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5-26
본문에서 동역자들과 함께 온 사도바울은 소수의 형제들에게 기꺼이 환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야고보와 예루살렘 장로들은 사도바울의 자세한 선교보고를 듣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지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장로들의 처방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는 적용을 합니다.
원수였던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영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의 열심을 함께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접이라고 하면 빼놓지 않고 보게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 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만세전에 이미 우리를 영접하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11월 전도축제를 준비하며 우리 가족과 주변 친척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접할 때 또한 주님의 구원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말씀을 보겠습니다.
구원을 위해 기꺼이 영접하려면
1. 여러 날을 기다려주며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이 여러 날 후에'라고 합니다. 왜 바울은 당장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지 않고 여러 날 후에 출발할까요? 바울이 유두고가 떨어질 때까지 설교한 이유가 급해서 늦게까지 설교했잖아요.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질 정도로 바울은 밤새 설교를 했습니다. 그정도로 급하게 예루살렘으로 갔는데 예루살렘 앞에서는 여러 날을 보냈습니다. 앞서 선지자 아가보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니까 함께하는 동료들이 울면서 바울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 인생이 사명 따라 왔다가 사명 따라 간다고 울지말라고 양육합니다. 이렇게 양육의 시간이 지난 여러 날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원어로 보니 '여장을 꾸려 ~ 올라갈새'는 주어가 '우리가' 입니다. 바울이 올라갔다가 아니라 우리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 사람도 사명의 길을 혼자 갈 수 없습니다. 함께 하는 우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진실성의 결론인 인내로 우리가 되기까지 여러 날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장 식구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부모님을, 배우자를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야하기에 구원의 때까지 기다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인내로 기다리며 여행짐을 싼 바울 일행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16 가아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사실 바울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분인 빌립 집사와 함께 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동행하지 않고 이름도 등장하지 않은 가이사랴의 몇 제자만 함께 간다고 합니다. 가이사랴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했던 지역이고 말씀만 전했는데 성령이 임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서 온 몇 제자는 이방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동행하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오랜 제자라고 소개하는 구브로 사람 나손이 등장하는데요 오랜이란 단어를 원어로는 초창기로 볼 수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 받는 것부터 함께 한 초창기 멤버, 우리식으로 하면 개척 멤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올라가면 핍박과 결박 당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어떻게 초창기 멤버 나손은 바울과 동행하고 심지어 그의 집을 이방인들이 가득한 바울 일행의 숙소로 내주기까지 할까요? 앞서 바울에게 집을 내준 사람들은 분노가 난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많이 겪었습니다. 잡혀가기도 하고 보석금을 내기도 하고... 그런데 어떻게 나손은 자기 집을 내주고 같이 동했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손이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구브로 사람이라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구브로에서 태어나 선민의식이 심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겸손한 환경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편견 없이 바울을 맞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겸손한 환경 중에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가이사랴의 몇 제자, 그리고 구브로 사람 같은 겸손한 환경에 있는 성도님들이 모였기 때문에 장차 올 환난의 복음을 듣고도 함께 하는 우리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잘 나갈 때는 좀 잊어버려도 힘들 때는 반드시 생각나는 우리 공동체와 목사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향해 여러 날을 기다리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사명을 향해 함께 하는 우리를 예루살렘에서 영접하는 형제들도 등장합니다.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냥 영접하는게 아니고 기꺼이 영접합니다. 아주 기쁘게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은 바울을 기꺼이 영접할 수 있었을까요? 자격 없는 나를 기꺼이 영접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고난을 향해서 오는 바울을 기꺼이 영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꺼이 영접하셨기 때문에 나도 기꺼이 힘든 지체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사도 바울과 동역한 형제들을 16절에서는 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7절에서 바울을 영접한 사람들을 제자들이 아니라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제자와 형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같은 말이지만 누가가 16, 17절에서 의도를 가지고 나눠놓은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고난을 감수하고 함께 가는 동료로서는 제자인 것이고 사명의 자리인 예루살렘에서 힘든 지체를 받아주는 역할로서는 형제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예정되어 있는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는 제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동시에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기꺼이 영접할 수 있는 형제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사람의 나눔에 있는 그대로 '저 사람 왜 이러지? 