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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결과(성승완 목사님)

by relife_es 2026. 1. 4.

요나3:1-10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월 큐티가 요나서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무슨 복음이냐며 너무 가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향한 곳이 다시스인데 다시스로 가는 배에서 풍랑을 만나서 물고기 배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회개하고 난 후의 본문이 오늘 3장 말씀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절대

1.포기하지 않으십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요나에게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 그리고 그들에게 선포해라. 무엇을 선포합니까? 4절에 보니까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라고 선포하라고 합니다. 무너질 것을 말하라는 이유는 회개하고 돌아와서 살아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가지 않겠다는 요나를 이렇게 끝까지 하나님께서 붙들고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위해, 구원과 복음 전파를 위해 타협이 없으시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첫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요나는 너무 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서 욥바라는 곳으로 갑니다.

1:3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요나가 도망가려고 욥바로 갔는데 마침,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다시스로 인도하기 위해 배를 준비하신 걸까요? 아니면 이 배를 타고 풍랑을 만나고 물고기 배에 들어가서 회개해서 니느웨로 보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을까요? 다시 사명을 주기위해서? 마침, 이게 문제입니다. 이건 정확한 타이밍이야. 빼박이야. 이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야. 하나님이 가라고 주신 타이밍이야. 그리고는 배에 딱 올라타는 겁니다. 뱃삯을 다 지불하고... 그리고는 이게 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거야 이럽니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특별히 목장에서 하라는 것이 더 많은가요?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은가요? 말라는 것이 더 많죠? 가라는 곳이 더 많은가요, 가지 말라는 곳이 더 많은가요? 가지 말라는 곳이 더 많습니다. 많은 경우에 처음에 목장 가면 다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듭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좋아서, 즐거워서 이제까지, 이 때까지 이렇게 하고, 이렇게 가고 즐거워 했는데 이제 다 하지 말라는 겁니다. 얼마나 힘들어요. 듣기가 싫죠. 하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입니다. 왜냐면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 살아왔던 시간에서 이제는 거룩을 위해 살아가라고 그거 하지말라는 겁니다. 그렇게 목장에서 시간이 좀 지납니다. 그러면 이제 뭐라고 합니까? 하라고 합니다. 얼마전까지는 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부터는 하라고 합니다. 뭐하라고 하나요? 양육 받으세요, 부목자하세요, 주차 봉사하세요, 식당 봉사하세요, 교사 하세요... 계속 하라고 합니다. 하라고 하고 가라고 하는 것은 이제 거룩을 위해서 우리 삶이 조금 바뀌니 좀 더 사명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나고 우리 가정이 살아났으니까 살려야 될 가정과 살려야 될 사람들에게 나아가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사명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 가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우리가 행복하려고 살아왔던 삶에서 거룩으로 돌이키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붙어만 있으세요 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참 중요합니다. 공동체에서 검증을 받으셔야 합니다.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이 나에게 있으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거워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려놓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이것을 버리기 위해서 공동체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내가 남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목장의 검증을 받으셔야 합니다. 특별히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쉬우시잖아요~ 제가 아내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 쉽고 아내는 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가라고 하십니다. 다시스로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니느웨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가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위해서 가라고 하시는 겁니다. 요나가 가서 한 일이 뭐지요? 4절에 보니까 그냥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쳤습니다. 별로 한 게 없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한마디 하며 그냥 하룻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요나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하룻 동안 요나가 말한 이 한마디의 결과가 니느웨 백성 12만 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하는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에 있으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안 하고, 안 가는 것이 부르심이 아니라 하라는 것을 하고 가라는 곳에 가는 것이 부르심입니다. 내가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가지 말라는 곳에 안 가면 됐지 더이상 뭘 원하시는 거에요? 하지만 이제는 나만 사는 게 아니라 사람 살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안 한다고, 가고 싶은 곳을 안 간다고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라는 것을 하고 가라는 곳에 가는 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사명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하도 하고 싶은 게 많고 가고 싶은 곳이 많으니까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손발을 다 묶어놓으시는 겁니다. 무너지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이 자리에 있게 하시는 겁니다. 요나는 정말 한 게 없습니다. 이 자리에 불러놓으셨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생색이 나십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사명의 자리가 아닌 것 같으세요? 그런데 이 자리에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불러놓으신 목장이라는 자리, 우리들 공동체라는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12만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 또한 12년 전에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곳에 서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용질문

-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있게 하신 나의 오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분이 나나요? 그 자리가 사명의 자리입니다.

