 알아볼 수 있었는데 바로 로마 군인들이 항상 차고있던 벨트, 허리띠 때문이었습니다. 이 로마 군인들의 허리띠는 나 군인이다 하는 표시였습니다. 그것을 보면 소속 부대로 알 수 있고 역할도 알수 있고 군번 줄 같은 역할을 벨트가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에게 벨트를 빼앗긴다는 것은 너무도 모욕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인은 어딜 가든 이 벨트를 차고다녔습니다. 아침에 가면 벨트를 찼다가 잠자리에 들면서 풀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전신 갑주 중에서 제일 먼저 착용했다가 제일 먼저 푸는 것이 이 로마 병사의 벨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진리를 허리띠에 비유했을까요? 그것은 성도의 삶에서 모든 일이 진리로 시작해서 진리로 끝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감정들 이런 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하면 죄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늘 거짓이 나오는 것이고 속임수와 사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라면 우리 생각, 말, 행동 하나도 선한 게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꼭꼭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단속하고 우리의 말을 묶고 우리의 행동을 결박해서 말씀으로 묶어두어야만 비로서 우리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들이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는 것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첫단추인 것입니다.
전신 갑주를 봤을 때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로마 군인들이 입는 호심경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입는 몸통의 갑옷으로 쇠조각을 잘 이어붙인 것입니다. 이 바울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이 호심경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인본적인 옳고 그름의 노예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또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양육 받고 말씀을 들으면 들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흉내는 내지만 변하지 않는 남아있는 우리의 죄성은 늘 나는 옳다는 생각이 기회만 되면 나옵니다. 내가 이런 취급 당할 사람이 아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다 나의 의 인 것입니다. 내가 맞다. 내가 옳다 하는 것이 인본적인 옳고 그름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내가 옳다 외치면서 상처를 주고 싸우고 다투고 그러다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을 막을 길은 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의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고 많은 수양을 한다고 본성적인 내가 옳다는 악이 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에 대해서는 2천년 전에 철학자들이 하는 말이나 요새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하는 말이나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내가 옳다 라는 함정에서 건지지 못합니다. 이것을 막을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로 져 주신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죄를 당신의 죄로 져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의로 죄악에 물든 우리를 의롭다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로 바꾸면 그리스도의 의는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저보다 옳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섰을 때 100% 죄인이고 지금 주님께서 저를 인도해 가시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고 저는 알 수 없지만,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래도 주님이 옳다는 것을 제가 고백하고 인정하고 믿습니다. 주님이 저보다 옳으십니다. 따라서 주님이 제 옆에 두신 꼴보기 싫은 남편, 무시가 되는 아내, 내 뱃속에서 나왔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자녀들, 내가 존경할 수 없는 나의 부모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두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보다 옳습니다. 내 의를 완전하게 내려놓는 것이 의의 호심경,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영적인 무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로마군 샌들이 있습니다. 로마군 샌들은 가죽 끈을 묶은 것처럼 보여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당시 사람들이 볼 때는 최고의 기능성 신발이었습니다. 발과 발목을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밑창에 쇠구슬 같은 것이 달려서 어느 지역을 가든지 쉽게 걸을 수 있고 빠르게 진군할 수 있는 엄청난 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심지어 위급할 때는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샌들에 해당하는 것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것에서 화평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구원을 통해서 이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니까 우리 마음에 새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내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겠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옛사람처럼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그렇게 못산다 할지라도 예수 믿고 세례 받은 순간에 생기지 않습니까? 내가 평안을 누려야 되는데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에 맞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리고 나아가서 어떤 마음이 생깁니까? 나만 평안할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내 가족, 내 이웃에게 평안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같이 평안을 누려야 되는데... 우리가 실행은 하지 못하더라고 새로운 마음 자체는 우리에게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준비되게 하시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입니다. 새로운 의지, 주님을 향한 새로운 마음.