저것도 고난이야?'가 아니라 나도 그랬다 하며 기꺼이 영접할 수 있기를, 그런 목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목장에 오는 어떤 분이라도 기꺼이 영접하면서 그 영혼을 있는 그대로, 어떤 중독이 있든지 간에 어떤 죄가 있든지 간에 안아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도, 저도 혼외자인데 혼외자도 영접해 주셨는데 영접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제자이기 때문에 또한 형제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우리가 된 바울 일행은 다음 날 야고보에게로 들어갑니다.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게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0km 된다고 합니다. 차가 있어도 쉽지 않은 거리인데 이 먼길을 여행한 바울은 쉬지 않고 바로 다음날 선교 보고를 하기 위해 들어갑니다. 함께 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날을 기다렸지만 이미 도착한 사명의 예루살렘에서는 지체하지를 않습니다. 우리도 구원을 위해서는 여러 날을 기다려야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구원을 위해서 적용하기를 지체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인내는 해야되지만 차차 마귀는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차차, 언젠가 이런 게 아니라 정말 구원을 위해서, 교회 가자, 예수 믿어야 된다는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여러 말을 꼭 참아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위해서 말해야 될 때는 일시적인 평화가 깨지더라도 지체없이 말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원을 위해 칼날 위의 물방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깨어 있어야 십자가의 타이밍을 알 수 있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야고보에게로 들어가야 할 때는 들어가는 십자가의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모든 장로들도 다 있었다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다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바로 이 자리에 바울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저를 기다려 준 간증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저희 장모님은 98년도에 우리 목사님 큐티 모임에 오셔서 살아난 분입니다. 그리고 방황하고 있던 아내도 2000년도에 장모님을 따라 큐티 모임에 나왔고 말씀이 들려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목사님 댁에서 개척을 하실 때는 함께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인천의 한 교회로 오게되었는데 저만 수지맞았습니다. 저에게 유다의 구속사 큐티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바로 아내입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연애한 것은 아닙니다. 제대하고 나서 제가 쫓아다녀서 결혼한 것입니다. 제 출생이 막장이니까 연애도 막장인 줄 아시는데 아닙니다.^^ 저의 아내는 연애하면서 제가 신학 대학원 때 초창기 큐티인을 제게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 당시 너무 교만해서 무슨 큐티인을 가지고 큐티하냐 나는 헬라어로 큐티하는 사람이다 하면서 돈 아깝다고 사지 말라고 하면서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내 혼자 큐티인으로 큐티를 하고 저는 논문을 쓰고 아내는 제 옆에서 묵묵히 아침마다 식탁에서 큐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러 해 동안 저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겸손한 환경이 되어 큐티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결혼하고나서 비빌 언덕이 드디어 생기니까 어머니께 지랄총량을 했습니다. 착한 아들로 살아왔는데 29살이 되어 막 소리를 지르고 반항을 했습니다. 어머니께도 상처로 움직이고 태어난 딸에게도 상처로 움직이니 저는 기저귀 찰 때부터 어머니가 저를 혼자 두고 나갔는데 제 딸만큼은 결코 혼자두지 않으리라 하면서 어린이집을 안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파트 사역자로 일하면서 일하는 아내가 없는 동안 온전히 아이를 케어했습니다. 그래서 육아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런 목사입니다. 코로나로 발이 묶이기까지 하니까 정말 겸손한 환경에 더 낮아지더라구요. 그제서야 비로소 제가 스스로 큐티를 찾아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큐티인을 쓰면서 깨달은 하나는 이 큐티인이 정말 사람 살리는 책이고 예수 믿게하는 책이구나 입니다. 성도님들의 간증을 읽으며 그제서야 숨이 쉬어졌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우리들교회에 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어서 사역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자그마치 1년 동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3년 전에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목장에 온 첫날에 아내가 신학생으로 목사가 된 남편과 결혼해서 우리들교회는 절대 못 올줄 알았다고 하며 오니까 너무 좋다고 간증했습니다. 저도 우리들교회 공동체가 생기니까 인생의 방황이 그친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행복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래보이지 않나요? ^^ 진짜 행복합니다. 구원을 위해 초청할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에 여러 날을 잘 기다리셨죠? 마지막 순간까지도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깨어계서서 십자가의 지혜로 잘 기다리고 또 말해야 될 때는 분별해서 잘 말할 수 있는 모두가 되어서 16일날 정말 구원의 잔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질문
- 구원을 위해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하는 VIP는 누구입니까?