 

큐티엠 간사님 적용입니다. 제조회사에서 만년 막내로 10년을 일하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가리지 않고 맡았습니다. 잘릴 때까지 다니라는 조언을 붙들면 언젠가는 인생이 보상 받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회사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더이상 회사를 의지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 살 길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경쟁력이 있어보이는 온라인 M.D로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갑작스럽게 퇴사해 청담동의 한 브랜드에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만성 우울로 에너지가 부족했던 저는 야근과 감정적인 상사, 매출 압박 속에서 단 3일 만에 공황을 겪었고 다시 정신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10년의 시간이 결국 무능력과 무스펙, 정신 질환으로 남았다는 생각에 깊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1년이 되었을 쯤 두 번 지원했던 큐티엠 영문판 부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적으로 더 좋아보이는 일을 쫓아 떠났던 제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의 직장 생활이 제게 꼭 필요했음을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고 그 과정을 지나 구속사 복음을 전하는 겸손한 사명의 자리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성공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열심히 일을 하고 청담동의 한 브랜드 회사에 입사를 했지만 거기서 결국은 공황장애와 우울증과 상사와의 갈등, 여러가지로 인해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큰 물고기 배에 들어가는 시간으로 허락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큰 물고기 배에 들어가는 것은 복입니다. 참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은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회개밖에 없습니다.

요나의 이 한마디 선포로 요나가 그렇게 가기 싫었던 니느웨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볼까요?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5절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합니다. 6절에 이 소식에 왕에게 들리고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이것은 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7절에 왕이 금식을 선포합니다. 공동체에 회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8절에 모두가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는 모든 백성이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회개를 촉구합니다. 9절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기를 구합니다. 우리의 회개를 통해 멸망을 막아주세요. 우리를 향한 진노의 잔을 피하게 해주세요. 합니다.

어찌됐든 요나는 니느웨로 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울고만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기 싫은 곳에 가기로 결정하고 한 발을 내딛는 것에서부터 회개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의 회개의 한 걸음을 통해서 니느웨 백성 12만 명이 돌아왔듯이 회개의 역사가 내가 밟는 그 곳에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마음만 돌이키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회개는 유턴을 의미합니다. 유턴은 가다가 돌아서는 것입니다. 돌아서서 돌이켜서 다시 걸어오는 겁니다. 그런데 혼자는 안되고 힘드니까, 혼자하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다시스로 뱃삯을 지불하면서 갈거니까 공동체와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주고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와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나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요나가 혼자의 생각으로 니느웨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큰 물고기라는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유턴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큰 성읍 니느웨에서 떵떵거리며 잘 사는 이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겁니다. 요나 선지자의 하루의 외침으로 인해서 돌이키고 회개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기회가 주어진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요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하는 것을 사흘을 걸려야 하는 니느웨에서 단 하루만 이야기 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아니면 너무 애통이 되어 눈물 흘리면서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요나는 그냥 하라는 대로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왕이 듣고 왕이 금식을 선포하고 온 백성, 온 공동체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온 공동체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죠. 요나 한 사람,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들은 왕 한 사람을 통해서... 나 한사람의 회개가 그런 것입니다. 내 죄패, 내 고난, 이 모든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어서 회개의 큰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살립니다.

