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3:31-35
31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우리가 마가복음 큐티를 하고 있는데 마가복음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하며 시작합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척박하고 억압 받고 식민지 생활로 지칠대로 지친 이 나라에 천국 잔치가 시작됩니다. 말라기 이후에 400년 간 침묵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이 선포됩니다. 귀신이 쫓겨갑니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몸과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잔치입니다. 그런데 기득권과 자기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참여하지 못하는 부류가 더 있습니다. 지금 나는 이 잔치에 참여해서 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이 기쁜 잔치를 함께 누리고 싶은 내 가족, 친족, 이분들이 이 기쁨에 동참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제 말씀 20절에 예수님의 친족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여기서 붙잡는다는 설득해서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체포해서 가둬둔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가문, 집안이 옛날 만큼은 아니라도 한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군집 사회, 씨족 문화였던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심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네 집안 사람 미쳤더라' 이 소문이 들리자마자 예수의 친족들은 그게 사실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지 않습니다. 네가 우리 가문의 망신이다. 네가 내 명예에 먹칠을 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사람들과 딱 하나가 되버립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많은 세월 동고동락했던 육신의 어머니와 친동생들도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가족과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참된 예수님의 가족, 진정한 가족은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알려주십니다.
다음 주면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제가 명절마다 주로 설교를 해봐서 아는데 이 때마다 특별히 가족이 관한 말씀을 집중적으로 주시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명절이 5-6일 남았는데 이쯤이면 기차표 있나 알아봐라, 부모님께 얼마드릴까?, 너네 집에 몇일, 우리집에서 몇일 자자, 누구 만날거냐?, 날 내버려둬라... 등등으로 신경쓸 것도 많고 분주하실텐데 잠시 내려놓자고요. 잠깐 멈추고 오늘 말씀 앞에 같이 섰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주님께서 우리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님을 이 한 번 뿐인 땅에서 왜 그를 만나게 하셨는지, 가족의 목적와 의미를 깨닫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분명한 구원의 사명을 붙들고 그렇게도 사랑했고 미워했고 애통했던 가족을 만나러 갑시다.
가족을 만난 목적을 알려면
1. 내가 밖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1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예수님의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지자 수많은 사람이 몰려옵니다. 나 좀 살려주세요, 우리 가족 좀 살려주세요 하며... 그리고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새 교훈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장소가 산에서 집으로 바뀌는데 집에서도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이 때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아마 '네 아들 미쳤더라'는 소문을 들었겠죠. 너무 바빠서 끼니도 거른다니까 걱정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예수님이 잘 드시던 몇가지 음식을 손에 들고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 예수님을 만나러 와서 밖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와 그 동생들이 예수님이 계신 그곳에 가지 않고 밖에 서 있는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먼저는 들은 말씀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분명히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수태고지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누가 복음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요한을 만납니다. 약혼을 하고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지금 잉태를 해서 아들을 낳을 건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해, 장차 이 아들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고 너희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가 되실거야.' 라고 분명히 말씀으로 찾아와 주십니다. 마리아는' 나 아직 남자를 모르는데요.' 하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수태고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너무나도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밖에 서 있습니다. 어머니가 밖에 서 있으니 예수님의 동생들도 밖에 서 있습니다.
