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히 가라(윤혜연 목사님)
마가복음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은 어떤 이유가 있든 없든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가고 싶지 않은 시댁이든 여전히 불편한 처가이든, 명절이어도 혼자 지내야 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내 생활의 터전인 그 곳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평안히 갈 수 있을까요?
평안히 가려면
1. 내가 혈루증 앓는 여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제가 이 혈루증 여인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한가지를 더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혈루증 여인이 나오기 전 날 본문에 회당장 딸을 고치러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혈루증 여인을 양육하시고 다시 회당장의 딸을 만나러 가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중간에 혈루증 여인이 끼어 있었을까 묵상하다가 제게 더 깊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회당장의 딸은 12살 이었습니다. 본문의 여인도 병으로 시달린 시간이 12해입니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하늘의 수인 3과 땅의 수인 4를 곱한 수로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특히 소녀의 나이가 12살이라는 것을 마태나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는 왜 기록했을까요?
이 두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면 사람이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병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부유했던 회당장의 딸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름조차도 드러나지 않은 12해 동안 혈루증에 시달린 여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볼 때 신분으로는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형편에 처해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도 각각의 형편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 두사람처럼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이 죄의 문제를 스스로 치유할 수 없고 도와서 해결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혈루증은 어떤 질병일까요? 부인과 질병으로 만성적으로 하혈하는 병으로 자궁벽에 종기가 생겨 피가 유출되는 병으로 당시의 의술로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병이 여인을 아주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인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도 있고 누구든지 이 여인과 함께 있거나 여인이 앉았던 곳에 앉거나 접촉 만으로도 함께 부정해지기 때문에 목욕을 하고 의복을 빨아야만 했습니다. 혼자만의 병으로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소외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문둥병자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배제되었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당연하고 정신적 고통까지 당하며 이 병을 고쳐보고자 했지만 애쓸수록 많은 의사에게 엄청난 괴로움까지 당해야만 했습니다. 마가는 이 여인이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고 아무 효험도 없고 도리어 더 중해졌음을 알리며 예수님께 한 여인이 나아오는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의 멈추지 않았던 혈루에 대해서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들교회에 와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나와 원 가족을 객관화 했던 것과 객관화 작업이 이루어지니 자연스럽게 질서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그 질서를 원 가정과 지금의 내 가정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30여년을 믿고 살아왔던 나의 틀이 깨져야만 했고 때로는 그 깨어져가는 시간들이 아파서 멈추고 싶기도 했습니다. 깨어질 때마다 내 지나온 시간들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서 그만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말씀대로 믿고 조금씩 적용해보는 것 뿐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만 먹어도 그 말씀이 제 삶에 실제로 믿어지고 살아지고 누려지는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전 친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이 이야기를 설교로 한 번 하고 나서 언니에게 '내가 옛날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더라.' 고 했더니 언니가 '그건 아무것도 아닌데. 지금의 널 보면 안 믿어져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한참을 깔깔 웃었습니다. 왜 웃음이 났냐면 결혼 전에는 제가 나름 관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유산소는 기본으로 했고 운동하지 않으면 루틴을 하지 않은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예를 들어 밀가루는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옷도 예쁘게 입는 것을 좋아하고 신발과 가방까지 맞춰서 입으며 피곤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것이 저의 수치가 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밀가루를 찾아 먹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찾아가서 '어떻게 하셨어요?'하고 물어보는데 언니는 제게 '네가 알고 있는 것 하나만 꾸준히 하면 돼.' 하는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처녀의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고 하시는 게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막내로 자라면서 예쁨을 받았기에 관계에서 늘 주목 받고 과대까지 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고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죄인이라는 혈루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저에게 예수님이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결혼의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결혼까지 이루어졌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이 오히려 더 안좋아지는 환경을 보면서 진짜 내 인생은 끝났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나는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부모님도 참 쉽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듭니다. 