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5일 주일예배]
성경 본문/ 베드로전서 5: 7-14
설교 제목/ 평강이 있을지어다
설교/ 박재현 목사님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제일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진정한 평강을 누릴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위해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이 사명을 받은 베드로는 20여년 동안 평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사명의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소아시아에 있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베드로전서를 기록하는데 마지막 한 줄을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평강을 경험한 사람이 평강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생이 두렵고 직장이 두렵고 가정이 두려워 불안에 떨고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두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평강이 있으려면
1.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평강이 있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먼저 마음 속에 있는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서기 60년 즈음에 쓰여졌습니다. 그 때 당시 로마 네로 황제의 지배를 받았는데 네로는 열등감과 허영심으로 수많은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상처가 해석되면 약재료가 되어 한 영혼을 살리지만 상처가 해석되지 않으면 그 약재료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아닌 한 사람의 영혼을 마르게 하는 마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네로 황제는 상처가 약재료가 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폭군이 되었는데 그 핵심 타겟이 바로 비주류 기독교인들 이었습니다. 실제로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났는데 그 때 네로 황제는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합니다. 그 때부터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로마 땅에 있던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사명을 다하고 순교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볼 때 베드로전서를 읽는 수신자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염려는 바로 생존이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자들이 바로 이 그리스도인들 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사방이 다 막혀서 절망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합니다. 길을 만들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모든 염려는 다 주님께 맡기라는 메세지를 통하여서요.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이라고 외치지만 실제 삶에서는 주님께 잘 맡기지 못합니다.
왜 맡기지 못할까요? 바로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큐티가 힘든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는 고정관념, 바로 주인의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큐티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내 죄를 고백하는 VOICE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훈의 말씀, 내가 성공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말씀 SOUND로 들리기 때문에 말씀과 삶이 함께 가지 못하는 이원론적인 삶이 많다는 것입니다. 카페 장사가 잘 안되면 가장 염려하는 사람은 아르바이트 생이 아니라 카페 주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동산으로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부동산이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통해 계속해서 얘기하는 것은 나그네 인생입니다. 주시는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자도 여호와시니라, 사명 따라 왔다가 사명 대로 행하다가 사명 대로 가는 게 우리 인생이 바로 나그네 인생인데 우리는 사명 대로 왔다가 이 땅에서 주인으로 누리려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 문제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내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자녀 때문에 염려가 커집니다. 한 소아과 의사의 컬럼에서 오늘날 자녀를 키우는 환경이 20년 전보다 너무 좋아졌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부모님의 육아 난이도는 20년 전보다 10배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한한 정보 때문이라고 합니다. SNS, 맘카페, 여러 기사를 통해 올라오는 글들이 부모들의 심리를 조급하게 만들고 조급한 마음이 염려를 만들고 그 염려가 빈틈이 없는 강박 부모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염려의 원어는 헤라어로 여러조각으로 나뉘어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여러조각으로 나뉘어진 상태가 바로 염려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정보로 인해서 내가 집을 사야하는지 팔아야 하는지, 자녀를 영어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유학을 보내야 하는지, 이런 마음이 여러조각으로 나뉘어져 중심을 잡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염려입니다. 결국 자녀를 위해 수많은 정보를 들어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만 정작 그 자녀는 완벽한 자녀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여러가지 혼란스런 감정으로 나뉘어져 아프고 병든 자녀로 자라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염려를 다 맡기라는 메세지는 이렇게 여러조각으로 나뉘어 혼란스러운 이 마음을 하나의 메세지로, 한 마음으로 맞추라는 것입니다. 시대적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매번 바뀌는 상대적인 싸움들에 우리의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 절대적인 하나님의 VOICE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다 지려고하는 주인의식, 그 우상을 물리치려면 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인식을 날마다 큐티를 통해 경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큐티할 때 모든 염려가 떠나가고 참된 평안이 찾아오는 줄 믿습니다.
