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6:26-34)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차 전도 여행이 끝나고 예루살렘에서 총회가 열려 이방인들에게도 할례 없이 구원이 임한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그 뒤 바울이 안디옥에서 사역을 하다가 바나바에게 우리가 전도한 곳을 돌아보자고 해서 다시 떠나게 된 것이 2차 선교 여행입니다. 그런데 시작할 때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크게 싸워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길리기아 지방 아시아 쪽으로 떠나는데 이것이 2차 전도 여행의 출발입니다. 2차 전도 여행은 수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더베를 지나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루르드라로 갑니다. 거기서 디모데를 데려가비다. 그리고 이고니온을 거쳐 드로아로 갑니다. 드로아는 현재 튀르키에 지역인데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입니다. 이 곳에서 바울이 환상을 봅니다. 바울이 원래는 아시아 쪽으로 전도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통해 바다를 건너서 유럽으로 가게됩니다. 유럽에서 처음 만난 도시가 항구도시 네압볼리입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역 북쪽에서 가장 큰 도시인 빌립보로 갑니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이 세운 도시이고 로마 황제 시저를 암살하고 도망한 부르투스를 쫓아 시저의 양아들인 아우구스투스가 싸워 이겼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로마의 직할 도시로 승격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특별히 관리했고 특히 퇴역 군인들이 이 도시에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로마가 특별히 관리하는 도시이니 정말 번화하고 컸는데 바울이 이 빌립보에 도착해서 만난 사람이 자주 장사 루디아였고 그 다음 만난 사람은 귀신들린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주니까 점을 칠 수 없게 되어 손해가 막심한 주인들이 바울을 감옥에 넣어버립니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 말씀이 바울이 감옥에서 간수에게 한 말씀입니다. 너는 간수이고 네 가족은 간수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간수와 간수의 가족이 구원을 받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해 줄 사람입니다. 바울이죠. 바울이 옥에서 나와야 간수와 간수의 집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바울이 풀려나야 하는데 바울이 풀려나기 위해서는
1. 큰 지진이 나야 합니다.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큰 지진이 나야 바울이 풀려납니다. 바울이 지금 빌립보의 가장 깊은 하층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빌립보는 너무나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황제의 도시였고 너무 찬란하고 군인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찬란함 가운데 깊은 곳에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 화려한 도시에 너희는 어울리지 않아 하며 바울과 실라를 가둬 놓고 선을 긋는 것입니다. 옆에 시장이 있고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바울과 실라 즉 복음을 가둬놓아 버립니다. 빌립보를 관통하는 큰 도로인 에그나티아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는 승승장구하는 대로, 모든 무역과 군인과 영광이 흘러가는 도로 옆에 있는 깊은 옥에 가둬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옥에 간수를 두어 나오지 못하게 지킵니다.
에그나티아 도로와 많은 시장에서와 같은 경제활동과 일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둬버립니다. 기도와 찬양을 우리 삶 가운데 가둬버립니다. 그리고 주일에만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거야 하면서 우리 일상의 삶에서는 가둬버립니다. 왜요? 손해를 보니까요. 바울과 실라가 나오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뭔가를 할 때 내가 크리스찬이다, 말씀 보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하면 손해 볼까봐 우리를 가둬버립니다. 모든 것이 내 이익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내 성공, 공부, 돈, 빌립보에서 살아가야 할 이 모든 스펙을 쌓기 위해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내 생각 안에 가둬버립니다. 그리고 이 수치는 드러나면 안돼 하며 간수를 세워서 지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인것을 드러내면 손해를 보기에 우리는 주님을 숨깁니다.