- 내가 편견없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 겸손한 환경은 무엇입니까?
- 고난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기꺼이 영접하고 있습니까?
- 지체하지 않고 들어가는 적용을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말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며 손해보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예루살렘 당회에 들어간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하나하나 낱낱이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바울이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어요. 우리가 2박 3일 국내 씽크 트립만 다녀와도 할 말이 많잖아요.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몇 년 동안을 돌았으니 낱낱이 말하려면 하루가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선교 보고를 들은 누가는 바울의 보고를 듣고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성령행전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해서 초대교회가 방언으로 말할 때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성령 받은 사람이 120명 이었습니다. 120명이 각자가 얼마나 많은 방언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수많은 말을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라고... 바울도 낱낱이 보고를 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분명히 포인트를 맞춥니다. 가족과 대화하는 우리의 언어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딸과 대화해도 하나님이 하신 일, 남편과 대화해도 하나님의 큰 일 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어떤 말을 해도 은근히 내가 했다고 생색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하신 구속사가 아니라 내가 했다는 세속사가 섞여있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생색이 올라올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주차봉사를 끝내고 판교 로비 화장실에 들어가면 회개를 합니다. 은혜를 아는 만큼 생색이 없어집니다 라고 화장실에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험난한 산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겪고 유대인들에게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섬긴 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셨다는 일관된 내용으로 보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가 이렇게 구속사의 한마디로 정리될 때 우리의 배우자, 자녀, 부모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은혜로운 선교 보고를 받은 예루살렘 교회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바울의 사역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니까 영광을 돌렸겠죠? 하지만 예루살렘 당회는 예루살렘의 현실을 알려줍니다. 유대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라 수만명이 있지만 율법에 열성이 있다. 율법에 열성이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지만 율법에 너무나 열심이 있어서 예수를 믿지만 옳고 그름으로만 보는 연약함이 있어서 바울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는 명절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 때마다 바울 욕과 비방을 하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 해, 두 해 반복될 뿐만아니라 여러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 똑같이 얘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옳고 그름으로 예수 믿으니 오해로 쌓이고 편견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에게 긴 처방을 합니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예루살렘 장로님들은 말이 아니라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손해 보는 적용만이 이 오해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오해를 짧은 시간에 적은 말로 푸는 방법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실인 서약을 한 네 명을 데리고 직접 가서 손과 발이 가는 수고 뿐만 아니라 비용까지 냈습니다. 손해 보는 적용을 하는 한 사람이 있어야 서로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기꺼이 영접하는 방법은 손해 보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하면서 우리나라에 켜켜이 쌓여있는 지역감정과 진영논리가 생각났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풀리지 않습니다. 전국에 교회가 있습니다. 