저 또한 굉장히 염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완벽주의의 성향이 많습니다. 얼마전 은행에 가서 신용점수를 조회하니 1000점 만점에 1000점이 나왔습니다. 5년 동안 카드 연체가 한 번도 없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매번 카드가 연체되는 아내를 제가 얼마나 무시되고 잔소리를 하게 될까요? 저랑 사는게 숨 막힐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을 믿지못하고 염려가 많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묵상해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매일같이 부부싸움을 하셨습니다. 알콜중독이 심했던 아버지는 새벽까지 술을 드시고 집에 들어오시면 그 때부터 집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20여년이 지났어도 그 현장도 기억나고 그 때 부모님이 싸우며 제일 많이 했던 말, 이혼하자, 갈라서자 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그 말에 제 맘이 제일 많이 요동쳤습니다. 자기 전에 이불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정말 부모님이 이혼하시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부모님의 마음이 나뉘어지니까 똑같이 자녀의 마음도 나뉘어지며 염려가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생긴 불면증이 지금까지 이어져 한 번씩 수면제를 먹고 잘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너무 싸우시니까 두 분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인생을 저분들에게 맡길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 그 때부터 부모님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청소년기 때부터 늘 스스로 개척해왔습니다. 진로 문제도 결혼 문제도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통보했습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리고 제가 결정한 것에 대해 늘 혼자라는 생각이 있으니 혼자 해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으니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나아가니 어느 순간 제가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강하고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혼자 결정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신앙관이 왜곡되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랐고 청소년기에도 수련회에 다 참석하였지만 신앙관이 왜곡되니까 기도할 때도 큐티할 때도 말씀을 통해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가 다 결정하고 하나님께 통보하는 왜곡된 신앙관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내가 하는 결정도 당연히 하나님이 사랑하실거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 문제도 사역에서도 그랬습니다. 성경의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사울이 바로 저였습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모습을 그린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생긴 부모님을 향한 무시가 하나님을 향한 무시로 변질된 저의 교만한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더 주님께 맡겨드리지 못하고 제가 지려고 하다보니 염려가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염려가 제 아내와 두 자녀에게 흘러가더라구요. 뿐만아니라 사역하면서 저의 이 예민함과 불안이 흘러가고 청소년들에게 흘러가더라구요. 결국 원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해석되지 않으니 네로 황제처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마르게 하는 폭군이 되어버린 저의 악함을 회개합니다. 청소년기 때 집을 나가는 저를 어머니는 때려보기도 하고 돈으로 해결해보려 하기도 하고 못나가게 방문을 지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이 더 커져서 집을 나갔습니다. 반항하는 사춘기 자녀는 절대 힘으로 컨트롤하면 안됩니다. 제가 그렇게 집을 나가고 반항했던 것은 사춘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집을 나간 자녀가 있습니까? 그 자녀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죄를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컨디션이 좋고 은혜 가운데 있을 때 어머니와 금요 철야 예배에 갔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었는데 '하나님 우리 재현이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라고 히도하셨습니다. 그 때는 그 기도 소리가 싫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기도 때문에 목회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힘과 성품으로 자녀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내 뜻대로 컨트롤되지 않으니 그제서야 다 내려놓고 주님께 엎드리며 온전히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어머니는 저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저를 품으시며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벽기도에 나가시며 눈물로 자녀를 위해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쌓인 지금 주님께서 저를 돌봐주셨고 바로 이 자리에 설교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돌보아 주십니다. 제가 산 증인이고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바로 산 증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 제자들을 찾아가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 다음 바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평강은 내 노력과 내 성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령을 받을 때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때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불같은 고난이 그들 앞에 찾아와서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 부르짖을 때 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때는 불같은 고난으로 심령이 가난해져 주님께 목놓아 부르짖는 그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의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그 약속을 붙들 때 우리 마음 가운데 평강이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석 같은 자녀로 인해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계신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성품으로 내 자녀를 양육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내 자녀를 양육합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눈물로 나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드릴 때 주님께서는 나와 내 자녀의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돌봐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품으로 살아가나요? 성령으로 살아가나요? - 나의 기도생활은 어떤가요?