그런데 그 때는 저만 집중해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것이 다른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방 안에 누워있다가도 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앉아있고 씻어도 안에서 물기가 있는 채로 옷을 입어야 했고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TV를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는 것, 정말 자유롭게 살았던 제가 자유로운 일상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제가 밥을 챙겨 먹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으시겠지만 나름 식단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부엌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시부모님이 함께 계시다보니 그런 준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새벽기도를 끝나고 오시면 거실에서 쉬셨기 때문에 나가서 먹을 수가 없어서 전날 빵을 미리 사놓고 방에서 먹었습니다. 예전에는 운동도 꼬박꼬박 하던 제가 에너지가 없으니까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점점 웃음도 잃어가고 눈물만 많아지고 한풀이만 하던 저에게 운동이라도 하자, 나가서 조금만 걷고 오자 라고 했지만 몸이 일어나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바에는 죽는 게 낫겠다고 항상 말하는 저에게는 운동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만에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당시 친구들에게서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라고 묻는 질문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한 참 행복한 신혼을 보내야 할 때인데 웃음은 사라지고 또 옷은 맞는 게 없으니 재미도 없어지고 사람을 피하게 되니 많은 의사에게 괴로움을 받으며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혈루 여인 처럼 행복했어야 할 결혼 생활은 죽음을 묵상하며 살아가니 그 어떤 것도 제게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부터 저는 거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로 얼굴에는 빨갛게 여드름 같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살이쪄서 예쁜 옷들을 맞지 않아서 화가 나는데 얼굴까지 빨갛게 뒤덮여 버리니 죽고 싶다고만 외치는 저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살찐 게 누구 탓일까요? ^^ 본인 탓, 맞습니다. 내가 먹어서 살이 찐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죄가 깨달아지지 않으니 탓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이 찐것도 다 너를 만나서 그렇고 이런 상황에 까지 왔으면서도 사실을 오픈하지 않은 시부모님의 탓이라며 분노의 혈루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때는 제가 20KG까지 찐 상태였기 때문에 스스로도 포기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급기야 가족들 외에는 어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철저하게 스스로를 숨기며 내 인생은 끝났다고 숨어있던 저였습니다. 나에게 혈루가 있음을 알지도 못했기에 고침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되는 환경에 익숙해지니 간절함이나 절박함도 아예 느끼지 못하고 내 혈루의 근원을 다른 사람에게로 탓을 돌린 채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나도 죽고 남도 죽이는 삶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적용 질문
- 나의 마르지 않는 혈루가 있음을 인정하나요?
-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낫길 원하는 혈루증은 무엇인가요?
- 네 혈루의 근원을 다른 사람에게 탓하며 나도 죽고 남도 죽이고 있지는 않나요?
2. 그의 옷에 손을 대어야 합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것 저것 다 해봤지만 아무 효과도 없고 갖고 있던 모든 재산도 사라진 채 구원의 소망은 전혀 없는 자포자기의 상황에 있었을 이 여인에게 한 소문이 들리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 이런 고통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안락한 삶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해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어떤 소망도 갖지 못하니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소식에 반응하며 움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렇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소식에 반응하는 이 여인의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그래서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세속사적으로는 불행이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구속사적으로는 예수님을 붙잡게 되니 고난이 축복이란 말이 인정됩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소문은 들었지만 앞다투어 무리에 끼어 만나러 갈 수 없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갔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더욱이 신체를 접촉하기 위해 접근하는 일은 아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부정하게 여겨지는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공중 앞에 나와서도 안되었습니다. 더우기 다른 사람과 접촉해서는 안 될 일 이었습니다. 오히려 눈치챌 수 없도록 무리를 이용해서 뒤로 갔습니다. 그랬던 이 여인을 구원에 이르게 했던 행동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이것은 겉옷이라고 표현했지만 제대로 번역하면 옷의 가장자리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여인이 예수의 옷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단 한 번만 스치듯 옷 가에 손을 대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여인의 믿음과 그녀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자비로 고쳐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혈루의 근원은 남편과 시댁에게 탓을 돌린채 분노의 혈루로 연민의 혈루로 내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남편이 그 때 당신 외부에서 함께 사역했던 우리들교회의 사역자분이 재호 형제랑 꼭 함께 사역하고 싶은데 사역을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소식이었습니다. 무리한 성전 건축으로 사례비를 줄 수 없게 되어서 남편과 제가 투입되어 함께 사역했던 아버님 교회는 정리가 된 상태에서 이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혜원아, 내가 너를 아는데 너는 이렇게 있을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다시 일어나야지. 마지막 내 부탁이야. 우리 같이 지원해보자. 우리가 살아야지.' 누구보다 제일 절박했을 남편에게 들렸을 그 한마디는 "우리가 살아야지" 였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 그것도 이 모습을 첫인상으로 기억할 새로운 환경에 간다는 것은 저에게는 도전이 아닌 사형 현장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그 상황을 남편은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함께 하자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1차,2차,3차 면접까지 함께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안심했습니다. 