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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구원을 위한 고난 (김현중 목사님)

by relife_es 2025. 4. 13.

(누가복음 22:63-71)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거짓 소문 만큼 무섭고 힘든 게 없는데 가짜 뉴스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일반인이든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빠른 시간 안에 그 사람의 삶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짜 뉴스가 많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가짜 뉴스에 의해 공회에 끌려가십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세상의 창조주께서 끌려오셔서 고문을 당하시고 누명을 쓰시고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참으셨을까요? 바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사실 많은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가짜 뉴스의 피해자가 된 것처럼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힘든 그런데 그 모든 사건은 늘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만나라고 허락하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시간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위해 허락해 주신 고난을 잘 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원을 위한 고난을 잘 당하려면
1. 희롱하고 때리는 내 죄를 봐야 합니다.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감람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위해서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하시고 유다의 배신으로 대제사장 무리에게 끌려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고 주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멀찍이 서있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유난히 깊고 어두웠던 그 밤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번에는 예수님 곁을 지키는 병사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폭행합니다. 주님께서 당장 명령만 내리시면 하늘의 12군단도 더 되는 천군천사들이 대기중이고 그들을 처리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인내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병사들이 밤새 주님을 가지고 놀며 매질했는데 주님께 눈을 가리고 누가 쳤는지 맞춰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데 누가 쳤는지 왜 모르시겠어요. 하지만 맞추지 않으십니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수치를 당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는 게 목적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죽기로 작정한 사람은 나를 희롱하고 때리는 사건 속에서 원망하거나 혈기를 내거나 하지 않고 이제 내가 죽어야겠구나 하고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있어야 할 사건으로 생각되니까 당장 상대방이 변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의 성전인 내가 개혁되는 것으로 기뻐하고 결국 영적 진실성의 결과인 인내를 열매로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이렇게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십자가를 잘 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구원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본문의 유대인들처럼 내 옳고 그름의 욕심에 갇혀서 나의 만족을 위해서, 나의 구원을 위해 허락하신 배우자와 가족을 희롱하고 때립니다. 그들이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데도 모든 게 다 너 때문이라고 배우자에게 혈기와 정죄의 말로 때리고 내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자녀에게도 네가 잘못한 것이다, 네가 문제다 라고 원망합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내가 맞은 것만 보지 말고 내가 어떻게 때렸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사같은 나 때문에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제가 바로 그 병사 같은 죄인 인데요, 처음에는 제 죄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권사 장로 부모님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정직하게 예의 바르게 바르게 바르게... 그 결과 아무리 바빠도 횡단보도는 흰 선을 넘어서 건너지 않았습니다. 45도로 건너는 사람들을 정죄했습니다. 길거리에 떨어진 돈은 내 돈이 아니니까 줍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다른 사람이 주워가지 못하게 하려고 원래 주인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바르게 더 바르게... 신앙에도 바른 삶을 추구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구역 예배를 다녔고 당연히 주일 성수와 헌금은 기본이었고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전도한 친구가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에 돌하르방을 제게 선물로 주었는데 저는 어디 이런 우상을 내게 주냐, 네가 생각이 있냐 없냐 하며 호되게 혼을 냈습니다. 교회 여름 수련회를 다녀온 친구에게는 참 잘하였도다 한 번만 더 다녀오면 너와 네 집에 구원이 임할 것이다 라고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자로 자란 저는 20살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도 제 죄보다 다른 사람의 죄를 들여다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선교사의 삶을 결단하고 제자 훈련, 단기 선교 등을 경험하면서 이런저런 저만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나의 기준이 많아질수록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불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20대 때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해주셔서 저를 아주 조금 낮춰주셨고 때가 차매 29살이 되었을 때 4살 위 누님과, 선교의 비전을 가진 부담스런 누님과 결혼하게 해주셨습니다. 