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김양재 목사님)

by relife_es 2025. 4. 20.

전도서 3:1~11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 만물을 지으셨는데 그 대단한 하나님의 경륜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또 하나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여인의 자궁 속에 점으로 낮아져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부활의 영광, 영원한 생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효과적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누구라도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나갈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오늘 부활 주일 전도축제에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이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예수님을 영접하길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 본문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1.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노고는 힘들고 괴로운 일인데 듣기도 힘든 말입니다. 성경에도 전도서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우리 인생에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장과 일터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오가는 길 위에서, 가정에서 어디나 우리가 애써 버텨야 할 어렵고 고된 일들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너무 너무 탈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를 건져줄 수 있을 것 같은 돈과 힘과 사람을 찾아나섭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노고가 되고 맙니다. 이러나 저러나 참 수고스러운 삶이고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 노고가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입니다. 이에 대한 심판으로 우리의 수고와 고통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제 남편은 놀러다니고 방탕하게 산 게 아니라 주일에도 병원 문을 열고 산모를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목사님의 아이를 받아주니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외쳤습니다. 밤을 새워 산모를 받고 낮에는 외래를 보며 눈코 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밤낮 없이 환자를 보고 저는 집에서 벙어리가 되어 큐티 모임을 하고, 둘 다 영육간에 노고를 심하게 했습니다. 결국 안식일에 병원을 열어놓았던 남편은 안식일에 데려감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끝이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런데 우리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 솔로몬은 인생의 노고를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주셨다고 합니다.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우리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노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이세상에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은 게 어디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니까 망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때에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지 않으시고 어떤 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딱 들어맞는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지으신 나 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술 작품은 어디에 두어도 빛이 나는데 그렇게 예술품이 되기까지 작가는 정성껏 깍고 또 깍습니다. 그래야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작품이 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작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깍고 또 깍으십니다. 삐져나온 부분을 뽑아내고 깨뜨리고 가지치고 다듬고 닦으셔서 아름답게 빛이나는 걸작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그래서 어디에 두어도 딱 들어맞는 아름다운 예술품이 되는 것입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한글개역으로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때를 안다는 것은 이렇게 모든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목적을 아는 것이 때를 아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입니다. 그래서 그 목적은 바로 사명입니다.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이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의지를 뛰어 넘는 때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생 속의 반대되는 14쌍의 28 사례를 대조해서 제시합니다. 울고 있는 것은 울 때가 되어 우는 것입니다. 웃을 때가 되어서 웃는 것이고 고난 받을 때가 되어서 받는 것입니다. 거기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아는 것이 오늘 현재의 순간을 아는 것이고 내 때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삶은 오늘 내 삶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현재의 일들을 인정하기 위한 연습임을 아는 것이 목적을 이룰 때인 것입니다.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때가 목적을 이룰 때가 아니고 오늘 현재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 목적을 이룰 때입니다. 천하 범사라고 하셨으니 어떤 상황도 목적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날 때나 사랑할 때만 좋은 때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모든 때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인정하고 날 때도 인정하면 낙태도 안락사도 안되는 것입니다. 낳든 죽든 현재 내게 일어나는 일의 목적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모르니까 때를 거부합니다. 고난의 때를 멀리해달라고 물러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중에 중요한 주제가 죽음입니다. 즉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생명의 시작과 끝을 언급합니다. 식물을 심을 때와 뽑을 때, 사람의 생명을 보전할 때와 취할 때, 건물을 세울 때와 헐 때 모두 출생과 죽음의 개념을 나타낸 것입니다. 울 때, 슬퍼할 때와 대조되는 웃을 때와 춤출 때도 죽음과 파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8절에 마지막으로 사람의 기본적인 감정인 사랑과 미움을 그 궁극적 결과인 평화와 전쟁과 대조시켜 언급하는 것은 결론으로 볼 때 죽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제일 추할 때 모습이 죽을 때 모습입니다. 마지막까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죽음의 때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인 솔로몬이 지혜자나 우매자나 또같이 죽고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는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저는 친정어머니와 남편의 죽음을 겪었는데 저의 어머니는 새벽기도 가서 똥내나는 몸빼바지 입고 변소 청소하고 나오다가 갑자기 교통 사고로 가셨습니다. 초라하죠? 저의 남편도 암으로 하루 만에 갔지만 정말 믿는 사람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게 갔습니다. 세례 요한이 목이 잘려 소반에 담겼는데 평화스럽게 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 자체를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는데 그 모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죽는 게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속사 밖에 모르니까 죽음이 무서워서 죽기 싫다고 추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맨날 '나는 죽어야 돼, 죽어야 돼' 부르짖었는데 욕창이 생겨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데 진통제 먹는 것만큼 회복이 안좋다고 하니까 그 많은 진통제를 하나도 안 드시고 이불 밑에 다 숨겨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순간이 가장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이고 행복한 때입니다. 신앙 생활 하면서 변화가 없는 이유는 과거의 모든 순간이 지금 이순간을 알게해주는 연습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서 내가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도록 때마다 허물을 벗도록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새가 태어나서 작은 병에 넣어서 보살펴도 자라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새는 자라는데 내보내지도 않고 병도 안 깨진다면 얼마나 지옥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자꾸 깨져서 멋대로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8절 까지의 모든 때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인 것입니다. 목적을 이룰 때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로마서 말씀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세월을, 시간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아끼는 것