저역시 우리들교회 오기 전에 평신도로 예배드릴 때가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다시 사역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평신도로 섬겼던 교회에서 아내가 제 이야기를 하면서 상담을 했습니다. '제 남편이 결혼전에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제가 너무 힘들어요' 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제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내에게 '네가 지금 내 사역을 망칠 생각이냐?' 내가 에그나티아 도로로 쫙 사역을 시작해 가야 하는데 결혼 전의 죄악과 수치를 드러내면서 상담하니까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고 꽁꽁 싸매고 숨겨놓았던 죄와 수치를 끄집어내서 이야기 하니까 불같이 화를 낸 것입니다. 제 사역에 그런 이야기들은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가서 찬송과 기도를 하지만 내 깊은 심연, 하옥에 가둬버리고 간수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들교회에 온 뒤로도 저의 수치나 아버지, 어머니, 저의 죄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늘 제 자랑만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나의 죄, 연약함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정신 분석 심리학자 지그먼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잠복해 있다가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우리 하옥에 있는데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복해 있다가 다른 곳으로 더 파괴적이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힘이 생기고, 권력이 세지고, 돈이 생기고, 세상적인 지위가 생기면 이 감옥, 우리 안에 있는 이 그림자는 더 깊습니다. 간수의 힘이 셀수록, 내 힘이 더 셀수록 문은 더욱 굳건하게 지켜지겠죠.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하면서... 그런데 가둔다고 사라지짖 않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지진이 일어나니까 옥터가 움직이고 굳게 닫힌 모든 문이 다 열리며 바울과 실라 뿐만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든 죄수들의 매였던 것이 다 벗어지고 풀어집니다. 지진이 갑자기 우리 삶에 일어납니다. 지진은 우리 인생에 큰 고난일수도 있고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는 것은 전부 수동태로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니 나의 나라가 흔들려 버리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 지진이 계속 일어납니다. 갑자기 내 모든 뿌리가 흔들리는 일들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큰 지진의 사건은 멸망의 사건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지진을 통해서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회개케 하시는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옥토가 움직이듯이 내 존재의 기초가 말씀으로 뒤흔들어 깊은 회개를 할 때 우리 삶에 모든 닫힌 문들이 구원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옥토가 움직였다는 것은 기초가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초, 우리의 가장 근본 즉 죄입니다. 우리는 이 죄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간수를 두어 지킵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니 내 삶에 송두리째 뒤흔드는 문제, 사건이 생기니 우리는 그 안에 풀려나버린 죄악을 봐야하는 것입니다. 그 때 잠금 열쇠가 열리고 내 죄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는 사건은 내 죄를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고 이 죄를 보면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케되는 것입니다. 지진 같은 사건, 내가 무엇을 가두는지, 내 지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줍니다.
그 밑바닥 뿌리에는 우리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호주에 갔을 때 어떤 사역자가 보여주신 그림입니다. 이 분도 지진 같은 사건들을 통해 풀려난 밑바닥의 감정들을 보게 되었다는데 가장 밑바닥에는 Rejection(거절감)이 있습니다. 이 분도 아버지, 어머니께 버림을 받았더라구요. 너무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거절감이 자라니까 자신감 부족(Lack Confidence) 그리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Fear of being rejected), 고집셈(Stubborn), 반항적인(Rebellious), 완고한(Hard heart), 음란, 정욕(Lust, Not Love), 낮은 자존감(Low Self image), 그리고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Focus only on self) 이런 것들이 거절감을 통해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라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둬놓기만 하면 이것이 내 생각의 양분을 먹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밑바닥의 감정을 우리가 봐야합니다. 지진의 사건을 통해서 내 밑바닥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그것이 거절감인지, 인정욕구인지,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인지, 상처 받은 자아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외로움인지, 복수심인지 봐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보기 싫어서 2층, 3층으로 감옥을 만들어버립니다. 그 2층 감옥이 방어기제입니다. 이 방어감정으로 눌러버려서 나 화 났어 라고 말하지만 그 화난 감정을 깊이 들어가보면 나는 두려워, 버려질까봐 무서워 하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안아주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간수처럼 막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미 사회에서 성공했고 이뤘기 때문에 이제 이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진같은 사건을 만나면 이런 감정들이 풀려납니다. 옥문이 열리죠. 그리고 열리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지옥 같은 시간을 주셨는지...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가장 하층 옥에 죄수들이 갇혀 있는데 그 곳에 바울과 실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바울과 실라가 가장 하층 옥에 갇혀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자는 이 지진 같은 사건으로 내 감정이 올라올 때 중심 깊은 속에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기도와 찬양을 했다고 하는데 기도는 말씀으로 한 것이고 찬양은 '찬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찬양입니다. 