금방 선교지로 갈 줄 알았는데 부부 싸움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선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 신혼여행에서부터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사정이 생겨서 아내가 원하는 여행지로 가지 못하게 되자 아내가 실망해서 아무데나 가자고 했는데 눈치 없는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서 제가 가고 싶었던 지인 선교사님과 장로님이 있었던 사이판으로 갔습니다. 거기 가면 거룩한 성도의 교제도 하고 비용도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보다 열심이 더 컸던 장로님은 매일 아침 차를 대기시켜 저희에게 단기 선교팀 티를 입고 교회의 각종 모임들, 기도회, 예배, 성경 공부 등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신혼 여행이 아니라 사이판 수련회가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좋았습니다. 저 혼자 만족했던 수련회였고 해맑은 저와 다르게 아내의 표정은 점점 어두어져 갔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는 부부의 대화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혼 초에 단기 선교를 가기 위해 재정 마련을 한다면 당연히 내 것을 먼저 드려야 하는데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주었던 반지를 팔기도 했습니다. 제 수준을 알지못하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면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그리스도인이면 마땅히 살아내야 하는 자기부인이 아니냐며 여러 차례 아내를 무시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많은 말로 눈빛으로 아내를 조롱하고 때렸습니다. 아내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내가 성도야?" 와" 선교 가려고 결혼했지?" 라는 말이니 얼마나 제가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던 자였는지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은 나의 반을 버리고 상대의 반을 채우는 거라고 하셨는데 나의 반을 버리지 않은 채 상대에게 버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마땅히 주어야 하는 사랑을 주지 않고 복종만을 기대했습니다. 사역을 핑게로 집을 자주 비우고 인정 중독과 일 중독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런 제 악한 삶의 결론으로 아내는 계속 이혼을 요구했고 결혼 3년 차에 가정법원에 이혼서류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제 구원을 위해 있어야할 사건이었지만 구속사의 말씀이 없었던 저는 끝까지 이혼을 밀어부친 아내가 가해자고 제가 피해자라고 아내 탓을 했습니다. 법원 로비에서 교육 영상을 보면서 동기 후배들은 다 해외 선교사로 나가 있는데 나는 지금 법원에 있구나 그렇게 회개의 눈물이 아닌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수치스러웠고 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깊은 우울감 속에서 살 소망이 끊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가 마음을 돌려 가정은 지킬 수 있었지만 제 안에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아내를 조용히 티 안 나게 미워했습니다. 그렇게 내 죄를 못 보고 회개하지 않으니 65절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병사들이 많은 말로 예수님을 욕했는데 누가는 이것을 신성한 것을 의도적으로 모욕할 때 쓰는 단어로 기록했습니다. 자칭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모욕했으니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너무 합당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인 아내를 평가절하 하고 나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하는 피해의식과 비교와 열등감 속에서 아내에게 당신 때문에 우리 가정이 선교를 못 나가는 거야 그리고 당신이 힘든 것은 여전히 자기 부인이 되지 않아서야 하며 많은 말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는 회개하지 않은채 다시 사역으로 바쁘게 지냈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구원을 위해 결혼 6년차 때 아내의 육의 성전을 치는 사건을 허락하셨습니다. 케냐 단기 선교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혈변을 심하게 보던 아내가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가면서도 아직 젊은데 별 일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받았는데 검사가 끝나자 마자 의사 선생님이 바로 저희를 불러 사진을 보여주며 암이 대장을 뚫고 나왔다고 이미 많이 진행되었다고 서둘러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술 날짜가 빠르게 잡혔고 12번의 항암 치료도 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간호하고 여러 위기를 통과해가면서 제가 아내를 병들게 한 발암물질 이라는 것이 조금씩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했던 모든 것들로 아내를 모욕하고 천천히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교회에 와서 구속사의 말씀으로 양육 받으면서 이혼을 요구한 아내가 가해자가 아니라 제가 가해자 라는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또 남은 시간 아내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할 말 없는 죄인임도 깨달아졌습니다. 이혼 위기의 사건과 암 사건은 저희 부부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아내를 미워하고 판단과 정죄의 말을 한 게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린 거라고, 신성모독의 죄를 지은 것과 다름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더욱 회개가 됩니다. 이제는 반대로 제가 아내에게 많은 욕을 들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듣고 있는데요, 잘 들으면서 아내에게 계속 용서를 구하고 사랑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 목장에서도 저를 여전한 방식으로 고발하는 아내를 보면서 순간 15년 째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하며 생색이 살짝 올라올 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미안하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다 들어야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때를 보내고 계십니까? 때리고 계십니까, 잘 맞고 계십니까?