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자는 것은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데 내 모든 때에서 그 작은 병에 갇혀서 상처 받고 기분 나빠하고 교만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것이 내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잠자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 지금 어떤 때를 지나고 계십니까?

- 지금 내 때가 목적을 이룰 때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내 때에 처한 재 자신의 모습은 아름답습니까? 

 

어려서 엄마가 안 돌봐주어서 고아처럼 산 때도 힘들었지만 학창시절에는 짜들어지게 가난한 때를 지났습니다. 걸레질 하는 시집살이의 때 뿐 아니라 무시당한 때, 매 맞았던 때, 욕을 먹었던 때를 다 아름답게 하셨는데 38년 동안 과부의 때를 너무 오랫동안 살고 있습니다. 살다보니까 남자와 여자를 50:50으로 보면 여자가 아무리 잘나도 51이 절대 될 수 없는 것이었고 남편은 여자에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사역을 해도 남편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울타리가 되고 세상적으로도 속으로는 어떻든 남편이 있어야 내가 기사가 모는 차도 타면서 으시댈텐데 지나고보니 아무리 힘들다해도 남편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엄살에 지나지 않을 만큼 남편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책임은 남편이 지니까 모든 것은 남편 뒤에 숨으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다 책임져야 합니다.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어떻게 왔나 싶을 만큼 남편의 죽음은 나를 조롱케하고 무시 받게 하고 사역을 할 수 없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누워만 있는 남편도, 30년을 누워 있어도 있어야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더라구요. 그런 남편이 30대 젊은 나이에 하루 사이에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그 때는 남편이 저를 힘들게 했으니까 남편의 위치가 이 지경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또한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전기불, 수돗물도 아끼고 집에 자동차가 있어도 저보고 버스 타고 다니라고 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모두 때를 아름답게 하셔서 그 모든 것을 다 모았다가 이렇게 지금 사람 살리는 사역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은 그러지 마시고 여러분의 때를 아름답게 하시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모든 때를 어떻게 아름답게 하셨을까요?

 

2.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어떻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나요? 우리는 오늘 내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힘들다, 못살겠다가 주제가입니다. 도저히 못살겠는데 오늘도 교회 한 번만 가보자는 간청에 못이겨서 오신 분들 계시죠? 너무너무 잘 오셨습니다. 힘든 남편, 아내, 자녀, 이웃, 직장, 입시, 입사 등 그야말로 인생의 짐짝 같은 노고가 왜 나에게 가장 딱 맞는 세팅일까요? 그것이 우리를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하나님 처럼 섬기던 삶, 나를 위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던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고난을 겪으면서 어쩔수 없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끝을 맺으시는 일을 보며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채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할 곳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면 그 빈 공간에 하나님을 채우고 삶을 훨씬 의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14절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에는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밑둥 잘린 나무인데 하나님만이 영원하니까요. 진정한 영원의 시간에 눈을 뜬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혼란스럽고 질서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을 하나님의 질서라고 하고 아름답다고 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 세속사의 시간 안에 있고 하나님은 구속사의 이 세상 시간 밖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크로노스가 아니고 카이로스의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 밖에  계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 영원을 사모하게 하기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깍으셨읍니다. 자신을 비워 우리에게 딱 들어맞게 맞추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노고와 질고의 십자가를 직접 지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형벌과 죽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수치와 조롱 속에서 육신이 다 찢기는 고통 가운데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이 처참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영원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사는 영생을 증명하셨습니다. 영원히 거하는 그 때를 사모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품을 사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때를 주신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납니다.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봄은 여름이 되고 싶어하고 여름은 겨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심을 때, 뽑을 때가 한정된 시간이고 한정된 시간 안에 목적을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정된 시간 안에 기쁨을 이뤄야 합니다. 항상 인생의 양 극단을 볼 수 있는 균형잡힌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시간인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해야 이 세상의 때를 목적에 맞게 사명대로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 힘든 상황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셨나요?