이것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인데 그러면 왜 신에 비유했을까? 우리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억울해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고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새로운 마음이 생긴 다음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시는 그곳에서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내가 하겠다는 마음의 신을 신고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는 것, 나는 너무 가기 싫지만 주님이 가서 섬기라고 하시니까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남편을 섬기고 아내를 섬기고 자녀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평안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힘쓰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이번 여름 여러분들이 TT가서 섬기면서 느끼고 누리셨던 평안인 줄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입맛 하나 바꾸는 것도 어렵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목사님 새벽 설교 하실 때 된장국에 멸치를 안 넣었다고 아내를 미워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한심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사무실에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아라 하며 막 뭐라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입 맛 하나 바꾸는 것, 입 맛 하나 내려놓는 것 쉽지않습니다. 평생 쌓여진 나의 고집 하나 꺾는 것이 정말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절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나를 맞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로마군의 전신 갑주가 있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 군인의 갑옷은 갑옷이 군인의 몸이 사이즈를 맞춰야 합니다.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를 맞춰야 갑옷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우리가 전신 갑주의 사이즈에 맞춰야 하는 겁니다. 내가 그 전신 갑주를 입기에 너무 살이 쪘으면 살을 빼야하는 것이고 너무 말랐으면 우리가 살을 찌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우리의 삶을 맞춰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신 갑주에 내 삶을 맞추고 내 몸을 맞추고 내 생각과 말을 맞추는 훈련을 매일 매일 해야 하는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큐티입니다. 말씀 앞에서 평소에는 알지도 못했던 내 고집을 깨닫고 그 고집에 대해서 회개하고 그 고집을 꺾는 순종의 적용을 하나 하는 것이 지금 내가 너무 비대해진 나의 몸을 줄이고 너무 마른 나의 몸의 살을 찌워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맞춰가는 훈련인 것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큐티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우리의 몸을 맞추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가정에서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진리에 맞춰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학교나 직장에서 주님의 의에 맞춰야 할 선택은 무엇입니까?
-'주님만 따르겠다'고 결단했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한 발걸음은 무엇입니까?
한 성도님 나눔인데도 힘들 때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욕이었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유년부에서 나눔을 하면서 자기가 엄마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개의 새끼라고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수치스럽고 창피해서 어쩔 줄 몰랐다고 목장에서 이 엄마가 나누었습니다. 그러니까 목자님이 명처방을 하셨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거기서 'ㄱ'을 'ㄴ'으로 바꾸세요. 개의 새끼를 내새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믿는 자에게 고난이 무슨 말이냐, 고난은 나에게 안 생겼으면 좋겠다, 문제 좀 안 생기게 해주세요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욕좀 안 먹게 해주시고 제 인생에는 모든 게 평탄한 시온의 대로가 되어서 되어가는 모든 것들이 승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 와서 양육을 받고 제 인생을 돌아보고 쥐어 짜면서 회개를 하다보니까 안 생기게 해달라는 기도는 말이 안되는 기도구나 깨닫게 되어서 어느 순간 부터는 고난 잘 당하게 해주시고 욕도 잘 먹게 해주시고 비난도 잘 받게 해주세요 하고 '안'을 '잘'로 바꾸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서 개의 새끼라고 부르는 자식을 이제는 내새끼라고 부르고 또 고난 안 당하기를 바라던 데서 잘 당하고 욕도 잘 먹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사탄을 잘 막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내가 가져야 합니다.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쟁터에 나간 로마 군인은 허리띠, 신발, 호심경을 절대 벗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패, 검, 투구는 계속 쓸 필요도 없었고 계속 쓸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사도바울이 방패라고 얘기하는데 믿음이 방패처럼 성도의 모든 것을 지켜줍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날마다 쏘아대는 불화살, 각양 각색 종류가 너무 많아 다 헤아릴수도 없는 의심, 불안, 분노, 미움, 두려움, 욕심, 절망, 쾌락, 중독, 집착, 폭력 등 온갖 공경을 우리에게 퍼붓습니다. 사람을 통해 사건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때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인 영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온갖 불화살들을 날리는 것입니다. 한 발만 여기에 맞아도 우리 삶은 휘청거립니다.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화살을 소멸해서 맞는 순간에는 따끔할 수 있고 뜨거울 수 있지만 이것이 불이 활활 타올라서 우리를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잘 막아야 되는데 그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런 공격을 당하고 있고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내 삶이 불타는 듯한 상황에 있지만 내가 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지키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지금도 돌보시고 지금도 인도해 가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탄의 수많은 불화살들을 소멸하고 우리가 타지 않게 지킬 수 있는 겁니다. 