 
적용질문
- 현재의 고난이 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사건이라고 믿어지십니까?
- 그 속에서 희롱하고 때리는 내 죄를 보고 있습니까?
- 나의 인내 점수는 몇 점입니까?
 
2. 분별이 필요합니다.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아침이 밝자 가야바의 집 뜰에서 유대인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가 열렸습니다. 밤에는 공식적인 결의를 할 수가 없어서 아침 번제를 드릴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유대인들은 자체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공회를 통해 결의한 다음에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이송해서 사형을 선고 받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그리스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받은 구원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여러차례 삶과 이적과 가르침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백성들도 그것을 알고 있고 공회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옳음과 욕심에 빠져있으니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거할 생각만 합니다. 우리도 같은 이유로 내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배우자, 자녀를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를 희롱하고 때리고 고발합니다. 오늘날 많은 부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자를 삶에서 제거하려고 귀책사유를 만들어 이혼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말씀으로 분별하시고 내 구원을 위해 이 사건이 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꼭 내 죄를 보셔야 합니다. 대제사장 무리가 그리스도 이거든 말하라고 한 것은 무엇때문이겠습니까? 오직 하나, 예수를 사형죄로 고소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신성모독 죄에 로마법에 사형에 해당하는 정치 반역죄를 뒤집어 씌울 계책인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더 지혜롭게 대답하십니다. 그러고보면 주님은 구원을 위해 항상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분별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침묵해야 할 때는 잠잠하셨고 말해야 할 때는 거침없이 외치셨습니다. 구원을 위한 지혜가 있으셨습니다. 
저는 이 지혜가 없어서 그렇게 부부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침묵해야 할 때 혈기를 부렸고 반대로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의 3 방언을 말해야 할 때는 입을 닫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말씀대로 전에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하셨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또 주님의 질문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나는 죄인이라고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번에도 그들이 믿지 않고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거짓 소문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을 걸 아셨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십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을 정확히 분별하셨고 사랑으로 책망하시면서 돌이켜 살라고 그들의 상태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구원을 위해 잠잠할 수 없는 주님이십니다. 여기에는 어떤 미움이나 원망이나 생색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처럼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는 혈기를 내면서 남을 죽이려 하지만 예수님처럼 자신에 대해 알고 이 사건이 왜 왔는지 아는 사람은 혈기내지 않고 내가 죽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 와서 이런 주님의 사랑과 분별을 참 많이 봤습니다. 목자님, 권찰님 부부가 구원을 위해서 목장을 섬기면서 담임 목사님 가르침대로 지금 이 목원에게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상태인지 아니면 따끔하게 말씀으로 처방을 주어야 하는 상태인지 분별하셨고 오늘 목장은 11시 전에는 끝내야 할까, 아니면 새벽 2,3시라도 끝까지 가야 할까 하는 분별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도움이 필요한 불신자 가족에게 충분히 도와줄 수 있지만 지금 도와주는 것이 구원을 위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계속 외도하면서 이혼을 요구하는 배우자에게 이 번 한 주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자녀를 위해서, 또 내가 내 죄를 어떻게 보며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주님께서는 혼자 분별할 수 없는 나를 위해 함께하는 우리가 같이 주신 말씀으로 묵상하고 나누고 기도하고 적용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들 공동체가 여기까지 오게 해주셨습니다.
