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1:10~17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상한 심령이 무엇일까?
1.새로운 피조물입니다.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믿음의 사람 다윗도 백전백승을 거두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바로 타락했습니다. 충성된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그 장수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 후 1년 동안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어두고 침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며 다윗의 죄를 정면으로 지적합니다. 당시 다윗은 여전히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기 때문에 왕권이 가장 강력할 때였습니다. 선지자의 고발에 얼마든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짜 뉴스라고 발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의도가 아니었고 내가 유혹을 당한 거라고 부하들이 과잉 충성한 거라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도 조작하고 뻔뻔스럽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일을 뭉개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의 직격탄을 듣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고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이 한마디로 다윗은 그야말로 공식 범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전국에 소문이 다 나서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땠을까요? 왕좌에서 내려왔어야만 했을 겁니다. 그 땅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 부은 받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왕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지고 수치와 조롱과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가 믿음이 많아서 일까요? 준비를 잘해서 일까요? 힘이 있어서 일까요? 그것은 그가 이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나단의 훈계를 통해서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회개의 기도가 본문인 시편 51:1-9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회개하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다윗이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어쩌다가 재수가 없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나는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죄인이다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셨다 원래부터 나는 죄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깨달음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소서' 입니다. 창조는 그냥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무에서 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고 또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이전에 없던 완전히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나 새롭게 하시는 것이나 다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안에는 깨끄하고 정직하게 될 가능성이 0.0000000001%도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더러울 뿐이고 그저 꼬이고 또 꼬여서 절대로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절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절대적 절망이 상한 심령입니다. 상한 심령은 그냥 상처 받은 마음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상심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산산조각난 완전히 부서지고 무너진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릇에 비유해 볼까요? 상처 받은 마음, 상처 입은 영혼 이란 표현을 요새 많이 쓰는데 이것을 그릇에 비유하자면 금이 많이 간 그릇입니다. 조각 조각 다 깨졌지만 그것을 어렵게 접착제로 딱 붙여 놓아 그릇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상처와 금이 가있고 흠이 있는 그릇이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한 심령은 그릇에 금이 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부서져서 조각 조각조차 완전히 부서지고 뭉개져서 가루가 되어버린 절망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절망의 상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루만 남아 있는 그릇이지만 누군가가 가루를 모아서 잘 반죽해서 전혀 새로운 그릇으로 빚어가고 있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제작하고 다시 생성해내고 있는 상태의 그릇이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 그 그릇을 만들고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한 심령은 이 세상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상처 많은 우리 인생의 비참한 최종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오늘 크고 작은 상처를 넘어서서 자신의 죄와 연약함 때문에 절망하는 분이 계십니까? 또는 아직 그런 죄 자체가 보이지 않고 아직 그런 상처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 말씀을 읽을 때 거리가 느껴지고 깨달아지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 다른 모습으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세우신 피조물의 증거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 상처가 많고 아직 상처도 경험해보지 않은 정도의 미천한 수준이지만 우리가 죄악에 대해서 맞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리의 악한 생각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고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갈등이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 안에 거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와 갈등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이 절망과 우울과 문제에서 제발 건져주시라고 애원하며 거기에 머무르기 보다는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성령과 함께 내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요즘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상처에 머물러 자기 연민에 갇혀 있습니까, 상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무엇입니까?
한 청년은 회심 후에 가장 많이 회개하는 죄가 음란이라고 합니다.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낙태까지 저질렀다고 합니다. 오히려 수술하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생명이 생긴 것은 엄청난 축복이니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말씀까지 하셨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본인이 너무 깨어지고 무너진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될 용기가 도저히 없었답니다. 그래서 낙태를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던 모든 것이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서 다 막히자 인생이 망한 것같은 큰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유서까지 써놓고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을 살고 있던 그 때에 예전에 들어두었던 우리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나 찾아 듣기 시작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 공동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와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목장에 나가고 양육을 받으면서 이 청년이 충격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저질렀던 낙태가 태중에 점과 같이 오신 예수님을 죽인 죄라는 것이 깨달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수 개월 동안 이 청년의 눈에는 통회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죽이 죄인 이라는 끔찍한 이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되니까 술, 담배, 음란의 모든 죄악들이 딱 끊어졌다고 합니다. 입에 달고 살던 원망과 불평과 욕이 그치고 찬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청년이 잘 양육되어서 청년부 목자로 섬기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처만 입어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상한 심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져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 청년이 계속해서 잘 빚어져 갈 수 있도록 기도로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즐거운 사명자입니다.