남편과 함께라면 사형 현장이 아니라 도전해 볼수 있겠다 라고 안심할 즈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남편과 함께 사역은 할 수 없을 것 같고 전도사님만 미취학부에서 함께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남편이 함께 못하는 것도 너무 무서운데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미취학부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남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그 손을 떼어서 이제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라고 초청하고 계셨음이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니 사역으로, 사역자로 함께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주일 예배 건반으로 이곳에서 함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드디어 수많은 무리 속에 끼어 뒤로라도 자리를 잡고 구속사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게 된 곳이 우리들교회 미취학 예배장이었습니다. 충격적이었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모습으로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속사 메세지를 아이들의 언어로 맞추어 직접 만든 교보재로 듣기 쉽게 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메세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메세지는 어른인 내게도 녹여져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과 아이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본문 말씀이 전 세대에게 녹아져 그 어느 누구를 만나도 그날의 말씀으로 함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예배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더 놀라웠던 광경은 다수의 교사 선생님들의 섬김 연수가 평균 10여년의 시간인 거에요. 각자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섬김의 자리를 지키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긴 시간 섬긴다고 생색이 날만도 한데 오히려 봉사하면서 받는 은혜가 더 크다고 고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미취학부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귀한 공동체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주 배워가던 어느 날 목회자 세미나에 들어갈 교육부서 영상을 찍는다는 소문이 들리는 거에요. 저는 온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 거는 아니겠지 했던 제 영상이 나가게 되었고 어느 누군가는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지만 그 영상이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떤 시작이었을까요? 제가 말씀 드렸지만 저는 살이 찐 이후로 거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니 준비를 하고 화장은 했지만 제가 거울을 보지 않는 것을 인지할 수 없을 만큼 그 환경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저의 혈루인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제가 그 시기에는 절대로 사진도 찍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영상이 나가서 '와 내가 인정 받았네"가 아니라 큰 화면에 나오는 저를 보며 내 모습인데도 보기 싫은 나와 싸워야 했습니다. 애써 웃고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화면 속에 나오는 저를 계속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지난 과거의 사진을 보면 더 우울해지기에 사진을 다 삭제했으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내 모습에 갇혀 살고 있으니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 옛날 모습 속에서 괜찮은 줄 알고 나도 속고, 남도 속이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모습을 잊어버리면 내가 살아낼 수 없으니 직면하지 못하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직면하게 하신 방법이었습니다. 과거를 잡고 있으면 현재를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소문을 듣고 우리들교회에 입성했지만 그 무리들 틈에 끼어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으니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니 이 모습으로 첫 모습을 기억하게 될 이 무리들 틈에 있는 것도 너무 두려워서 화장실에서 숨어 있는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그 때 싸워야했던 마음은 그만할까? 도망갈까? 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매주 예배 때마다 계속해서 간증을 통해 다시 소문이 들리는 겁니다. 구속사 말씀 때문에 바뀌어지는 환경이 없어도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받은 구원 때문에 적용하는 성도님들의 소문을 듣기만 했는데 내 혈루의 근원을 남편과 시댁 탓을 하며 내 죄로 여기지 않았던 제가 이제는 그 혈루의 근원이 내게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시간이 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바로 그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었음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구나. 그 수치의 환경은 내 구원을 위해 100% 옳으신 하나님이 세팅하신 환경임이 인정되었습니다. 남편도 시댁도 내 구원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 인것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탓하며 미워하고 분해했던 시댁도 남편도 그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혈루 때문에 예수님의 옷자락이 필요한 자들인것이 인정되었습니다.
혈루증 앓는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던 것은 어떤 위험한 상황에 놓일지 알면서도 자신의 처지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얻게된 여인의 구원은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담임 목사님이 우리들 공동체에서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붙어만 있어라,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정말 제가 말 그대로 붙어만 있었는데 말씀이 들려지고 들리는 만큼 적용하니 수지맞는 인생이 되어갔습니다. 말씀대로 붙어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제 삶의 실제가 되었습니다. 정말 은혜인 것은 그렇게 찍었던 영상이 시간이 지나고 제가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님이 제 8회 목회자 세미나를 들으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구속사의 소문을 듣는 통로가 되는 영상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오늘 설교 잘 하라고 기도도 해주셨습니다.
