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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진창 속에서 건져주심(김동지 목사님-멜번새순교회)

by relife_es 2025. 5. 27.

성경 본문/  예레미야 38:1~13
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4.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5. 시드기야 왕이 이르되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하는지라
6.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7.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10.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우연히 집사님 시절의 김양재 목사님 테잎을  듣고 중등부 강의에 초청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다.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담임목사가 되면 저분을 다시 초대해서 온 교인과 다시 강의를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는데 호주에서 개척하고 강의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을 권하셔서 1회 목세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 호주에 와주셔서 목세를 진행해 주셨다. 만남의 기쁨이었다. 열과 성의를 다해 오직 말씀을 전하시는 데만 집중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으셨다. 1회 보다 더욱 풍성한 가운데 목세에 참여하면서 목사님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성도여러분은 목사님의 모습을 닮아가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초대교회처럼 정말 따듯한 교회, 그러면서도 동시에 불꽃과 같은 뜨거운 교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제게 기회를 주셔서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멜번지역에 교회를 개쳑하면서부터 큐티를 시작했다. 꾸준히 모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큐티를 가장 잘하는 우리들교회를 바라보게 되었고 목사님이 전해주신 말씀의 은혜대로 큐티를 해나가고 있다.

남유다의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듣지 않았고 타락한 양심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부터 출발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아니하니까 그들은 어리석게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 우상 숭배를 하게 되니 종교적, 영적으로 음란하게 되었고 동시에 바알 선지자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종교는 영적 타락 뿐만아니라 우상을 섬기며 성행위를 하는 음란함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니 우상을 붙잡게 되고 우상을 붙잡으니 음란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남유다를 바라보시면서 너무너무 안타까우셔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주셨다. 예레미야는 통곡을 하면서 남유다의 왕들과 고관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본문은 머무는 자와 항복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1. (진창 속에서 건져주심) 머무는 자와 항복하는 자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머무는 사람들은 칼, 기근, 전염병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신명기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할 때 칼, 기근, 전염병 세가지를 통하여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는 사람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라고 하셨나? 바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예배가 없기 때문에 이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서 떠나라고 한다면 쉽게 떠나실 수 있겠는가?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칼의 전쟁이 없다. 한국도 호주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심각한 기근도 없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있었지만 이것도 지나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칼, 기근, 전염병이 없으니 살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말고 조금더 묵상해보면 사단의 세력들을 오늘을 사는 많은 크리스쳔들에게 사단의 칼날에 쓰러지게 하고 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기근에 허덕이고 있는가? 말씀의 기근이 아닐까? 성령의 은혜가 없고 성령의 능력이 없는 그 자체가 기근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영적인 메마름으로 갈증을 느끼면서 내 영혼에 하나님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우리 마음은 공허하기만 하다면 기근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전염병으로 시달리고 있나? 현대 사회는 세계적으로 전통적이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를 인정한다. 성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믿는 크리스쳔을 역차별하기도 한다.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이상한 사상의 흐름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정치, 문화, 예술 부분에 있어서 잘못된 사상의 흐름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호주시민권을 얻기위해 시험을 칠 때 호주 사회는 기독교 사회가 아니라 세속 사회이다 라고 답을 적어야 정답이된다. 즉 모든 종교를 다 인정하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런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영적 기근, 영적 전염병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라 하면 직장 생활에 있어 여러가지 위협을 받는 것, 생활 속에서의 재정에 대한 기근, 사랑의 기근으로 가정이 메마르게 되는 것, 그래서 가정이 아픔이 많이 있는 것이다. 마약도 있다. 음란으로 전염되어 있는 것이 이 사회가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왜 예루살렘에 머물면 안된다고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을까? 왜 항복하라고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내가 머물러야 할 곳과 떠나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일 것이다.

호주 이야기 

동성에 반대하기 위해 피켓 시위를 했는데 모든 호주 사람들이 비난했다. 동성애 반대 시위하는 그날 호주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었다. 우리를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호주 정책이 바뀌어져 가고 있다. 