'밖에'는 원어로 EXO입니다. 한 공간과 완전히 단절된 다른 공간을 의미합니다. 마리아가 점차 생활과 세월과 사건에 치여서 자신이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의 사역도 도대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과 단절된 공간, 즉 밖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마리아에게 분명한 표적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이 들려 자복하고 회개하고 엎드려서 눈물, 콧물 다 쏟았던 내 삶의 표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 사연을 넘어서지 못하고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 많고 점점 말씀과 멀어져서 큐티도 놓아버리고 목장도 놓아버리고 점점 가기 싫어지고 매일 큐티하는 것이 귀찮아지는 이것이 내 모습은 아닐까요? 점검하셔야 합니다. 간절할 때 그렇게도 붙잡았던 큐티를 놓아버렸다면 말씀을 들어도 회개와 감격이 없다면 우리 다시 말씀으로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두번째로 마리아와 가족이 밖에 있는 이유는 기대와 자랑 때문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어에 보면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서 있다 할 때 그 앞에 정관사 'the(그)' 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바로 그 사람, 어떤 특정한 사람,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람을 얘기 할 때 '그 사람' 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특정 대상을 높이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예수님은 존경와 경외의 대상이겠죠. 그래서 어딜 가든지 그 사람을 청종하는 만큼 존경와 경외의 눈빛으로 다 쳐다보는데 이제 그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이 온 것입니다. 지금 가족이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그 어머니와 그 동생이 지금 밖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나사렛 시골에서 목수로 살아갔습니다. 그 가난한 집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경외와 존경의 시선을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한마디 하는거죠. '내 아들 좀 나와보라고 해요.' 지금 이순간 가족에게 예수님은 나의 열등감과 그동안의 사연을 해소해 줄 도구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이 얼마나 귀하고 값지고 중요한 사역을 하시는지,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에게도 거기 들어가야 하는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겁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된다. 나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마라. 너는 잘돼야해. 이 말 뒤에 내 욕심을 감추고 자녀와 배우자를 자랑의 이유로 삼는 것, 오직 자녀가 잘되면 기뻐하고 배우자의 승진으로 나의 어깨도 함께 올라가고, 반대가 되면 나도 함께 열등감에 바닥을 찍는 것. 이것은 나만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가족도 함께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자녀와 배우자 잘되는 것 복입니다. 하지만 오직 이것만 목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자녀와 배우자가 구원 받는 것보다 이 땅에서 잘되는 것에 점점 내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다면 내가 지금 밖에 있지는 않나 돌아봐야 합니다. 내 뜻을 이루어 줄거야.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 줄거야. 오직 이 문제로 울고 웃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면 우리가 알지않습니까? 다시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식구가 결코 우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밤중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죽고싶다는 연락을 받고 한 형제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 형제가 마흔이 넘었는데 옷이 다 찢어져 있고 팔뚝이 벗겨져서 피가 계속 흘렀습니다.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내가 지금 같이 있다가는 엄마를 어떻게 할 것 같아서 겁나서 도망나왔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싸워서 잉렇게 되었냐고 하니까 성질나서 자기가 자기 옷을 다 찢었다고 모기가 한 방 무니까 너까지 나를 쏘아붙이냐며 박박 긁었는데 긁다가 피부까지 다 벗겨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 옷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게 어디냐며 말을 들어보니까 본인은 어릴 때부터 수재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이뻐하셨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나는 먼저 시집가고 어머니와 둘이 남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뭘 해도 잘 안돼어서 답답한데 그 때부터 어머니가 너무 쏘아붙이고 잔소리를 해서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옮겨왔는데 그래도 부딪히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 날은 극에 달해서 죽음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사연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배우자를 갑자기 여의고 아들에게 얼마나 기대했겠어요. 그리고 그 아들은 뭐라도 해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우리 가족 다툼이 별게 아니고 대부분 이런겁니다. 내가 원하는 기대와 같아질 수 없는 감정들이 부딪혀서 결국은 서로 미워하고 오해하고 서로 기대만 하니까 나도 밖에 있고 들어가는 사람도 끄집어냅니다. 며칠 전에 형제에게 전화했는데 그동안 형제는 양육을 받고 목장에서 나누면서 문제의 근원이 어머니가 자신에게 집착하고 쏘아붙이고 기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본인의 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것을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본인보다 훨씬 연약한 자매들이 너무 폭력적인 아버지는 용서하기 시작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큐티 나눔하라는 처방을 들었는데 아직 안된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 쪽이라도 안으로 들어오려는 애씀이 결국은 밖에 서 있는 가족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시작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가족은 구원을 위해서 맺어주신 만남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모르면 기대와 자랑이 가족의 이유가 됩니다. 말씀과 멀어지고 가족에게 기대만 커진다면 아, 내가 밖에 서있구나 인정해야 합니다. 깨닫게 해주셨을 때 회개하면서 다시 말씀 듣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함께 동행하는 가족되시기를 축복하며 소망하겠습니다.
적용 질문
-지금 밖에 서 있는 가족은 누구입니까?
-우리 집안의 가훈이 있습니까?
-그 가훈을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까?
2.둘러 앉은 자리로 불러야 합니다.