언젠가 친한 목사님께서 첫 수요예배에 말씀을 전하시면서 성도님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임팩트 있게 제 가슴에 항상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마다 다시 저에게 질문해보곤 합니다. 바로 그 질문은 '성도님들에게 우리들교회는 어떤 의미인가요?'였습니다. 그 질문을 오늘 제가 다시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성도님들에게 우리들교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우리들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옷자락이었습니다. 남편이 지원하자고 얘기하지 않았다면 절대 혼자서는 도전하지 못했을 그 시기에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소문을 들려준 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담임 목사님께서 들려주시는 구속사의 말씀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시간이었고 목장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집사님들과 함께 나눔을 하는 시간이 옷자락을 붙잡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교회가 저에게 예수님의 옷자락이 되어준 것처럼 오늘 예배에 오신 우리 성도님들께도 예수님의 옷자락이 되어줄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소문을 들려줄 그 한 사람이 되어주실 줄 믿습니다.
분노의 혈루와 연민의 혈루로 얼룩져있던 저를 함께 안아주시고 살려주신 미취학부 공동체를 이렇게 제가 미취학부 헌신 예배에서 소개할 수 있는 것은 29절 말씀처럼 좋은 공동체를 만나 혈루의 근원이 마르게 하신 하나님의 세팅인 줄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우리 공동체가 예수님의 옷자락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실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미취학부 아이들은 어떻게 예배 드리는 지 한 번 보시겠습니다. (영상)
적용 질문
-내 혈루를 고쳐줄 것 같아 찾아다니며 잡으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설 명절 만나게 될 부모님에게 '예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백해볼까요?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는 적용으로 3월부터 열리는 교회 안의 각종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시겠습니까?
3. 모든 사실을 여쭈어야 합니다.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님께서 혈루증 앓는 여인의 접촉에 대해서만 특별하게 생각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그렇게 밀치고 밀리며 예수님의 옷을 스치고 몸이 닿았지만 마음을 예수님에게 댄 사람은 오직 혈루증 여인 한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담임목사님께서도 구속사의 말씀을 목놓아 외쳐도 수많은 무리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말씀을 듣지만 그 혈루의 근원을 아는 한사람이 말씀이 닿아서 공동체에 붙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한사람이 접붙여져서 가정을 살려내고 나라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미취학부터 구속사 말씀을 듣는 우리 아이들이 취학부, 청소년부, 청년부를 지나며 그런 한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손을 대었냐고 물어만 보셨는데 자신이 손을 댄 이유 뿐만이 아니라 곧바로 나은 사실까지 이야기하며 예수님의 능력을 간증합니다. 그래서 그 주변에 있던 무리들이 이 놀라운 일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줄도 몰랐던 것을 여인의 고백을 통해 알게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그 회당장의 딸 죽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가시는 예수님의 신성을 감지하여 소녀의 소생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역할까지 하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렇게 살아난 한사람의 간증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간증을 듣는 나에게도 구원의 이야기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평안한 삶은 이제 좋은 공동체 만나서 나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수치라 여겼던 그 시간들을 꺼내어 이야기하며 내게 구원을 주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좋은 공동체를 만나면 방황이 끝난다고 하셨는데 좋은 공동체를 만나니 혈루가 끊어졌습니다. 예배를 잡고 목장을 잡고 양육을 잡았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 하시고 죽은 소녀를 살리러 가신 것처럼 오늘 예배에 오신 한 분 한 분에게 평안히 가라는 음성을 듣고 여러분의 살아난 이야기로 만나러 갈 가족들에게 살리러 가는 발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내 혈루는 마를 수 없다고 여쭈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설 명절 내가 만날 가족들에게 내 간증을 할 수 있나요?
-설 명절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가족들에게 평안히 가려면 나는 어떤 적용을 해야할까요?
평안히 가려면 내가 혈루증 앓는 여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옷에 손을 대어야 합니다. 모든 사실을 여쭈어야 합니다.
'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 > 주일설교녹취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 나라 (이창엽 목사님) (0) | 2026.03.09 |
|---|---|
|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김성권 목사님) (0) | 2026.03.02 |
| 가족 (신승윤 목사님) (0) | 2026.02.10 |
| 예수의 뒤를 따라가(최대규 목사님) (0) | 2026.02.03 |
| 평강이 있을지어다 (박재현 목사님) (0) | 2026.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