큐티엠 스텝들의 간증 영상

큐티엠 스텝들이 먼저 다 연약함을 고백하고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죄인 된 마음으로 또 다른 죄인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 명 한 명 보게 되면 작기가 그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큐티엠이라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구속사의 말씀으로 책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고 회의를 하고 집회를 진행하고 책을 포장하고 부치고 행정, 회계 등등 수많은 업무들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다 죄인 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죄인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 죄인들이 모여서 한가지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강에서 바다로... 나를 살린 이 구속사의 말씀이 강에서 바다로 나가기 위한 사명, 죄인이 죄인을 살립니다. 큐티엠 건물은 빨간 벽돌로 예쁘게 잘 지어져 있지만 건물 안의 사무실은 아주 치열합니다. 한 책상에 모니터를 4개 씩 놓고 일하는 분들고 계시고 빛이 들어오면 방해된다고 그 좁은 사무실에서 텐트를 쳐놓고 일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도 앉아있어서 엉덩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서 일하시는 분도 계시고 목장갑을 끼고 열심히 포장하고 나르고 차에 싣고 또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사람, 돋보기를 썼다 벗어다 하는 몇 안되는 사람, 대구 광주 제주 강원 충청 전국을 누비는 사람. 정말 비단 치마 속의 넝마라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셨는데 큐티엠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이제 이 강을 건너서 바다로 나아가는 사명 한가지를 주셨기 때문에 이 죄인들이 죄인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는 것은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글자 하나 때문에 아주 혼줄이 납니다. 디자인 하나를 몇 번을 고치고 또 숫자 하나에 목숨을 걸고, 4천원 짜리 책 하나 팔리면 너무 좋아하고 정말 작은 자리에 있지만 요나가 하루 동안 한마디 한 것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를 불러주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구속사의 열매를 있게 하실 줄 믿으면서 저희는 또 여전한 방식으로 내일 출근할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모든 자리가 그럴 것 같습니다. 목장에서 3-4 시간 동안 고작 한마디, 두마디 할 때도 있으시잖아요. 또 때로는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가실 때도 있으시잖아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나의 사명의 자리이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 가정이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고 세계가 살아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요나는 정말 한 게 없습니다. 그냥 가기 싫은 니느웨에 가서 무너질거야 이 한마디 밖에 안했습니다. 오늘 공동체에서, 불러주신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최고의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매일 간증문을 써주셔서 큐티엠 사역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 읽어주시는 분들, 나누고 전하는 모든 분들이 이 사역에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 책 한 권, 큐티책 한 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한 분 한 분 우리들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큐티엠 운동의 주역이십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큐티엠 본부가 복음의 총알이라면 그 총알을 들고 전방에서 뛰시는 분들이 성도님들이십니다. 

 

적용질문

- 돌이켜야 할 회개 제목은 무엇입니까?

- 돌이키고 앉아 있어야 할 나의 자리가 목장임을 믿으세요?

 

 

3.하나님께서 살리십니다.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의 외침 한마디를 듣고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는 니느웨, 이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작정하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작정하신 것을 다시 돌이키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무너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노와 고통과 고난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이 진노의 잔을 이제 멈추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큰 물고기 배에서 회개하는 나를 기다리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돌이키실 수 있으십니다. 무너지리라고 선포하라고 그 가기 싫은 요나를 니느웨로 보냈는데 안 무너집니다. 왜? 니느웨 백성들이 그 한마디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고난, 고통, 힘든 것들을 주시는 것은 나를 무너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회개를 원하시는 것이지 무너지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는, 아빠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하나님이 나한테 왜 그러시는 거야?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거야? 진짜 내 엄마 맞아? 내 아빠 맞아?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럴 수는 없는거야. 이것이 우리의 주제가 이잖아요. 그런데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주신 거에요. 그냥 이 궁금증과 원망의 말이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1대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요? 우리가 회개할 때까지... 타협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아직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거야? 나한테 진짜 이러시기야? 이런 말이 나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