2.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주님께 나의 모든 염려를 맡겨 드린 후에는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메세지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으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잠든 밤에 예수님은 로마 장병들에게 잡혀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잠든 밤에 우는 마귀 사자가 유혹하는 겁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본인이 잠든 스토리는 베드로의 아픈 상처이자 수치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평강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수치의 순간을 덮어두고 비밀로 하지 않고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 수치를 약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근신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나처럼 마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이처럼 우리가 이렇게 깨어있어야 되는 이유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타겟이 오늘날의 다음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다음 세대는 정말 겁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다 지켜주고 다 해결해주니까 겁이 없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권이 무너졌습니다. 인권을 앞세우는 수많은 제도와 법들로 인해서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이 뭐라고 하기만 하면 죄송합니다 보다 먼저 핸드폰을 꺼내어 동영상부터 찍습니다. 심방을 다니다보면 학폭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데 부모님들이 더 분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건에 화해하고 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더 열을 내어 어떻게든 끝까지 가보자 하니까 자식이 겁이 없는 겁니다. 평강을 앞세워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질서,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간의 질서가 다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겁이 없다보니 청소년의 범죄수위가 굉장히 높습니다. 특히 성범죄가 급증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잘 놀지 않고 집에서 미디어를 보는 것이 대부분의 취미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디어에서는 인간의 본능인 쾌락주의를 부축입니다. 인권이 왕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본능인 이 쾌락주의를 굉장히 좋게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으로 아이들이 성적인 것을 너무 많이 접하다보니 화장실 몰카라든지 딥페이크 같은 성범죄가 너무 많습니다. 쾌락주의의 철학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 따위는 없다. 본능이 향하는 대로 행동하라' 이 책의 문구가 오늘날 타락한 시대의 가치관을 너무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의 평범성이 만연한 음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률은 전세계 1위입니다.
지난 주 한 청소년 아이의 카톡입니다. '목사님 저 죽도록 힘들어요. 버티고 싶은데 못버티겠어요. 도와주세요.' '목사님, 계속 환청이 들려요. 저보고 소리치고 비웃어요. 기도해주세요.' '저 지금 한강 다리에 있어요. 살려주세요.' 이 모든 이야기가 올 1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매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성품으로 사역하고 성령 없이 사역한 저와 우리 사역자들에게 회개하라고 주신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연약하고 힘이 없는 귀한 청소년들을 삼키려고합니다. 이렇게 우는 사자에게 노출되어 있는 이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믿음을 굳건하게 해서 대적하라고 합니다. 굳건하게 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뭉치는 것입니다. 아주 가느다란 줄이 하나만 있으면 쉽게 끊어지지만 이 줄이 수백, 수천, 수만 개가 엮여있으면 거대한 대교도 버티게하는 와이어 로프가 됩니다. 그 와이어 로프는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혼자있으면 흔들리고 끊어지지만 우리가 뭉쳐있으면 바위처럼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사자의 사냥 습성 중 하나는 무리를 이탈한 동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우는 사자인 마귀에게 공격 당하지 않는 방법은 바로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장에 잘 붙어가야 됩니다. 절대 혼자 신앙 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아담과 하와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두 세 사람이 모인 그 자리에도 함께 하시고 두 세 사람이 모여 함께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공동체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장공동체에 꼭 붙어가셔야 됩니다. 혼자 신앙 생활 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그 자체가 교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 해 진행되는 청소년 큐페가 너무 중요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는 여름, 겨울 방학 동안 교회 학교 수련회를 진행할 수 있게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중2 겨울 수련회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기도하는 그 밤에 간절히 부르짖고 만나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그 때 자기소개할 때 모두들 앞에서 커서 목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25년 전에... 진짜 목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번 큐페 접수를 받았는데 고등부 스련회만 800명이 접수했고 중등부는 900명이 접수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주일 출석률보다 큐페 참석율이 더 높습니다. 110%가 넘습니다. 고난이 많아서 입니다.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 자녀를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리고 큐페에 보내시고 맡기시고 부모님들은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시면 됩니다.
청소년 큐페에 가면 낮에는 실컷 놀게해주고 맛있는 간식도 줍니다. 저녁에는 5시간이 넘게 집회를 합니다. 3시간 쯤 지나면 언제 끝나냐고 배고프다고 외치기 시작하는데 꿎꿎하게 5시간을 채우면 아이들이 순한 양이 되어서 예수님 믿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큐페 때 예수님을 만난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큐페를 위해 헌신하는데 이 번 큐페에도 150명이 넘는 청년들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왜죠? 받은 사랑이 있고 받은 구원이 있고 받은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뭉친다고 해서 사탄이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뭉침이 믿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사탄을 대적하는 최고의 무기인 회개와 죄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향한 회복의 시작은 철저한 자기 오픈, 즉 죄고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회개하는 자를 두려워합니다. 회개할 때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죄고백하는 자를 무서워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큐페 마지막날 마지막 순서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죄와 상처를 오픈하고 고백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영상)
이 시간이 아이들이 제일 은혜 받는 시간입니다. 나만 고난 당하고 나만 상처가 많은 줄 알았는데 우리 친구들도 나와 동일한 고난을 당하고 있구나...