아마 시편으로 바울이 찬양을 드렸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얘기합니다. 정말로 혼돈스런 모든 원망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자에게는 말씀이 들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만 하면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하나님은 말씀과 찬양으로 바꿔버리십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내 안에 숨겨놓았던 것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보석처럼 빛나는 삶으로 하나님이 바꾸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열림이고 풀어남이며 회개입니다. 감옥 밑에 가둬놓은 이것이 죄수인 줄, 수치인 줄, 연약함인 줄, 어둠이며 멸망이고 죄악이고 내 삶에 불필요한 시간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기도와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를 떠난 것이 저의 기도와 찬송과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 지진의 사건입니다. 이것이 해석이 되면 우리는 이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용서가 상대방을 또 무너뜨리는 지진이 됩니다. 이 때 내 가족이 구원을 얻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어떻게 지하 감옥에 있게 되었나요? 손해봤기 때문입니다. 손해보는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이런 지진의 사건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지진은 내가 감춰두었던 말씀이 내 밖으로 나오는 시간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 적용하면 하나 풀립니다. 내 안에 올라오는 감정과 함께 내게 들린 말씀으로 하나 적용하면 하나 열립니다. 말씀에 내 삶에 임하는 것이 지진입니다. 왜냐하면 적용은 너무 싫은데 내 모든 생각을 거스르고 하는 것이 적용입니다. 그러니까 적용도 수동태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더. 너무 싫은데 에너지를 쓰니까 지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 적용하면 내 죄가 하나 태워집니다. 적용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힘 입어서 하기에 적용도 수동태이고 용서도 수동태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셔야 하는 것이고 말씀이 임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적용하며 흘리는 눈물은 내 모든 정서와 이성을 뒤흔드는 지진인 것입니다. 내 내면 깊은 곳의 어두운 감정까지 이 때 기도와 찬양으로 바뀝니다.
적용 질문
- 손해 볼까봐 기독교인인 것은 숨기고 가두고 있나요?
- 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어떠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나요? 그런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 아직도 삼중으로 가둬 놓고 지키며 고백하지 않은 연약함과 죄는 무엇인가요?
- 내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내가 지금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여기 있어야 합니다.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지진이 났는데 바울은 도망가지 않고 내가 여기 있다고 고백합니다. 지진이 나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수치심도 올라오고 자괴감도 올라오고 꽁꽁 숨겨놓았던 것들이 올라오니까 그 감정들을 견딜 수 없어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꽁꽁 묶어놓았던 죄인들이 올라올 것을 생각하니까 간수가 자결하려고 합니다. 이 죽음으로 내 명예를 지키리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면서... 간수 입장에서도 지진이 나서 강제 오픈이 된 것이잖아요. 자신은 절대 드러낼 생각이 없었는데 지진이 일어나서 내 수치가 드러나고 내 죄가 드러나니 감정이 올라옵니다.
저 역시 이런 수치가 드러났을 때 한 일은 자살시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막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것은 지하 원룸에서 머리를 삭발하고 펑펑 울면서 회개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회개하면서 했던 것은 하루 종일 말씀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지금 중고등부에 칼을 빼드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칼을 빼들고 자해를 합니다. 자해를 하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살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관계의 문제, 왕따의 문제, 학업의 문제, 부모님의 문제 등 내게 올라오는 죄수들이 너무 많은데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더 큰 고통으로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해를 하면 쾌감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자해를 계속 할 수록 모든 고통이 잊어지고 올라오는 쾌감으로 이것을 견뎌낼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습관이 된 친구들은 어떤 문제가 오면 자해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결하려고 칼을 빼든 사람들에게 가서 크게 소리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있다 외쳐야 합니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 힘든 사람들, 죽으려고 칼을 빼든 아이들에게 가서 나도 그랬다, 우리가 다 여기있다 크게 소리질러야 합니다. 크게 소리지르는 것은 그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들리도록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목장에서, 공동체에서, 부서에서 함께 소리질러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 공동체입니까?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바울이 아직 지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열려졌지만 아직 나가지 않고 지하에 있기 때문에 크게 밖에 있는 간수에게 상하지 말라, 나도 그런 아픔이 있다, 나는 그보다 더 죄인이었다고 외치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의 깊은 지하 그 곳으로, 하늘에서 땅 아래로, 점으로, 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죄인들이나 달려야 할 그 끔찍한 형벌인 십자가에 달리시려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그 아픔과 함께 한다. 너의 칼을 내려 놓아라 하십니다.