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유일하게 영원한 것은 딱 하나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 때문에 즐거워하는 이 구원의 즐거움 만이 영원히 이어지는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을 모두가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은혜고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날마다 새롭게 주시고 회복시켜 주셔야만 우리가 이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할까요? 다윗은 택자이고 구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깊은 죄 중에 빠졌으니까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죄는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에서 끊을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즐거움은 죄 가운데 있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은 빼앗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의 죄를 회개하고 주께 돌아올 때 비로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윗은 '나를 붙들어 주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미 죄 가운데 넘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절망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붙들어 주시라고 기도합니까?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붙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원하는 심령이 무엇일까요? 강요나 계산으로 움직이는 그런 기계적인 심령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우리 스스로 판단해서 우리가 좋은 것들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일까요? 그 중에서 절반 정도는 무서워서, 위협을 느껴서 선택하는 것이고 또 그 중의 절반은 내 이익 때문에 뭔가 내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을 계산하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조건적인 것이고 노예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자원하는 심령은 정말로 자유롭게 순종하는 심령입니다. 순종의 이유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왜 믿습니까? 우리가 이 주일에 나와서 왜 예배 드리고 있습니까? 왜 하루를 시작하며 그 바쁜 시간에 큐티책 펴서 한 절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시나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수고를 하시나요?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나름 다 이유가 있겠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그것은 사실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도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밖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심령을 한 마디로 하면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로마서5:5에서 처럼 하나님께서 사랑을 할수도 만들수도 지을수도 없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원하는 심령, 하나님의 사랑을 주시고 계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삶, 이미 넘어져 있는 삶을 붙들고 계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사랑,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시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게 됩니까?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다윗은 '그리하면' 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를 붙들어주시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적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요 범죄자 중에서도 가낭 흉악한 범죄자 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빚어가고 계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죽어야 된다가 아니라, 죄인은 심판 받고 끝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은 주께 돌아와야 된다고 담대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상황에 즐거워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이 구원의 즐거움 때문에 즐겁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자유롭게 자원하는 심령으로 나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상한 심령, 많은 상처를 받아 가루가 되어서 내 자신에게는 절망 밖에 할 게 없는 이 상한 심령은 역설적이게도 즐거운 사명자입니다. 죄사함을 받아 구원 받으니 즐겁고, 이 연약한 인생, 상한 심령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겨주시니 그 또한 즐겁고, 찬송할 수 없고 불평과 욕밖에 할 수 없는 이 입술을 열어서 찬송을 넣어 주시고 전할 말씀을 넣어주시니 즐거운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천국의 즐거움인 것입니다. 영혼을 섬기는 사명의 현장에서 교회, 가정, 목장에서 여러분들이 말씀 들고 전하는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리게 해주시는 진정한 즐거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즐거운 사명자로 굳게 서서, 너무 상처가 많고, 아픔이 많고, 괴로움이 많고, 슬퍼할 게 많지만 상처 입은 마음, 상처 입은 영혼으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상한 심령으로 빚어가시는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즐거운 사명자로 굳게 서서 많은 사람들을 주께도 돌아오게 하시길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내 이익을 위해 계산해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내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자원하여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한 성도가 이번에 TT에 가서 간증 시간에 자기의 병을 다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목장 실습에서 만난 성도님들이 본인들의 마음도 열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아픈 자녀와 일찍 떠나보낸 가족 이야기등 솔직한 이야기로 나눔을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장이 다 끝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만난 지 몇 시간 안 된 이 분들과 서로 안고 펑펑 울면서 위로를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이 성도님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이야말로 모든 장벽을 허무는 만국공통어 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만난 적도 없고 서로 공통점도 하나가 없는 다른 인생들이 이렇게 오직 구원의 이야기로 하나가 되는 것이 천국의 즐거움을 우리가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목장에서 매주 누리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예배 때 마다 하나님께로부터 공급 받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이 성도님 건강을 붙들어 주셔서 주신 사명 끝까지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의 제사입니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제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형식적인 예배, 가짜 예배, 거짓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예배는 무엇일까요?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를 원어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고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기대하시고 좋아하시는 제사일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해서 드리는 제사 그러니까 제사 중의 제사요, 예배 중의 예배요, 최고의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시고, 무엇이 더 필요하셔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시겠습니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제사를 바라시고 구하실까요? 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굳이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만들어 두시고 우리 때문에 근심하시고 마음 아파 하시고 걱정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수고를 다 감당하실까요? 정말 이유가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너무도 기뻐하시고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아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드셔서 구원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 마음이 어땠을까요? 우리는 짝사랑을 하지만 받아주지 않는 상대를 향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나는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데 자식은 그 마음을 몰라주고 나를 떠나고 나를 미워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니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어요?