한 교수님 이야기 

교수중 여성이 자신을 남성이라고 하면 남성이 되는 것이고 남성이 자신을 여성이라고 하면 여성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은 여성이라고 또는 남성이라고 얘기해주어 그 사람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 말해준 사람을 대학 사회에서 퇴출시킨다고 한다. 시드니에서는 자신이 성정체성에 혼란이 온다며 기도해달라고 부탁해서 기도해 주는 것도 불법이라고 한다. 이런 사회고 바뀌어 가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양성과 성전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왜 떠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 말씀이 없고 살아있는 예배가 없고 예루살렘은 도둑의 소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성에 머물면 안되고 자꾸 항복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재건축하시겠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재건축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이주시켜 70년 동안 바벨론의 고난 학교에서 고난 받고 양육 받고 훈련 받으며 새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속사적으로 생각해보자. 예루살렘은 말씀이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가 사라진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청소하고 재건축해야 하지 않을까? 바벨론에게 항복하여서 가야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에 대해 다 알고 있었을까?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 70년 후에 돌아올 것에 대해 이미 예언해두었다. 그렇다면 그곳에 가서 잘 훈련 받고 양육 받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제가 느낀 우리들교회의 강점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양육을 시켜준다.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다시 예배를 드리는 이 예배 공동체는 정말 은혜의 공동체, 뜨거움의 공동체라고 느껴진다. 

바벨론으로 가서 바벨론 제국의 통치하에서 고난을 받지만 그 고난을 통해 양육 받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훈련 받아서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예루살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예루살렘에는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성전이 있다. 그런데 범죄의 소굴이 되어버린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이 버리시는 것이다. 버리면 파괴되어 느헤미야가 성전을 다시 지을 때까지 완전히 무너진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백향목으로 지어졌던 솔로몬 성전과 같이 아름다운 성전이 아니고 스룹바벨이 돌아와 짓게된 성전은 일반 잡목으로 지어진 성전이다.

학개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롭게 짓는 스룹바벨의 성전의 나중 영광, 솔로몬 성전의 이전 영광을 얘기하고 있다. 스룹바벨의 성전은 비록 부족하지만 신약 시대를 바라보면서 지어진 성전이다. 솔로몬 성전보다 초라하지만 모든 포로 후기의 선지서는 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언된 메세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배드리는 곳으로 재건축하자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떠나야 될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항복하여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만약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인가? 만약 떠날 수 없다면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잡아야 된다. 다시 하나님 앞에 뜨겁게 예배 드릴 수 있는 공동체로 회복되어져야 한다.  이 선택이 되지 않으면 이 땅은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하여서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기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야 될 줄로 믿는다. 

 

2. (진창 속에서 건져주심)나는 어디에 던져져 있는가?

예레미야가 마침내 진창 뿐인 구덩이에 던져졌다.
6.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진창은 물이 질퍽한 진흙탕인데 그 구덩이에 빠졌다고 한다. 

부부목장, 여자목장을 탐방하며 참 좋았다. 때로는 엉망진창의 상황 속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공동체 식구 중 마치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상황 가운데 있었는데 서로 위로하며 자기의 삶을 나누면서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며 그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와 회복으로 다시 끌어내는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통하여서 우리 삶이 자칫 잘못하면 웅덩이에 빠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이든 호주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어떤 어려움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게 됩니다.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울고 있을 때도 있고 힘겨운 하루살이가 너무 버거워서 몸부림을 칠 때도 있습니다. 재정의 위기로 인해 기가막힌 웅덩이에 던져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음란의 문제, 마약의 문제, 자녀 양육으로 다툼이 있거나 어떤 상태에 빠져 나오지 못할 진창 속에 헤메고 있는 경우가 사람이 사는 곳에는 모두 있습니다. 요셉도 다윗도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내 힘으로 내 지혜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다 알수는 없지만 주님을 바라보면서 고난의 학교를 통과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즐겨부르는 찬양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 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 잡고 날 인도하소서

 

적용질문

- 내가 현재 빠져있는 웅덩이는 어떤 곳입니까?