지난 주 말씀드렸던 아오리스트 시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은 한 번에 보시고 반드시 일어날 그 순간에 나를 껴안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내가 말씀으로 해석을 받으면 과거의 나를 껴안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나를 껴안아 주십니다. 제가 원룸에서 제가 죄인입니다 하고 펑펑 울며 회개할 때 우리 주님이 정말 저를 껴안아 주시더라구요. 그러니 하나님은 네가 이제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열렸다고 해외 여행 가고 남편이 돌아왔다고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기 그대로 살아있다고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문이 열리면 우리는 다 나갑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여기있다고 외치는 자리는 바로 죄인의 자리입니다. 죄수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나처럼 해 그러면 다 복수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어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가 내가 여기있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대단한 일을 행하고 교회에 기적을 베풀고 앉은 뱅이를 내가 일으켰어 라고 바울이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용서 받은 죄인, 내가 살해자요 박해자요 나도 죽으려고 했다, 하나님 앞에 용서 받은 죄인의 모습으로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는 이것이 은혜입니다. 문이 열려있어도 나가지 않고 우리가 다 여기있노라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떠나지 않고 직면하며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용서 받았으니까 목장에서 그 얘기 그만해 가 아니라 여전히 내가 죄인 임을 고백하면 그 고백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덮여 내 모든 모습을 가려주시고 죄인이라 고백한 그 바울을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십니다. 낮아지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러지 못하고 회피했습니다. 저의 수치가 드러나면 떠나려고 했고 끊으려고 했고 드러나지 않도록 지키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저의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늘 해외로 도피하며 떠돌아 다녔습니다. 어머니를 뵙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를 안 보려고 했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저의 수치, 죄악의 간증을 한 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진 같은 사건이 들렸습니다. 새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너무 슬펐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원망도 있었지만 어머니를 가장 사랑했고 자랑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잘 살고 예쁘시고 한 것에 대한 뿌듯함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들리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이후 어머니와 한 번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보면 속에서 올라와서 피하기만 했지 한 번도 여기있다 하면서 내가 죄인된 모습으로 이야기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지진 같은 사건이 들려 어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어머니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큐티책을 펼쳐 짧게 말씀을 요약하고 어머니께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하며 간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목장처럼 돌아가면서 나눔을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의 나눔을 들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 앞에서 통곡을 했습니다. 옆에 있는 아내도 제가 계속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이을 수 없으니까 휴지를 갖다주면서 토닥토닥 해주었습니다. 어머니 앞에 서면 저는 늘 고등학생 같습니다. 통곡을 하고 어머니 기도하시는 것을 녹음했습니다. 어머니와 이런 시간을 가진 뒤부터 조금씩 가둬두었던 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토스토에프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은 이성이 무너지고 진짜 자아가 드러나는 내면의 지진이다'라고 합니다. 눈물은 존재의 근원적인 흔들림입니다. 이 내면의 새로운 균열을 찾기 위한 재구성의 흔들림입니다. 이것이 내가 억울하고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 이 말씀이 내게 임해서 우는 눈물, 회개의 눈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울음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 외침으로 하나님이 또 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빌립보 교회가 이 간수장과 간수들고 인해 세워집니다. 빌립보 교회가 이 역사적인 순간에 내가 여기있다 외치는 순간에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허락한 이 가정에 있습니다. 주님이 허락한 부모, 주님이 허락한 남편, 주님이 허락한 아내, 나를 죽이려고 하고 내가 가둬진 것 같고 감옥 가운데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서 주님 내가 여기있습니다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약속을 성취해 주십니다.
적용 질문
- 해결되면 어디로 떠나고 싶나요?
- 지금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 내 삶에 지진이 기도와 찬양으로 변화되었나요?
3. 다 구원을 얻습니다.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죄인의 모습인 바울을 향해 간수는 오히려 주여 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그냥 여기에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냈냐? 어떻게 구원을 받았냐?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냐? 누군가 나에게 많이 묻는다는 것은 내가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묻습니다.