올 해 제가 신임 목자가 되었지만 얼마나 제가 사랑과 분별이 없는 자인지 깨닫도록 수고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중1 아들입니다. 이 독생자의 이름은 사춘기입니다. 요즘 춘기에게 친부모인 저희 부부가 그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르는데 우리 춘기의 말이 짧습니다. '뭐어~ 왜!' 저도 점점 기분이 나빠지면서 그의 이름 대신 상대를 낮춰 부르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게 됩니다. '야!' 오늘 말씀처럼 그는 제가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고 물어보아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말씀을 암송시키며 교리 교육을 했고 성품으로 착하게 바르게 그렇게 키웠는데 작년부터 시작된 아들의 일탈과 반항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들어둔 말씀이 있어서 학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목장에 나누었고 목장 식구들이 옆에서 제게 이렇게 얘기해주었습니다. '목사님, 아들은 지극히 정상이에요. 너무 잘 크고 있어요. 목사님 죄를 보세요. 아들 눈높이로 내려가셔야죠. 목사님의 아들 바라보는 눈빛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아들이 학교에서 왜 그렇게 하는 것 같으세요?' 어떤 날은 왜? 라는 질문을 10번 넘게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때마다 아들과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공동체가 섬겨주셔서 이제는 사건이 와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그럴수도 있다가 조금씩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 삶의 결론이구나 하며 내 죄가 무엇인지 계속 묵상하게 됩니다. 작년에 취학부 큐페 저녁 집회를 제가 인도했는데 저녁 집회를 하면서 부모님 고난 있는 친구들 앞으로 나오세요 하며 학생들을 초청했는데 멀찍이 앉아있던 아들이 제 얼굴을 보면서 나오더라구요. 제가 인상을 찌뿌리고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 바로잡으면서 레이져 광선을 쏘면서 '네가 왜나와?' 하고 눈으로 얘기했습니다. 제 당황한 표정을 본 아들이 만족스러웠는지 자리로 돌아갔지만 모든 것은 우연이 없기에 계속 think해 보았습니다. 예목 과제를 하고 큐티를 하면서 아들과 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니 제가 정말 불편한 아빠더라구요. 과거에 율법주의로 아내를 숨막히게 했던 제가 대상을 바꾸어 무거운 규례와 관습으로 아들을 너무나 힘들게 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아들에게 우리집은 머물고 싶지 않고 떠나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때가 있듯이 아들이 지금 상태에 맞는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올해 들어 아들과 더 잘된 것이 아니고 더욱 대화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지만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라는 담임 목사님 말씀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같이 성품이 강하고 교만한 죄인이 아들 덕분에 그래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되니 감사 밖에 드릴 게 없음을 고백합니다. 되었다 함이 없는 저이기에 청소년부 공동체에 아들을 맡기며 어떻게든 아들이 공동체에 잘 붙어가도록 혈기내지 않고 마음을 공감하고 헤아리며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아들 탓하고 아내 탓하던 저를 말씀으로 양육해주신 담임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분별이 없는 저를 위해서 제 재미없는 얘기를 계속 들어주시고 저를 대신해서 분별해주신 공동체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처럼 소망이 끊어지고 망한 것만 같고 우울한 분이 혹시 계시다면 이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늘 예배 너무 잘 오셨고 여러분을 위해 울어줄 목장이 있다는 것을 꼭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에 나오시고 목장에 붙어가시면 해달별이 떨어지는 너무 힘든 고난의 사건이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회복과 구원의 사건이 되게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돌아오는 주일에 부활절 전도축제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고 물어도 답하지 않았던 예수 믿으세요 전도축제 같이가요 해도 너나 예수 잘 믿어라 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우리의 가족과 지인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면 내가 십자가 지는 적용을 잘 못한 것 같아서 아직도 수고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애통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주님 주시는 지혜로 분별하면서 그 구원을 위한 말 한마디를 하면서 여기 데려다 놓으시면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살아나게 하시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 공동체가 함께 부르짖고 있으니 포기하지 마시고 꼭 다음 주에 데려오시기를 바래요.
 
적용질문?
-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구원을 위해 분별하여 적용할 것은 무엇입니까? (용납, 혈기내지 않기, 고미사)
- 이번 전도축제에 데려와야 할 VIP는 누구입니까?