 

제 남편은 무의촌에 가서 어려운 사람을 돌보면서 살거니까 저 보고도 피아노를 그냥 가르쳐주라고 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 사람은 택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성경을 깨달으면 성경도 안보는 남편은 적용을 했습니다. 선지자적인 삶은 살고싶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닌데 우리 부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환경에서 죽도록 절제하고 죽도록 힘든 환경을 이미 살게하셨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남편과 정말 살기 힘들었지만 그 때도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힘듬 때문에 영원을 사모하게 되고 제가 목회를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남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자꾸 무너지는데 제가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목회를 해도 맨 끝에 돈이 있다고 하는데 돈을 아낄 줄 몰랐을 것입니다. 내가 잘해서~하는 생각을 하나라도 했다면 모두가 구속사의 시간에서 내 지나온 때를 생각해보면 구원으로 연결되니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때인 것입니다. 가장 힘든 아내의 때, 남편의 때가 주님을 부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보이는 시간 안에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데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기 때문에 한계가 없으신 영원하신 분이기에 이 영원을 우리 부부가 모두 시간 차이는 있었지만 사모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 힘든 부부가 그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3.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은 언제 고난이 올지, 언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이 찢을 때인지 꿰멜 때인지 모릅니다. 돌을 던져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하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하면서 안을 때만이 아니고 아는 일을 멀리할 때도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남편이 나를 멀리해도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이 나를 안 안아줘도 오늘 목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이 안아주지 안아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안아줘서 영원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와도 항상 말씀이 안들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너무 이뻐해서 안아주다고 사위에게 넘겨야 할 때도 오는 것입니다. 안지 못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아름다운 것이지 내가 영원히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을 보아도 허무의 밑바닥에는 자식이 있습니다. 천 명의 여자가 있어도 아들은 하나인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르호보암이 없었다면 어떻게 허무함을 알았겠습니까? 그러니 허무를 더욱 알게해주려고 속을 썩이는 자식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택자는 어떻게든 허무함을 알게 해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남편이 다섯이 있어도 지금 있는 남편도 내 남편이 아니니까 허무함을 아니까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빌라도나 부자 청년은 허무함을 몰랐기 때문에 교양 있게 떠났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쓰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치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말지를 모르게 하심으로 훈련을 하시는 것입니다. 기약 없이 자식이 속을 썩이니까, 남편이 안돌아오니까, 사업이 안되니까, 기약이 없으니까... 그 때를 알려고 기도 받으러 다니고 그러면 안됩니다. 때를 모르는 것 하나님이 훈련하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증거하고 반응하시는 방법은 바로 때라는 것,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을 보아도 전도서를 보아도 성경의 어디나 다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만 하면 된다는 기복적인 게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폭력을 당해도, 부도가 나도, 매를 맞아도 때를 따라 다 아름답게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런 분들이 영원을 사모하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성폭력 안 당하면, 부도가 안나면 영원을 사모하나요? 여러분들은 구속사적으로 시각이 바뀌셔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빈부의 차이로 무시를 하고 자녀가 없다고 무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짧습니다. 밑둥 잘린 나무이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신것이 바로 목적이 이룰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억울합니다. 나는 모르는데 하나님 혼자 하신다고 맨날 순종하라고 하니까 이것이 뭔가?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라고 한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순종하면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 말을 해야할 지 침묵해야할 지의 타이밍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위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나의 때의 아름다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면 내가 뭘 하겠습니까? 시종을 측량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우리는 오늘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할 일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해서 예배 드리고 목장 가고 더 사랑하고 더 웃고 울고 꿰매고 치료하고 내 때를 잘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을 가장 잘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제 인생을 보면 지나고 보며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셨기 때문에 영원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측량할 수 없게 하셨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의 결론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주님이라면 내가 죽음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제 인생의 모든 때마다 힘들었지만 영원을 사모하게 하시니 시간 안에서 맨날 힘들다고 했던 제가 시간 밖의 세계를 알게되니까 , 무한대의 구원의 때로 나가게 되니까 지나간 일까지 해석되어서 내 현재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늘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서 조금 더 큰 데로 나가야 되니까 좀더 강한 어려움의 때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도 시종을 측량할 수 없게 하신 남편의 죽음은 도저히 이 세상의 시간 안에서는 기뻐할 수 없는 하루 만에 데려가신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름답게 하셨을까요? 