33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참 매몰차게 느껴지는 이 말씀은 실제로 이단이 주로 쓰는 구절입니다. '저 사람들은 너의 부모가 아니야' 할 때 많이 씁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부모를 버리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가족을 버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만남을 최초로 계획하셔서 이 땅에 보내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 가족이라는 단위를 세상에 주신 분이 가족을 깨버리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19장에 보면 십자가에서 팔다리가 못에 박히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십니다. 한마디만 해도 피가 솟구쳐 나오는 그 상황에서 힘겹게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을 불러 보라 네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부터 요한은 마리아가 소천하기까지 극진히 자신의 어머니처럼 마리아를 모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끝까지 효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이 선언은 혈연을 근본이라고 여겼던 당시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이 던지셨던 한덩이 바위입니다. 이제 더이상 너희가 울타리 짓는 그 가족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씨족 사회였던 당시 이스라엘의 가족의 기준은 혈연관계인 가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버지인지 누구의 자손인지가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위치와 배후를 결정합니다. 그 가문이 좀 잘나면 등등하고 반면에 내세울 것이 없다면 위축되어서 노예처럼 사는 게 당연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 울타리, 내가 만든 울타리, 내 아들, 내 아버지, 내가 만든 우리 씨족 사회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기에 돌을 딱 던지시는 겁니다. 이렇게 가문과 혈연으로 가족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그 옛날 이스라엘만의 풍조이며 현상일까요? 우리는 오늘도 힘들게 하는 가족 때문에 죽고싶습니다. 다른게 아닙니다. 반대로 내 부모와 자녀가 훌륭하면 기를 펴고 삽니다. 부모의 재산, 배우자의 직업, 자녀의 직장과 학업, 집안의 분위기가 이 가정, 이 울타리를 지켜주는 안정과 만족을 주는 틀이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 가족, 내 식구에 집착하다가 결국 식구끼리 둘러 앉아 가장 큰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가족의 목적을 몰라서 서로에게 집착하는 우리에게 진짜 가족을 알려주십니다.
34절
누가 가족입니까? 예수님 앞에 둘러 앉아 있는 자들이 가족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면 보이는 겁니다. 거기에 함께 둘러 앉아야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 없이 가족끼리 둘러 앉아 서로만 보고 있으면 결국 집착과 원망만 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 앞에 앉아야 말씀으로 함께 지어져가는 가족이 됩니다.
한 집사님이 만난 지 두 달 만에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했답니다. 결혼 전에 남편집사님이 하루 24시간 중 2시간만 빼고 22시간을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고 아내 집사님이 그것을 진짜 믿고 잠옷을 네 번 바꿔입으면서 22시간 동안 남편을 붙잡아 두었답니다. 자유롭게 자란 남편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으니 애증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나랑 하루종일 있어준다면서 그렇게 못해주냐며 가두고 집착하니까 남편은 죽겠다며 제발 나를 놔줘라 하며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 싸우며 살다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 듣고 목장에 들어가니까 이제는 서로를 붙잡는 게 아니라 점점 두 분이 함께 믿음의 구속사를 써내려가고 계십니다.