믿음이 이깁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이 믿음을 방패처럼 늘 붙들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방패를 놓는 순간이 있지만 우리는 이 믿음의 방패를 놓지말고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구원을 투구라고 하는데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머리 속 생각을 지키는 게 다름아닌 구원입니다. 왜 설교 시간 마다, 큐티할 때마다 왜 그렇게 구원이 중심이 되어야 된다, 인생의 목적이 구원이고 거룩이어야 된다고 왜 그렇게 외칩니까? 그것은 우리 생각의 중심이 구원이 되지 않으면 바로 그 순간에 우리 머리 속에 가득한 악하고 음란한 생각들이 우리 삶을 헛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생각할 때 세상의 헛된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생각하고 구원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일을 구속사적으로 분별해서 해석할 때 우리 삶이 사탄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전신 갑주 중에 유일한 공격 무기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검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검에 비유합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에게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과 구원의 투구를 어떻게 하라로 합니까? 가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을 빼앗아서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는 것을 받는 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이 믿음과 구원과 말씀을 잘 받아서 간직하고 있는 것,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가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과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추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라는 명령은 언젠가 가져라,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 가져야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 때는 너희가 알아서 해 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당한 원리나 원칙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헬라어에는 명령형에도 시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이 명령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당장 하라는 것입니다. 미룰 일이 아니라, 언젠가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믿음의 방패를, 말씀의 검을, 구원의 투구를 지금 당장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즉시 손에 들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전쟁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잊어버립니다. 알면서도 일부러 잊어저리려 할 때도 많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지금 내 삶은 전쟁통입니다. 불화살들이 날라와서 모든 삶들이 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면하기 싫으니까 자꾸 외면하고 남들은 다 아는데 나는 내 문제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평안하다고 하며 아무 문제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전쟁통인 것입니다. 그렇게 문제가 일어나는데도 애써 외면하니까 성경이 있어도 펴지 않고 큐티책 사놓고도 큐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하지 뭐, 나중에 믿을게요, 지금 형편이 안되니까 형편이 될 때 할게요, 때가 되면 하지 하는 것이 우리의 주제가 중 대표아닙니까. 그런데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노리는 기회 중 제일 좋은 기회가 바로 우리가 나중에 라는 말을 할 때라고 합니다. 나중에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바로 사탄이 노리는 우리를 지옥으로 가장 안전하게 인도해 갈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방패는 들어야 방패이고 검도 들어야 검인 것입니다. 투구도 머리에 써야 투구입니다. 땅에 내려놓고 있으면 그냥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들을 때 즉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잠시 손에서 놓으신 분이 계십니까? 너무 무거워서, 다른 일이 급해서 잠깐 믿음의 방패 내려놓고 말씀의 검 내려놓고 구원의 투구 잠깐 벗어놓으신 분이 계십니까? 지금 즉시 다시 손에 잡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머리에 쓰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의 수성전이, 주님이 이루신 승리를 지키는 수성전이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마지막 승리의 날을 맛보게 하는 귀한 과정이 되기를 바라고 우리 모두 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요즘 어떤 불화살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까?
-다시 들어올려야 할 믿음의 방패는 무엇입니까?
-내 삶에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까? 말씀의 검을 손에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공군 사관학교 교수 요원으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4개월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가르칠 사람이니까 당연히 공부하게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물어보지도 않고 책이 잔뜩 든 큰 가방을 따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가서 교관에게 지적 받아 들어가는 첫 날부터 찍혔습니다.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저는 몸으로 하는 것을 잘 못했습니다. 비오는 어느 날 진흙탕에서 교관이 각개전투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겠고 하기도 싫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정신줄 놓고 있다가 제 순서가 되어 나갔는데 진짜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리바리하고 있으니까 교관이 제 앞에 오더니 무려 당시 26세의 저에게 '야, 너 바보야!'하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처음으로 바보라는 말을 들어서 너무 열받아서 고개를 치켜들고 째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교관이 다 와서 저를 둘러싸고 바보 이상의 양육하는 말을 제게 쏟아내시면서 기합을 주는데 그 비 오는 날 진흙 밭에서 죄로 굴러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하며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가지고 죽다 살아났습니다. 