에스겔6:9에 우리가 우상을 섬겨서 주님을 근심하게 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근심하게 했다는 원어를 번역하면 상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과 같은 단어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무너지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서지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이 되셨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한 심령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 조금만 받아도, 싫은 소리 조금만 들어도 내가 잊지 않을거야, 가만두지 않을거야, 내가 열배로 갚아줄거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이 말도 안되는 상함을 겪으셨는데 이것을 겪으시면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정이 무엇입니까? 부숴버릴거야, 없애버릴거야가 아니라 살려야 되겠다, 내가 저것들 살려야 되겠다, 구원해야 되겠다는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점처럼 작아지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말 그대로 부서지셨습니다. 몸이 부서지시고 영혼이 부서지셨습니다. 그 상함을 다 당하시면서 우리가 당해야 될 모든 상함들을 주님이 다 대신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상처 투성이인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빚어가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상처까지도, 아픔까지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대신 탄식해 주시면서, 대신 신음해 주시면서, 대신 아파하시면서 우리를 상함 심령으로 빚어가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상한 심령이 되셔서 우리를 끝까지 구원해 가십니다. 그래서 로마서12:1 말씀 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요,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멀쩡한 사람이 아닙니다. 상처 별로 없는 사람, 상하다 만 사람, 안 상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다윗은 상한 심령을 다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통회하는 것은 깊이 뉘우치고 깊이 회개한다는 뜻인데 원어로 보면 완전히 뭉개져서 가루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완전히 뭉개져서 가루가 되어버린 그 심령, 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제사 중의 제사인 하나님의 제사,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서 드리시는 이 하나님의 제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부서지고 무너져서 가루처럼 으스러진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진짜 예배는 이처럼 부서지고 으스러진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소망을 두려하지 말고 나에게서 기대를 찾지 말고 내가 뭔가를 극복해 보려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주님, 저를 좀 살려주세요,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주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 주님, 저를 붙들어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폭삭 다 망하고 부서진 인생입니다. 가루처럼 뭉개져가고 후패해져가는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그 가루들을 모아서, 우리 삶을 모아서 새롭게 창조해 주셔야만, 또 즐거운 사명자로 세워주셔야만, 또 연약하고 부족한 삶이지만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셔야만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팔 벌리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상한 심령이라고 절대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상한 심령을 더 기쁘게 여기시고 두 팔 벌려 안아주시는 줄 믿습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 때문에 힘드십니까? 너무 큰 문제에 눌려서 그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아프십니까? 그것은 버림 받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산 제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섭시다. 상처때문에 억울하고 분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십니까? 그렇게 우리 자신을 더 무너뜨리고 으스러 뜨리고 부서뜨리십시다. 이것은 자학이 아니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가루로 만들어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창조 사역에 우리 손을 올려서 성령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 사역에 동참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자신이 상한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드립니까?
-나는 온전한 심령입니까, 상처 입기만 한 심령입니까, 상한 심령입니까?
아주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한 성도님 이야기입니다. 결혼하며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시집살이가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자상하고 따듯하게 해주었던 남편이 결혼하고 나니 시댁 편에 딱 서서 욕 방언을 해대는데 친정아버지의 레벨을 훨씬 뛰어넘는 욕을 남편에게서 들었다고 합니다. 창자로 줄넘기를 한다는 등등... 결국 이 분은 시댁 고난과 남편의 욕 방언을 참지 못하고 가출했습니다. 나가서 다른 남자도 만났는데 아들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맞아죽어도 할 말 없다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맞을 준비하고 들어갔는데 남편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눈물로 아내를 안아주었습니다. 알고보니 남편이 부인이 집 나간 사이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은 그 은혜를 금새 잊고 그동안 남편에게 당했던 일을 갚아주기라도 하듯이 남편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가족에게 암 사건, 돈 사건등 큰 시련들이 줄줄이 닥쳤습니다. 이 수많은 상처들을 당하고 나서야 이 분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돈과 남편을 우상으로 삼았던 죄인 이라는 것을 가족들이 많은 수고를 하고나서야 겨우 깨달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건으로 심령이 무너지고 부서지자 이런 고백이 나왔습니다. 바람 피고 나밖에 몰랐던 최악의 아내를 버리지 않고 함께 살아주며 가정을 지켜준 남편이 최고고 그 남편에게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의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한 심령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냥 상처 입은 마음으로 남았다면 이렇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상처가 상한 심령이 되어서 약재료가 되고 별처럼 빛나는 것이 되니까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내 죄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한 것입니다. 이런 상한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이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이고 다른 가정도 많이 살리는 사명 감당하는 즐거운 사명자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상한 심령은 새로운 피조물이고 즐거운 사명자이고 하나님의 제사입니다. 주님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아픈 자를 찾아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잘못 없는, 흠 없는 영혼을 찾아서 오신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부서지고 흠 있고 완전히 깨어져서 상한 심령을 찾아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가꿔가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상처 입고 다치고 눌리고 억눌린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두 손 들고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주님이 기쁘게 받아주시고 안아주시고 즐거운 사명자로 하나님의 제사로 만들어 가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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