죽음은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망이 쏜다고 합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이고 죄는 율법으로 쏜다고 합니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남편의 죽음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보이라고 그 때를 아름답게 한 것은 그 죽음에 사명이 있고 이것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명의 때를 아름답게 하셨는데 뭐니뭐니해도 이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때는 구원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남편의 구원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를 너무 너무 힘들게 했던 남편이 아침에 밥 한 그릇 뚝딱하고 출근했는데 갑자기 쓰러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간암 말기로 간동맥이 파열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기 때문에 듣자마자 당신 회개하고 천국가지 않으면 애들 데리고 살 자신이 없다고 얘기 했더니 남편의 첫마디가 왜 울고 그러냐, 이제 봤더니 예수 헛 믿었네. 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학대하다싶이 했던 남편은 그렇게 부모님 밖에 모르고 아이들 밖에 모르더니 일절 부모님, 아이들 얘기 한 마디도 안하고 그 때부터 제 걱정만 했습니다. 제게 아무것도 안 맡기던 남편은 이것저것 알려주며 유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친척 중에는 철이 없고 경솔해도 분수가 있지 왜 병명을 얘기해서 살 소망을 끊는냐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구원은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자신은 산소 호흡기 달고 있으면서 중환자실에서 의사에게 몸이 약하니까 집사람을 내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안나가니까 숨을 헐떡이며 회개하라는 말에 용사해주세요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함께하는 회개를 해본제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만... 그것만해도 사실 대단한 것이지만 ... 밤중 12시부터 야곱이 얍복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듯이 영과 육의 얘기를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제 다리가 아프니 의자를 가져다 주라며 계속 남편은 제 걱정을 했습니다. 7시 쯤 목사님이 오셨을 때 살려달라고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늘밤 천국 문 앞에 서셨다면 거기에 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하고 물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것 같이 두 팔 벌리고 산소 호흡기 달고 수혈하면서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들리도록 '예수 이름으로요' 대답했습니다. 완벽주의 남편은 우리나라에 간염 보균자가 많다고 늘 한 달에 한 번씩 간기능 검사 지정 병원인 우리 병원에서 간기능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간암 말기로 간동맥이 파열되도록 안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의사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만이 주자하시는 줄 믿습니다. 가망이 없고 화급을 다툰다는 선고를 받고 이 남편이 바람도 안피우고 부도도 안나고 병원도 안되는 게 아닌데 부모에게는 효자고 아내에게는 바람 한 번 안핀 열부에다 아이들에게는 사랍학교까지 보내는 자부인 이 장로님 아들이 죄를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드디어 45년 만에 이 죽음의 선고를 받고 죄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식구들 앞에서 예수 이름으로요 고백한 다음에 목사님은 내 직업을 아십니까? 제가 믿음이 업어서 교회를 안나간 게 아니라 죄를 많이 지어서 못갔다고 하면서 우리나라가 가족 계획 지정 병원을 해서 낙태를 하여 악의 평범성이 되었는데 산부인과 의사로서 낙태의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회복시켜 주셔도 감사하고 회복시켜 주시지 않아도 할 말이 없는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가운데 행위로 천국 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빠을 만들 때 계란이 5개 중의 한 개가 썩어도 알고는 못 먹고, 만 개 중의 하나가 썩어도 알고는 그것으로 만든 빵을 못먹어요.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주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남편은 그 때 남편보다 나이 어린 처음 보는 목사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목사님을 따라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세상이 인생의 주인이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연약한 인생입니다.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고 고백했습니다. 식구들에게 돌아가면서 회개의 고백을 했습니다. 제게 용서해달라고 하고 친정 아버지께는 아들 없는 집에 와서 아들 노릇 못했다고, 또 식구들 앞에서는 내가 비판한 것은 미워서 비판한 게 아니고 사랑해서 비판했노라고 모든 식구들 한 사람 한사람 한테 회개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가신 후에 제게 오늘 이 회개의 고백을 제게 하고싶었지만 순서가 있잖아 했습니다. 그는 구원도 받고 식구들에게 돌아가며 회개하며 유언도 다하고 영육간에 완전한 구원이 일어나고 구원 받았기 때문에 염려가 안되고 소풍 가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기는 이제 오래 살지 않는다고 12시에 산소호흡기 다 뽑을 것니까 병원비 가져오라고 병원의 생활비 주고 병원의 기름 값고 주고 옥상에 널어놓은 고추를 걷으라고 했습니다. 다녀오니까 그 한 시간에 평생하지 못했던 전도를 다했습니다.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갔다 온 제게 너무 잘했다고 큰 일을 그렇게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고 세 번이나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남편은 쓰러진 다음 부터 제게 너무 구체적으로 일을 시켰습니다. 어떻게 옥상에 고추 말린 것 까지 걷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구원이 일어났기 때문에 마지막 명령을 아무 토 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니까 얼마나 비참해요. 