사랑과 애증이 이 가정의 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사랑 때문에 구속하고 서로를 지치게 하지만 그 틀에서 공동체의 자리로 와서 앉으니까 구속하던 삶에서 구속사를 써가는 인생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말 부부로 살아가던 시기에 어려우니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부양하시려고 열심히 일해도 늘 부족하고 모이는 것도 없어서 결국 아내에게 줄 돈도 없어지니 너무 큰 절망감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보험을 들어서 사고를 가장해서 나는 죽고 가족이 보험을 타도록 차량 사고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택자는 하나님이 죽으래야 죽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차가 튕겨나가서 사셨답니다. 실패로 끝났는데 집사님은 아직까지 택자인 것을 모르시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탁 집으셨다는 것을 모르시니 멈추지 않고 죽을 계획을 탐색하며 모의 하시다가 하필 판교 채플 앞을 지나다가 그럼에도 살아냅시다라는 현수막을 보셨습니다. 담임 목사님께 메일을 썼고 와보라는 담임 목사님의 짧지만 굵은 한마디에 우리들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죽네 사네 하지말고 그 자리를 떠나서 둘러 앉은 공동체로 오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첫 예배에서 들은 말씀이 주신 이도 하나님,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씀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지금까지 붙어오고 계시고 사명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받은 구원이 있다면 보내주고 흘려내보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 모태신앙이지만 고등학생 때 교회를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는 첫째 아들과 입시 이후로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삶으로 아들에게 보여준 것이 없어서, 구원에 소홀해서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내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의 타이밍을 노리며 지치지 않고 회개하며 기도하며 적용하겠다는 말씀을 합니다. 집사님은 와 보라는 목사님의 초청을 받아 먼저 둘러 앉은 자가 되었고 공동체의 가족이 되셨습니다. 내가 먼저요. 그리고 매일 죽음을 생각했던 삶이 말씀을 듣는 구조에 앉아 살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나 하나 구원 받은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집사님에게는 아직 남은 자녀의 구원이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와 회개의 감격을 아시기에 집사님은 이 두 자녀를 공동체에 둘러 앉히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내 인생에 사건을 주셔서라도 나를 구원의 자리에 앉히신 주님의 부탁은 한가지 입니다. 목사님께서 집사님을 초청하셨듯이 내 가족을 그리고 붙여주신 한 사람을 공동체의 가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집착과 애증에서 벗어나 구원이라는 한가지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가족된 목적입니다. 한 주 남았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부부와 자녀와 함께 만나러 갈텐데 한 분의 가족이라도 예수님 앞에 둘러 앉히기 위해서 준비해 보신다면, 그리고 하나가 되어서 그 작전을 모의해 보신다면 장담컨데 귀성길 전투, 차 안 대첩과 같은 늘 겪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위한 모임을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질문
-어떤 배우자와 자녀, 부모이길 바랍니까?
-억지로라도 둘러 앉아있고 싶은 무리와 자리는 어디입니까?
3.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우연히 사랑하는 이를 만나서 자녀를 낳고 함께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이 땅에서 가족의 목적이라면 예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인 말씀이 목적이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가 되어갑니다. 어떤 상대를 원하는가? 어떤 사람과 만나고 싶나요? 하고 청년들에게 설문을 한 적이 있는데 1위가 큐티하는 사람 2위는 공동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모든 청년부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게 선택이 아니고 주관식 질문이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이들이 왜 이성에 대해 욕심내고 싶은 것이 없고 바라는 것이 없을까요? 다만 우선 순위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외로움과 연민, 사랑의 갈구 때문에 결국 두 번이나 낙태를 하며 우울증과 자기 연민에 빠진 자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투자와 투기를 끊지 못해서 패배 의식과 비관에 빠진 형제가 있습니다. 자매는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구속사의 말씀을 들어야 숨을 쉴 수 있어서 매주 지방에서 자비로 서울을 오갑니다. 형제는 공동체에서 힘든 지체를 섬기면서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게 살아왔는지를 회개합니다. 이런 두 분이 각자의 휴가와 여유를 내려놓고 참석한 think trip에서 만납니다. 형제는 죄의 종류에 상관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깊이 회개하는 자매의 진심이 보입니다. 자매는 공동체를 사랑하며 섬기는 형제를 보면서 믿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말씀 안에서 만나 아이도 낳고 너무 잘 삽니다. 형제에게 남은 빚이 있는데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울해 할 뿐.^^ 가정의 거룩을 위해 투자를 끊고 함께 빚을 갚아나갑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두 분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가족이 된 이 가정, 그리고 이처럼 말씀 안에서 선택하고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모든 교제와 결혼을 우리 주님께서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위드 공동체의 강점은 단연 이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들은 리더가 중심을 잘 잡고 있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연약해서 무너지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큐티로 하루를 살아냅니다. 이 분들과 상담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오늘 말씀 보면서' 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보면서, 말씀을 듣는데'의 이 영향력이 우리 공동체 전체에 퍼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보시기에 이런저런 근심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때와 시기를 하나님께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명절 때 너무 근심하지 마시고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이들의 힘과 위로와 격려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로 살아가는 우리 역할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 우리 부모의 역할이며 사명입니다.