경상도에도 전라도에도 교회가 있지만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풀어낼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교회가 성전에 같이 들어가고 비용을 내는 적용으로 대구와 광주 채플을 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기가 대단히 힘들었는데 우리나라의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는 풀기 어려운 숙제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구채플과 광주채플 그리고 그 지역을 위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율법에 열심이고 예수를 믿는 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말 만으로는 오해를 풀 수가 없습니다.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적용 손해 보는 적용으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 이 쪽이 옳고 저 쪽이 틀리고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함께 한목소리로 나아가는 한국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존재적인 가해자가 되어서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니 오래 기다리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손수건, 앞치마 두르고 손이 가는 수고를 하고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손해 보는 적용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저도 호주 씽크 트립 다녀온 보고를 하겠습니다. 15만 명 정도 사는 작은 도시에서 그것도 공항에서 한 시간 타고 들어가야 되는 경치가 아주 좋은 테이블랜드라고 하는 지역인데 호주 케언즈에 갔을 때 토요일 오후에 큰 자몽 나무 아래 둥그렇게 앉아서 우리 팀과 현지 사역자들과 같이 교제하고 기도해주고 나눔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 파푸아뉴기니 출신의 우바우 목사님을 만나서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우바우 목사님이 살던 파푸아뉴기니 동네에는 원래 교회가 있었고 우바우 목사님은 신학대학으로 고향을 떠나 공부하고 왔는데 교회가 이상해졌답니다. 너무 뜨거워서 예배가 안 끝났답니다. 이상하다며 집에 있는데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답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영어를 해본 적도 배운 적도 없는데 유창한 영어를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가보니 아버지가 영어로 얘기하면 받아 적는데 보니 영어로 킹제임스 성경 방언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파푸아뉴기니 섬에는 100개가 넘는 부족들이 있고 심지어 문자가 없는 부족도 있어서 선교사님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부족의 문자를 만들어주고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땅에 언어의 사역이 너무 필요하니까 영어로 방언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너무 뜨거워졌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놀라운 표적은 그 표적으로 인해 목사님이 되신 우바우 목사님이 근래에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소천했는데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 코로나로 응급실에 갔다가 몇 시간 안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우바우 목사님이 갑자기 기타를 꺼내 들더니 아내에게 찬양합시다 하며 기타를 치시더랍니다. 정말 하나님 만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로 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그 다음날 저희를 초대하셨습니다. 영어로 간증과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 날 큐티 본문 말씀이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해서 교회가 흩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흩어지면 전도하고 남아있으면 울면서 회개하고 기도하더라구요. 각자의 역할이 다릅니다 하고 설교를 하고 그러면서도 핍박하는 사울도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사울이라고 생각했던 제 간증을 했습니다. My mother is a widow and my father cheated on her. 그리고 나는 그 아들입니다 라고 간증하며 제가 어머니를 얼마나 핍박하고 어머니에게 원망했는지 나누고 나서 그런데 내가 예수 믿고 우리들교회에서 구속사로 해석되어서 Thank you mom, I love you mom. 이라고 했다고 하니 다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선교팀에게 파푸아뉴기니어로 된 축복송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간증했던 자리에 우바우 목사님의 친척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싸우고 지긋지긋해서 고향을 떠나 호주에 있었는데 저희의 살아낸 간증과 설교를 듣고나서 부모님께 사과하는 적용하려고 비행기 티겟을 끊었다는 소식입니다. 돌아간 자매와 파푸아뉴기니 땅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구원을 위한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손과 발이 가는 적용으로 섬시기는 일주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질문
- 내가 하는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됩니까, 아니면 은근한 내 자랑과 생색입니까?