지난 주 한 집사님이 저를 보고 껴안는데 예전 저희 목장의 부목자님 이었습니다. 목장에 술을 들고 오셔서 제가 술 마시면 안된다고 했더니 뛰쳐나가고 제게 쌍욕을 퍼부으셨었습니다. 교회에서 눈에 띄면 눈깔 뽑아버리겠다고 하셔서 눈에 띄지 않겠습니다 하며 메세지를 보냈었고 자살하겠다며 전화를 했던 분이었는데 이 분이 너무 많이 변하신 것입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변해서 술도 담대도 끊었다고 하셔서 제가 그 때 어떻게 그렇게 됐어요? 하며 물었습니다. 아내 집사님이 정말 많이 맞았지만 끝까지 말씀을 지키니까 변화되고 천국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분이 변화된 단 한가지 근거는 바로 목장입니다.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하는 분들이 이 분을 끝까지 껴안고 있다 보니까 이 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죄수들, 죄인들 밖에 없는 빌립보에 유럽의 첫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간수가 바울에게 물었을 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대답합니다. 구원은 개별입니다. 내가 믿는다고 내 가족이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구원을 얻으리라도 2인칭 단수 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으로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고 바울이 했을까요?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것이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박해한 사람들도 함께 들어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것들을 지진으로 무너뜨리고 확장하기 때문에 내가 여기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을 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내 가족, 내 나라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무너지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너져야 합니다. 내가 무너져서 드러나고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을 때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나를 여기 있게 하는 것은 고난입니다. 우리는 너무 뼈속까지 죄인이기 때문에 고난이 없으면 또 뛰쳐나갑니다. 고난은 나를 여기 머물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어머니께 그렇게 제가 그런 죄인이었습니다 고백하며 통곡을 하니 저희 집이 구원을 얻게 하셨고 하나님이 오늘 저를 sample로 삼아 동일하게 이렇게 역사하신다고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있다 고백하니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전도축제 때 우리들교회에 오게하셨고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는 모습을 제 삶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치매 걸리신 어머니를 찾아뵙고 통곡한 그날 예배 드리기 전에 식사하러 갔을 때 어머니가 새아버지가 너무 힘들게 한다고 하셔서 돌아오는 길에 통곡하면서 주님 저의 어머니를 책임져달라고 하며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시고 담임 목사님께서 사역 그만두고 가서 섬기라고 하시는 메일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어 회개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평생 가족을 뒤로하고 예수를 쫓으라 말씀하셨던 것처럼 회개하며 맡겨드리고 가끔씩 뵈면서 큐티하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를 섬겨주시는 요양 보호사 분이 권사님이시고 그 분의 동생이 목사님이시고 너무 어머니 집도 어머니도 깨끗하게 섬겨주게 하나님이 해주셨고 더 놀라운 것은 한 번도 교회를 가본 적이 없는 새아버지가 오늘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아버지를 뵈면 새아버지가 말씀 이야기도 하십니다. 그 전에 몇 번 전도하고 말씀 드려도 전혀 나가지 않으셨는데... 또 새아버지의 할머니의 임종도 제가 가서 영접기도 해드리고 장례인도도 하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를 네일 아트샵에도 모시고 가고 어머니와 손도 꼭 잡아보는 회복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어머니와 새싹 큐티를 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치매 걸리신 부모님을 찾아 뵐 때 새싹 큐티가 최고입니다. 저희 가정이 어떤 가정입니까? 다 깨어지고 망하고 아버지는 죽으려고 칼을 들고 그 칼을 들었을 때 제가 아버지 손을 잡아 그 칼로 저를 찌르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힘을 주어 칼이 비껴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도 저희를 떠나는 그 밤에 바로 자살하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정말 다 깨어지고 죽고 칼이 난무하는 가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너와 네 집을 구원해 주리라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진 같은 사건 가운데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여전히 죄인된 모습으로 우리가 여기 있다 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 다가오는 전도축제 때 주보편지를 쓰며 전하겠나요?
하나님께서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하십니다. 지진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내가 금했던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나의 숨겨놓았던 감정까지 드러나게 하시며 이제 그 가운데 하나님이 그 속에 기도와 찬송이 있다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환경을 기도와 찬미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열린 그 모든 것들이 해결되었음에도 이제 내 감정이 회복되었어가 아니라 여전히 머물러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너와 내가 똑같은 죄인이라는 모습으로 내가 여기 있습니다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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