우리는 늘 항상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범적인 부모이자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라고 지금 당차게 말하고 있는 제가 불과 몇일 전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받았습니다. 하필 말씀도 '가족'이라서 고민도 많이 하다가 조용히 넘어가야지 했는데 아내가 이 서류를 실수로 자기 목장과 딸과 장모님에게 보냈습니다. 본인 말로는 chat gpt 하다가 실수로 된 거라고 하는데 저는 안 믿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겠습니다. 처음 받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받을 만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동료가 된 것이 뿌듯하고^^ 그래도 몇 번 받아보신 분 존경합니다. 갑자기 당신과 못살겠다고 하는데 도저히 잘못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저는 음주가무를 하지 않습니다. 늦게 들어와도 청소를 합니다. 잡일이 있으면 제가 합니다. 이런 난데... 지가 진짜 악한 사람을 만나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이 마음이 너무 크고 뭘 더 바라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렇게 씩씩 거리고 있는데 어느새 18세가 되어버린 아들이 저를 갑자기 오라 하더니 자기 무릎에 눕힙니다.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를 할테니까 아버지는 잘 들어요.' 하며 아내의 마음을 천천히 알려주었습니다. 첫째 아빠는 엄마를 필요한 사람이지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아빠는 힘들어 하는 엄마보다 언제나 더 힘들어한다. 세째 아빠는 엄마의 말을 들으려 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네째 아빠는 엄마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다섯째 나는 둘이 헤어지면 엄마와 살겠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아내가 22년 만에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동안 어떤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서운했으며 몰랐는지 생각하다가 오늘 말씀을 보았는데 그동안 아내와 제가 소통이 막히고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너무나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씀으로 가족과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이 한가지 사실이 모든 불화와 단절의 원인입니다. 저희 사역자들이 하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교회입니까? 큐티하는 교회, 말씀 보는 교회 아닙니까? 지체들을 만나거나 통화하면서 오늘 큐티 말씀을 나누는 게 우리가 가장 익숙한 일, 가장 잘하는 일, 가장 많이 하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이게 일상아닙니까? 누구를 만나든지... 그런데 종일 이렇게 나누다가 집에 들어오면 저는 입을 닫습니다. 오늘 본문 묵상하면서 한 사람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리아와 그 동생들 이렇게 오는데 아무리 봐도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이름이 안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 이후에 성경에서 요셉의 이름은 사라지는데 궁금해서 주석을 보니까 병으로 일찍 소천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후 예수님의 동생들을 낳았으니까 아예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사하실 구주로 오셨음을 분명히 마태복음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친족들이 아예 예수님에 대해 모릅니다.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붙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가문에 그 집에 한 사람이었던 요셉이 생전에 그가 살아있는 그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살려두신 그 시간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예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늘 함께 있던 아내 마리아에게도 자녀에게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이신 것을 들었는데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전하고 끝까지 지키세요. 이렇게 들은 말씀을 양육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족들이 밖에 있는 이 안타까운 모습이 결코 요셉과 무관할 수 없는데 바로 그 모습이 저라는 것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저는 지금껏 저 때문에 참 많이 희생하고 수고하는 아내를 보지 못한 무정하고 무심한 남편입니다. 하지만 더 큰 죄는 주님이 맺어주신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려 하지 않았던 영적 무심함입니다. 말씀을 주심으로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 이 자리에 세우셨으니 지금 부터라도 일주일에 3회 이상 아내와 큐티 묵상을 나누겠습니다. 자녀에게도 큐티책을 던져주고 해라~ 했냐? 이게 다였는데 이제는 제 죄를 먼저 나누고 말씀으로 소통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깨닫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깨닫는 것이 먼저가 될 때 이 가정을 불쌍히 여겨주심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
적용 질문
-우리 가족(부부)는 언제 하나가 됩니까?
-말씀 때문에 내 뜻을 꺾은 경험이 있습니까?
이제 가족을 만나셔야 할 명절이 다가옵니다. 먼저는 내가 말씀과 멀어지고 자랑과 교만이 주인이 되어 밖에 있는 자임을 회개할 때 밖에 서 있는 가족을 예수님의 곁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 내 식구끼리 둘러 앉으면 상처를 주고 받지만 예수님 앞에 둘러 앉은 자가 될 때 예수의 가족이 됩니다. 우리는 이 둘러 앉은 자리에 맺어주신 가족과 이웃을 초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가족의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가족으로 맺어주신 목적을 깨달아 내가 부서지고 깨어지더라도 알지못하는 친족에게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사명으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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