- 말로 회복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구원을 위해서 손과 발이 가는 적용,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3. 나의 죄를 항상 보아야 합니다.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다 얘기했는데 예루살렘 당회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방인들과 형제가 되지 못합니다. 바울에게 '형제여'라고 말했는데 바울을 통해 세워진 이방인들에게는 '주를 믿는 이방인들'이라며 official하게만 다가가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편견과 가치관을 꺾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그러니 자기 죄를 보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이 맞습니다. 10월 31일이 종교개혁 기념일 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나를 말씀으로 개혁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매일 매일 큐티하며 내 죄 볼 수 있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장로들도 바뀌지 않는데 나와 우리 목장 식구들이 오랜 시간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올해 말씀이 들려 적용한 일이 있다면 연말에는 파티를 해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적입니다. 당연한 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공회에 참석하고 나서 예루살렘 공회의 믿는 성도들의 연약함을 체감했을 것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선교 보고를 이렇게나 했는데 믿는 유대인, 믿는 이방인 이렇게 나눠 놓는 것입니다.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한마디도 토를 달거나 반박하지 않고 곧바로 질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주어를 잘 보세요. 우리가 여장을 꾸려서 왔는데 주어가 바울이~로 바뀝니다.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혼자하는 겁니다. 장막을 만들며 자비량 선교를 해온 바울인데요 손수건과 앞치마 까지도 쓰임 받은 바울이 이제는 네 사람의 결례를 위한 비용을 혼자 내고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루살렘 당회의 처방을 따른 것입니다. 십자가를 홀로 지신 예수님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질 때는 내가 온전히 혼자 내 십자가를 지고 가야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자기가 비용까지 대가며 예루살렘 교회의 질서에 한마디 대꾸없이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이 바울에게 어떤 곳입니까?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무서운 얼굴로, 무서운 열심으로 돌로 쳐서 죽이라고 증인 섰던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내 죄가 선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구원을 위한 적용과 순종을 아무 말 없이 곧바로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패가 확실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살리고 가는 것입니다. 내 죄가 확실하게 보이는 사람이 생색 없이 섬기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낳고 남편이 자살을 해서 과부가 되신 분입니다. 그러다가 딸까지 물에 빠져 익사하는 바람에 서울에 올라와서 식당을 하셨는데 거기에 단골손님이셨던 유부남이 저의 아버지이고 제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호적에 제가 올라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다 보니까 중년 남자를 무서워했습니다. 무서우니까 착하게 자랐는데 유일하게 지랄총량을 채우고 막대한 분이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바울의 예루살렘 같은 존재였습니다. 청소년부 촬영차 경기도 양주에 가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하셨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친척이 돌아가셨다며 이름도 모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5촌 누님의 장례식장인 경기도 광주에 가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경기도에 있지만 70km 거리였습니다. 주일 설교 준비도 해야되고 밀린 일들도 많아 너무 고민이 되고 떨리는데 어머니가 더 떨고 계시니 어머니를 위한 적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장례식장에 찾아갔습니다. 당일 저희 집에서 목장이 있어 광주에서 인천까지 두 시간을 달렸는데 목장 시간이 임박해서 도착했고 아내가 혼자서 준비하느라 수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말씀의 손수건과 앞치마 적용을 했다는 생각에 생색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너무 놀랍고 기적인게 3년 전만해도 저희 집에서 10분 거리인 어머니 집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가면 화내며 들어가면서부터 집에 가자고 하고... 그런데 어머니가 양주에서 광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니까 제가 적용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시고 구속사가 있는 공동체에서 저를 살려주셨기 때문이 이런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치마 두르는 적용을 할 수 있도록 이 공동체가 함께 가셨고 저의 죄패가 어머니이기에 이런 적용과 간증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죄가 보여서 구원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고 표적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표적을 구하며 가족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며 11월 16일 전도축제날, 그 때 못 오시더라고 내 가족이 주님 앞에 돌아와 살아나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 예수님을 믿고 공동체 안에 오래 있었어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나의 세상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 내 죄를 기억하게 하는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 내 죄가 보이기 때문에 이번 주에 곧바로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위해 기꺼이 영접하려면 여러 날을 기다려주며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여러 날을 기다려 줄 때도 있지만 바로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말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며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나의 죄를 항상 보아야 합니다. 나의 죄가 보이는 예루살렘, 회개로 나아가게 하는 그 대상이 있기에 내가 오늘도 구원의 적용을 함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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