 
3. 지금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무리들이 그분의 답을 비틀어서 사용할 것을 아셨지만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너희들이 말하고 있다. 내가 바로 그다. 거짓과 불법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은 자신에게 불리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세속사로 보면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구속사로 보면 구원을 위해 꼭 해야 하는 말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에 지쳐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런 말을 하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우편은 힘과 통치를 상징하는데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제사장 무리가 네가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맞습니다. 지금 말도 안되는 거짓 소문으로 붙잡혀서 재판을 받고 계시지만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다만 지금은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하는 때입니다. 이 세상에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심으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지금 죽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때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성경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하나님께서 또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공동 상속자로서 모든 것을 물려 받을 위대한 존재이고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통치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신분이 무척 대단하지만 정작 삶에서는 그것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도록 힘든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내 곁에 아무도 깨닫는 자가 없고 나를 버린 자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만 있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외도 가운데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배우자, 폭행과 폭언으로 내게 상처 준 부모님, 술과 음란으로 마음의 병으로 고통 받고 방황하고 있는 자녀, 이단에 빠져서 아무말도 통하지 않는 가족, 내 자존심을 계속 건드리고 날 괴롭히는 직장 상사, 그들 앞에서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 말은 어떤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죽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신것처럼 우리도 우리 신분을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죽기 위해서... 그것은 바로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의 고백이고 내가 가해자였다고 이제 남 탓이 아닌 내 탓을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가 순종할 수 없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옳고 그름의 고정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하는 고백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지금 고난의 사건에서 내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가족들이 다 보고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보이라고 나에게 힘든 배우자와 자녀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 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그러니 못 참을 이유도 없고 못 산다고 할 이유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잘 죽으라고 알맞게 세팅해 주셨는데 우리는 죽는 게 너무 싫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십자가 만큼은 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하며 나중으로 미룹니다.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하지 않는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죽습니다.
저도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수고를 했습니다. 제가 이것저것 성품으로 해보고 말씀으로 해보고 논리로 설득해보았는데 다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죽는 것 밖에는 없구나. 처음부터 이 길 밖에는 없었는데 나는 계속 살고 싶어서 살려고 해서 아내와 아들이 수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구나. 이제는 제가 조금을 알 것 같은데 여전히 적용이 잘 되지 않아서 애통합니다.
애통한 것이 또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대한민국이 저출산의 위기를 겪고 있고 탄핵과 함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 국민들이 서로 분열되서 남 탓하며 원수처럼 싸우고 있습니다. 아무 말도 서로 통하지 않고 그저 상대를 제거할 생각만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때에 필요한 것은 지금 십자가를 지는 위정자 한 사람이고 나라의 죄를 내 죄로 여기고 회개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상한 갈대같은 우리 인생은 절망과 고난이 왔을 때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놓지못하는 나의 애굽 지팡이가 있어서 그것을 놓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환경 앞에 엎드러집니다. 남이 십자가 져주길 원해요, 다른 사람이 희생하길 원해요, 나라를 위해 내가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침묵할 때가 아니고 구속사의 말씀을 큰 소리로 외칠 때가 되었습니다. 
71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고 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살아난 이야기를 친히, 직접, 우리가 가서 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해 Think Trip 신청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라도 전지역으로 모든 초원이 나갑니다. 우리가 이 지금 십지가 지는 적용으로 선교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만 살아나게 하시는 게 아니라 나라도 살아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나라가 돌이켜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리들교회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도피성 교회들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우리의 섬김과 간증을 통해서 가정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고 큐티하며 분별하고 구속사의 고백을 하는 당신이 나보다 옳다고 고백하는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내가 너의 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지금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 난가? 난 아닌데~ 하시는 분들 기도하시고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적용질문
- 구원을 위해 남은 방법이 내가 죽는 것임을 믿으십니까?
- 나를 힘들게 하는 자들을 위해 죽어지기로 작정합니까?
- 지금 재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구원을 위한 고난을 잘 당하려면 먼저 희롱하고 때리는 내 죄를 봐야 합니다. 내가 맞은 것만 보지말고 내가 어떻게 때렸는지 보아야 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내 삶의 결론으로 가족들이 수고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분별이 필요합니다. 나 혼자 살수 없기 때문에 말씀이 있는 목장 공동체에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과 상황이 말씀으로 분별되면 그 때부터 때에 맞게 내가 죽어지는 적용을 하게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지금 십자가를 지는 그 한사람을 찾고계셔요. 십자가 길을 먼저 가신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내가 죽어지는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