담임목사님께서 사역자들에게 자주 하시는 질문 중 대표적인 것이 '그래서 회개는 했니?' 입니다. 저는 2012년도 12월에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온 지 2주 만에 이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초에 저에게는 조금 다른 표현으로 하셨습니다. '성목사, 구원은 받았니?' 질문하셨습니다. 제가 첫 치리를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신학교에 갔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단 간사로 전도사로 목사로 불렸습니다. 사역자가 되고 17년 정도 지난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표현이었습니다. '구원은 받았니?' 이 질문을 받고 제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눈물만 나오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살이 빠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 왜 목사님이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 생각 하다가 너무 생각이 안나서 정신과를 갔습니다. 약도 먹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구원 받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목사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늘 '일원론'을 말씀하셨습니다. 상황과 사람이 다 달라도 구원을 위해, 구원 때문에 못할 것이 없는 것, 구원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구원 때문에 해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구원으로, 일원론으로 끝나야 하는데 저는 여기서 다르고 이 사람 다르고 저 사람 달랐습니다. 저의 열등감이 인정 중독으로 바뀌면서 인정 받는 게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에 와서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도에 목사님께서 미국으로 한 달 동안 말씀 전하러 가시는 상황이 왔습니다. 저는 인정해 주시는 목사님이 눈 앞에 안 보이니까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한 달 동안 초원 모임도 안 가고 목자 모임도 안 가고 심방도 안 갔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오직 목장만 갔습니다. 보는 눈이 있으니까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역자들도 성도님들도 많은데 목사님이 어떻게 다 아시겠어 하며... 목사님이 돌아오시자마자 귀신 같이 아셨습니다. 그리고 건네신 질문이 '구원은 받았니?'였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치리를 주셨습니다. 치열하게 회개를 하고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열등감으로 인정만 받기 원하는 제 모습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인정해주셔야 하는 분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고 또 저를 바라보는 성도님들 앞에서는 웃고 뒤돌아서면 찬바람이 쌩쌩 불고 나에게 월급을 주는 교회로 여기며 사역을 하는 저의 모습, 구원에 관심이 없고 일로만 인정 받고 싶어했던 저의 모습, 그러니 앞 뒤가 다른 저를 인정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치리를 받기 전과 받고 난 이후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를 다시 한 번 소개드리자면 구원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성목사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을 제가 목회자 세미나 때마다 간증을 합니다. 저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셨던 목사님의 질문 하나로 요나와 같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고 가고 싶은 곳만 가려고 했던 저의 인생에서 이제 사명을 조금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물과 회개의 시간들이 제게 약재료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이 잎사귀를 약재료로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패와 고난은 다 이렇게 쓰여지게 될 줄 믿습니다. 큐티인에 실리는 모든 간증들이 다 약재료가 되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2026년도 우리들교회 표어 다같이 읽어볼까요.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이제 약재료가 되기 위해서 구원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저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처럼 제가 목회자 세미나에 오시는 담임목사님들게 부목사님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주시라고 늘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구원에 관심이 있을 때 우리의 고난과 죄패가 약재료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관심이 없으면 우리의 고난은 그냥 고난으로 끝납니다. 다시스로 가고자 하는 그 시간에 마침, 때마침 그 배가 오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그 배를 타고 갑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에 관심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우리들을 약재료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물고기는 바로 목장입니다. 나 혼자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다 다시스로 가고싶어 하잖아요. 나 혼자 할 수 없기에 허락해주신 큰 물고기는 바로 목장입니다. 모두 목장에 속하셔서 이 구원의 사역에 동참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질문

- 지금 어디에 관심이 있으세요?

- 그 모든 것보다 구원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 나의 약재료를 목장에서 한번 나눠보세요.

 

요나가 가시 싫은 곳에 가게 되는 것에서부터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일들로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니느웨를 보게됩니다. 그 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돌이키는 길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되면 하나님께서 살린다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그 은혜를 누리는 2026년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