그런데 마리아는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이니까 그것을 있어야 될 일로 여기잖아요. 이 세상에 가장 큰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가 그 명령을 들으러 간 것입니다. 보통 같으면 12시에 왜가, 여기 병원비 내 줄 사람 없어서 갔다오라고 하냐 할것인데 저는 항상 남편이 말만 하면 네 하니까 구원을 위해 회개해라 하는 한가지에만 소리를 질렀지 세상적인 얘기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렇게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는 장례식을 제가 치루게해서 미안한데 걱정하지 말라고 사무장하고 얼마든지 잘 치룰 수 있다고 해주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의 모습이 어떤지를 하루가 안되는 사이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보여주고 10에 뇌사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그 때 내가 구원, 영접을 받지 않았다면 이 3시간이 완전히 구원의 타이밍이 아니잖아요. redeming the time 세월을 아끼라는데 그 3시간 안에 이런 엄청난 일을 수십년 동안 제가 간증을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오신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뇌사 상태에 들어가니까 모든 의사들이 와서 cpr을 했습니다. 저는 하루도 안 되는 이 시간에 아침에 출근했는데 중환자실에서 생명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제가 보았습니다. 12시 쯤 천국에 갔습니다. 기가막힌 것은 저는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으니 누가 봐도 믿음이 좋고 남편은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때는 진실이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형 선고 받은 직후부터 제 걱정만 하다가 갔다는 것입니다. 제 남편이 구원되면 이세상에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저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이루말할 수 없이 얇팍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형 언도를 받았으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매일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입으로만 부르짖는 것인가. 그 때부터 저는 회개를 시작해서 오늘이 마지막처럼 이 사명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한 그 놀라운 회개의 고백이... 그러니 제가 우리들교회에 어떤 분이 와도 정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편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있으니 누가 와도 저 사람은 안돼 하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은 안돼 라고 할 사람이 이세상에 없다는 것을 남편이 보여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회개는 이렇게 사명의 길을 가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집에서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들이 사명의 길을 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38년을 한결 같이 올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부끄러운 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회개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생각이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들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나를 힘들게 한 모든 때를 이렇게 아름답게 하셨는데 제가 이것을 다 모르고 그 때 눈에 보이는 이세상의 시간 안에서 가정을 뛰쳐나갔다면 지금의 우리들교회도 큐티인도 없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때를 영원을 사모해서 말씀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남편의 영접은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저야말로 노고로 힘든 인생을 수고해서 남편이 가고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여자로서, 전문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짜드러지게 가난한 제가 얼마나 악착같이 수고하고 노고를 했으면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서울예고에서 피아노 강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과부로서는 최고의 노후보장이었지만 세상에서 그것과 주 안에서의 사명을 비교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제가 좋아서 13년 동안 안알아 주어도 밥해가면서 큐티 모임을 13개 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회개 덕분입니다. 남편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회개를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제 고난이 시덥잖아 보여도 제 고난의 양이 영혼을 사모하게 하셨기 때문에 행복에서 거룩으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고난에서도 이 사명을 찾으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될 줄 믿습니다. 남편의 병상에서의 영접은 38년 동안 우리들교회 뿐아니라 각 교회마다 또 세계 곳곳에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접을 이루어 냈습니다.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흘러 내려가게 했습니다. 우리들교회 사역자들을 특히 영접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수많은 열매가 있게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큐티를 해설 저절로 전도가 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장례식을 가도, 결혼식을 가도, 경조사를 가도 우리의 목적을 구원입니다. 늘 전도인 것입니다. 그저 위로가 아닙니다. 그러니 question time인 큐티의 결론은 영혼 구원, 전도가 맞습니다. 그래서 부활 주일을 맞아 원주에 분립 개척을 하려고 합니다. 강원도는 너무 큐티로서 조용하기 때문에 그곳에 구속사 말씀이 들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말씀만 부르짖으면 바리새인들 처럼, 서기관들 처럼 예수님을 죽이는 데 내어 줄 수 있는데 큐티하는 우리는 사랑하고 전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은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가 얼마나 동의 되십니까? 그런 간증이 있습니까?

- 예배, 큐티, 목장, 직장, 가정 등에서 오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전도서3:11만 읽어도 여러분들의 인생이 다 해석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