9...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서로 동일한 고난, 죄고백을 들으면서 서로의 믿음이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모여 깨어 근신하고 기도할 때 내 안에 있는 우울의 영이 떠나가고 내 안의 음란의 영이, 자살의 영이 떠나갈 줄 믿습니다. 이번 청소년 큐페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음란의 영과 우울의 영이 떠나 갈 수 있도록 함께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듯이 혼자가 아닌 목장에 모여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제일 두려워하는 죄고백과 동일한 고난을 잘 나눌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목장과 가정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 나는 영적으로 깨어있습니까? 졸고 있습니까?
- 무리에서 이탈하려고 목장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까?
- 나의 고난이 한 영혼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 적이 있으십니까?
3. 다음세대를 세워야 합니다.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를 문안한다고 합니다. 바벨론은 로마를 상징합니다. 바벨론은 남유다를 무너뜨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힘과 악의 제국을 상징합니다. 그 바벨론이 무너지고 500년이 지난 다음 로마라는 또 다른 힘과 악을 상징하는 제국이 등장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괴롭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바벨론의 중심, 로마의 중심,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 땅에서도 교회를 세워나가십니다. 아무리 힘든 환경 속에서도 주님 품으로 달려갈 수 있는 도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세상 가운데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이 하나있다면 예수님의 피값으로 세운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도전서를 마무리 하면서 뜬금없이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바로 마가입니다. 나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영적 후사,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겁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평강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위해서 영적 후사를 낳는 일에 인생을,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워나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낳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낳고, 베드로가 나가를 낳았듯이 우리도 영적 후사를 낳아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요나서와 나훔서를 큐티하며 100년 뒤에 우리들교회 본당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요나를 통해 니느웨가 회개했지만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니느웨 땅은 사라졌다는 것을 나훔서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단 3세대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수많은 교회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오락시설로, 숙박시설로, 관광지로 변해버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니느웨 땅을 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위해서 믿음의 아들 마가를 반드시 낳아야 합니다.
청소년부에서 가정 심방을 가보면 학부모님들의 걱정과 염려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본인들의 약재료로 내가 죄인이고 문제부모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3시간의 심방이 끝난 다음 마지막에 학부모님에게 청소년교사로 헌신할 것을 권면합니다. 학부모님은 은혜 받다가 갑자기 절망하지만 처방에 순종하여 교사로 섬깁니다. 그런데 청소년 아이들을 보면 아, 우리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구나, 그놈이 다 그놈이구나 하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 때 불안과 염려가 잠잠해지더라구요. 동일한 고난을 보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겁니다. 그 때부터 정말 내 자녀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리고 나의 영적 후사를 위해 믿음의 마가를 낳는 교사 직분을 감당합니다. 그러면서 청소년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정말 문제 부모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지금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는 교사 대부분이 그렇게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믿음의 아들이었던 마가가 베드로 옆에서 설교를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기록한 책이 바로 마가복음 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다음세대가 된것입니다. 이렇게 큐티인은 구속사적인 흐름으로 쓰인것입니다. 이 마가복음의 그 마음과 심정을 보며 큐티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는 부모님이 사명을 위해서 사는지 아니면 행복과 야망을 위해서 사는지 다 보고 따라 큽니다. 부모님이 야망과 행복을 위해서 살면 그 자녀는 맘몬신을 써내려가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돈 걱정하며... 그런데 우리가 자녀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아들 마가, 교사라는 직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에 헌신하며 나아갈 때, 우리가 예수님의 자취를 보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자녀는 마가복음 같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입니다. 자녀에게 염려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평강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입니다. 베드로전서 마지막 말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 안에 거하여 평강이 충만한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질문
- 목장에서 내가 세워야 할 마가는 누구인가요?
- 교회와 나라를 위해 교사로 헌신하시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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