- 웅덩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3.건져내심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은 건져주시는 하나님 입니다.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이 왕에게 요청합니다.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시드기야 왕이 에벳멜렉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여기서 30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기 전에 그 구덩이에서 끌어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밧줄을 내려서 웅덩이에 있는 예레미야를 건져냅니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서 예수님의 나라로 옮겨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kingdom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예수님의 나라로 옮겨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봅니다. 태어나자마자 울음 소리가 너무 커서 할 수 없이 부모가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던져넣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공주가 발견하여 건져내지 않습니까? 모세의 인생은 건져주심에 대한 은혜가 있는 인생입니다.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세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훗날 백성들을 거져내기 위해 자신을 버리게 됩니다. 그 백성들을 건져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합니다. 모세에게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듯 우리 또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독일의 실천주의 철학자 하이베르그의 말입니다.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어떤 사건,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던져저있다 라고 얘기합니다. 우리 또한 이와 같은 상황 속에 던져저 있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던져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버림 받은 이가 있고 학창 시절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이가 있고 직장 생활 하면서 해고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이도 있습니다. 늙어서 노후 보장이 되지 않아 미래가 불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믿음 생활 하면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면 어떻게 하나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였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았나 하며 영적 함몰의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쳐있을 때 왜 하나님은 나를 내버려두셨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영적 함몰의 웅덩이에 빠져버린 현상을 체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셨을 때 80이 된 자기자신, 과거에는 이집트의 왕자였지만 초라한 목동으로 지팡이를 잡은 노인으로 젊은 때가 아니라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 질문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도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질문합니다. 나 부족합니다.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상처도 많고 문제도 많습니다. 나는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들이 두렵습니다. 제가 이렇게 부족한데 왜 제가 그 일을 해야합니까? 하나님의 답은 딱 한마디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주님이 내 손을 잡아 주시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건져내심을 받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의 모친께서 '임신 한 후에 아들이면 어쩌나 해서 낙태하려고 산부인과에 가셨다가 혹시 여자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낙태하지 않고 돌아왔단다.' 그런 얘기는 자녀한테 해주는 게 아닌데 제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나서 엄마가 제게 설걷이 해라 집안 청소해라 하셔서 어릴 때 고생 많이 했습니다. 낙태되었다면 저는 여기 없을 것입니다. 낙태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고 믿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가 늘 약주에 취하셔서 힘드셔서 저를 두고 어머니가 떠나가 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작은 어머니가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때 동네 모든 사람이 젖을 먹여 저를 키워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자취했었는데 연탄가스에 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 집의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믿지 않던 제게 동지 학생은 앞으로 목사가 되었으면 한다며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절대로 그 기도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로 목사가 되지 않을 겁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까지 친구에게 편지를 13장이나 쓰다가 밖에 나갔는데 연탄가스에 취해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날 편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저는 역시 죽었을 것입니다. 고등부 전도가 시절에 학생부 부회장이 연탄가스에 취해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하나님 앞에 이 학생은 왜 데려가시고 저같은 사람은 왜 살려주셨습니까? 기도했습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목회를 하다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개척 후 1년이 되었을 때 교인들이 목사님은 한국 스타일이니 한국에 가서 목회하시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정신병에 걸렸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했습니다. 송태영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고통을 당하는 쪽, 아픈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나서 고통을 당하는 쪽으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분열된 교회에 남아 목회를 하면서 20년을 지나오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아픔 가운데 하나님은 저를 건져주셨다고 믿습니다. 2014년도 목회세미나 왔을 때 부부목장에 참석하였는데 그 부부목장에 암 걸리신 분이 무려 4가정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가정들 옆에 앉아 살짝 겁도 났습니다. 부부목장 탐방왔는데 왜이렇습니까? 했는데 2년 후에 피곤한 제게 사모가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그 마사지로 인한 통증으로 소변에 피가 나와 암 덩어리 옆에 있는 혈관이 터진 것을 알게되어 암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은혜를 아내를 통해 경험했습니다. 또 코로나가 번창할 때 터지기 직전의 뇌혈관을 찾게 되어 머리를 열고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깨어나보니 중환자실에 있었습니다. 거울을 보니 봉합한 곳의 핀셋이 50여개 였습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셨고 다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적용질문

-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내어주심에 대한 간증이 있습니까?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 지금 웅덩이에 빠진 나를 어떻게 건져내시겠습니까? 믿습니까?

 

나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라고 하십니다. 내 앞의 주님이 보이십니까? 내 귀에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하나님 왜 저를 건져주시고 살려주셨습니까?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주십니다. 너는 사명자이다. 사명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예레미야를 건져내셨듯이 건져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떤 고난과 어떤 갇힌 상황과 어떤 웅덩이 속에서도 사명자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갇혀있거나 기가 막힌 웅덩이와 엉망진창의 진흙탕에 빠졌다 할지라도 버려진 인생이 아닙니다. 결코 초라한 인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보심이 함께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하여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명자입니다. 사명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소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위대한 일들에 대하여 오히려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자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의 은혜와 능력, 권세 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약함 속에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