이 날 이후 저는 전체 교관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찍혀 요주의 인물이 되어서 똑같은 잘못을 해도 다른 후보생 보다 두 배 이상의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안에서 얼마나 나오고 싶었겠습니까. 감옥 같은 그 곳에서 나오고 싶어 끝나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넉 달 마지막 주가 되어 야, 이제 일주일 남았구나 하며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고 마침내 마지막 토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드디어 해방이다 했는데 그날 연평해전이 터져서 전군에 비상령이 내려졌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훈련 중지도 무기한 연기가 되었습니다. 언제 나가야 될 지 모르는 상황에 사로잡히는 기가 막힌 일이 제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제게 넉 달의 시간 동안 정말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책가방 들고 갔던 제 멘탈이니 얼마나 많은 양육이 필요했던 인생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래도 쓰셔야 되니까 이 인생 좀 고쳐보시려고 그 4개월을 거기에 집어넣으셨던 것인데 제가 그 때도 성경을 이미 헬라어로 읽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전신 갑주를 제가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바울 인 줄 알았지 제가 바리새인 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양육의 넉 달을 제가 다 원망과 불평과 분노 속에서 다 날려버렸고 그래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이 제발 좀 깨달으라고 2주를 연장해 주셨는데 말씀도 공동체도 지체도 제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2주를 또 원망과 분노와 억울함 속에서 허비했습니다. 2주가 지나 진짜 마지막 날이 되어 새벽에 짐을 다 정리하는데 넉 달 두 주 간의 훈련의 잔재가 쌓인 낡은 군화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꼭 4달 2주 동안 책을 한 자도 못보고 머리가 어떻게 되고 비참한 처지가 된 것같은 망가진 제 인생처럼 보여서 군화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새벽에 군화를 들고 연병장 끝에 있는 쓰레기 장에 가서 냅다 집어던져 쓰레기 통에 쳐박았습니다. 너무 속이 시원해져서 신나는 기분으로 와서 샤워하고 옷을 입고 짐을 챙기고 탈출 준비만 하고 있는데 방송이 나오는 겁니다. '신성한 군화를 쓰레기 장에 버린 후보생, 사관실 앞으로.' 제가 그 순간 자동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가만 있으면 안 들키겠지 가지 말아야겠다 내 것인 줄 어떻게 알겠어' 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든 생각은 '아, 이름 안 지웠네' 였습니다. 그래서 걸리면 더 망신 당할 테니까 바로 튀어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제 책가방을 뺐었던 그 교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교관님이 저를 바라봤던 표정은 책가방을 든 저를 바라봤던 표정 보다 10배나 더 한심스럼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면서 그냥 저에게 아무말 없이 군화를 주셨습니다. 속으로 저는 마지막 날이니까 이렇게 넘어가나보다 했는데 교관님이 '입에 물어'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더러운 쓰레기 통에 갔다온 그 군화를 입에 물고 그 날 아침 한시간 동안 나가기 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기합을 받으며 훈련을 마쳤습니다. 대미를 장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방 들고 훈련소 들어갔다가 군화 물고 나온 훈련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실체입니다. 이것이 목사 후보생의 모습이고 성경을 헬라어로 읽으면서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신학 후보생의 실체였습니다. 제 생각이 진리였습니다. 제 판단이 의였습니다. 제가 편안게 평안이었고 믿음의 방패가 아니라 자존심의 방패를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의 검이 아니라 제 지식의 칼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고 구원의 투구가 아니라 제 칭찬과 인정의 투구를 쓰고 있었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정말 가재와 같은, 가재는 반듯하기라도 하지만 저는 가시까지 돋힌 킹크랩같은 끔찍한 모습의 저의 갑옷을 입은 채 머리 속으로만 다 안다고 생각하는 비참한 존재였고 말씀도 공동체도 없으니까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그 시간을 다 낭비했던 것이고 그 모습 그대로 인생의 진짜 시험장인 결혼을 시작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핑크 빛을 꿈꾸며 시작했던 결혼인데 불과 몇 일 만에 핏빛으로 변해서 아내와 제가 이혼을 생각하고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생으로 떨어진 것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같이 말씀을 나누고 큐티인을 만들고 조금이나마 쓰임을 받게 된 것은 우리들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The Whole Christ의 한 부분으로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영광입니다. 정말 이렇게 이상한 인생이었는데 여러분의 고난과 여러분의 회개와 적용에 저는 그저 그 옷자락 붙잡고 이끌림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천국 문까지 끌려가는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 깨달아집니다. 더 슬픈 것은 말씀을 준비하며 우리들교회 사역자로 7-8년을 하고 있으니 양육이 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속마음에는 여전히 이 모습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너무 익숙한 모습이고 이상하지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 여전히 남아 있는 제 모습으로 인해 좌절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주님 옷자락 붙들고 가시고 이렇게 이상한 저도 여러분 옷자락 붙들고 데려가 주시는 게 너무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끝까지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내 몸을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즉시 손에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 각자 갑옷이 있습니다. 그거 수리하느라고 바쁘고 새 갑옷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내 갑옷 남의 갑옷보다 별 볼일 없는 것 같아서 슬프고 이것이 우리 인생인데 우리의 갑옷으로는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패배할 뿐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될 진짜 갑옷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 뿐입니다. 이제는 전신 갑주에 우리 삶을 잘 맞춰서 모든 무장들을 우리 손에 잘 들고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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