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_김양재목사님/주일설교녹취기록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시드니 순복음교회 김범석 목사님)

relife_es 2025. 6. 23. 21:36

잠언29:1-27

1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2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3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4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5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6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7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8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9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10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11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12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13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14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6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17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18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19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20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21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22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23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25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6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27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사람을 두려워 하면 올무에 걸리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25절)

저는 스스로 의로운 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망과 징계를 잘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책망하셨고 여호와를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의 18절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묵상의 복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 알게하시고 목사님을 만나고 큐티인 책을 우리 교회가 함께 받아들여서 묵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라는 제목으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를 책망하셨고 제가 책망을 받았는지 제 인생 처음으로 간증으로 주일 예배 설교 시간에 하겠습니다. 

 

1.그 한 사람만 있어도 됩니다.

제가 오기 두달 전 김양재 목사님이 시드니에 오셨습니다. 5월에 있었던 목세에서 목사님을 뵙고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성도님들이 아니라 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목세를 통해 이런 큐티를 하는 프로그램, 교회를 이끌어 가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도님들을 변화시켜야 겠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 큐티 세미나, 목세를 통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제가 변하지 않으면, 제가 큐티하지 않으면, 제 안의 죄를 보지 않으면, 제 삶 속에서 흘러나오지 않으면 결국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리더가 세워지고 그 리더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되어가기 까지는 일,이 년이 아니라 10년, 20년이 걸려서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져야 아와 같은 교회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10년 전 쯤 목사님을 모시려고 전화드렸는데 못오신다고 하셔서 많이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먼저 연략을 해오셔서 세미나를 하시겠다고 전화를 주시고 이메일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시드니는 누구나 와 보고 싶은 곳이어서 많은 목사님들이 다녀가시고 세미나도  많으니 또 다른 세미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러니 시드니에 있는 목사님들이 세미나 한다고 하면 월요일 아침에 몇 분이 오셔서 점심 먹고 돌아가는 정도의 세미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시드니 교회는 한국 교회와 달라서 월요일 오전에만 오실 것입니다. 오후까지 2-3일을 하는 것은 힘듭니다. 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습니다 했는데 목사님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뭔가 찡하면서 마음에 이것은 꼭 해야되나보다 하면서 목사님의 열정에 제가 감동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그러면 오시라고 말씀 드리고 광고를 하고 아는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모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성도님들, 목사님들도... 그리고 월요일 아침 부터 오후 3시 까지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화요일도, 그리고 저녁 집회까지 다 오셨습니다. 제가 너무 놀랐습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중 한 분이 목사님 식사 대접을 하고싶다고 해서 목사님을 모시고 댁으로 갔는데 그 분이 목사님 손을 잡고 부들부들 떠시며 그렇게 힘들 때 목사님 말씀으로 그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다며 눈물을 글썽글썽 흘리셨습니다. 그 때 저는 내심 놀랐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이 이런 분인지 몰랐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은 세계 곳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정말 복 받은 분들은 여러분들입니다. 담임 목사로 성도님들을 섬긴다는 것이 제가 해보니 고통스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목사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복이고 그 복을 받은 분들이 여러분입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개이적으로 너무 감사한 것은 목사님을 모시고 이틀 동안 식사 대접을 했는데 음식에도 별로 관심 없으시고 너무 열정적으로 저에게 구속사, 세속사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겁니다. 귀한 목사님 오셨으니 삼대 미항이라고 하는 시드니 하버를 배를 타고 식사를 하면서 풍경을 볼 수 있게 모셨는데 그 멋진 풍경에 관심이 1도 없으십니다. 오페라 하우스를 모시고 갔는데 그냥 휙 돌아보시고 제 얼굴만 보고 설명하시는 겁니다. 그냥 서서 왜 구속사인지, 뭐가 구속사인지, 왜 세속사가 안되는지 설명을 하시는데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목세보다 너무 좋았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놀란 것이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꿈꿔오고 이상적으로 생각해온 교회를 목사님이 하고계시고 이미 이루고 계시고 열매들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을 살리는 교회, 힘들고 아픈, 외면되어진 사람들을 품어내고 살리는 교회, 그런 교회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한 영혼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까?

-나의 열정을 무게로 잰다면 얼마나 됩니까? 그 무게가 된 이유가 뭡니까?

 

2.사람만 보는 저를 하나님이 깨뜨려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시드니에 다녀 가시고 나서 목사님 하셨던 말씀을 생각하며 돌아보니까 10년 전에 목사님이 오셨더라면 제게는 그 구속사, 세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었을 것입니다. 목사님의 얘기가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그 흉년의 고난이 제게 오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 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셔서 주일 인데 교회에 가야되지 않겠냐 왜 안 가는 것이냐고 그 아들에게 걱정되어 얘기합니다. 그 아들이 주일에 잠을 좀 더 자야 하는데 늦잠을 못자서 그렇고, 주일 하루 쉬는데 교회 가면 이 사람 저사람 붙잡고 집에 못가게 하니까 그렇고 예배 드릴 때 장로님이 기도를 너무 길게 하는 게 싫어서 안 가겠다고 답합니다. 어머니가 듣고 네가 꼭 교회를 가야하는 세 가지 이유를 얘기합니다. 주일 예배는 선택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이고, 주일 예배는 사람을 보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고, 세번째는 네가 담임 목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우스운 얘기이지만 제게는 웃을 수 없는 아픈 얘기 입니다. 왜냐면 제가 바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8년에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시드니 순복음 교회에서 성장했습니다.하나님을 만났는데 그냥 하나님이, 예수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오히려 더 바빴습니다. 모든 주일학교, 고등부, 청년부 수련회를 다 따라다녔습니가. 그리고 대학을 나오고 신학을 하고 중등부, 고등부 전도사로 3년 반을 무보수로 섬기다가 2001년에 미국 풀러 신학교에 유학하여 석사, 박사를 하고 2007년에 다시 시드니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전 성도 투표를 거쳐서 89.4%의 성도님들이 동의해 주셔서 담임 목사로 내정되었습니다. 담임 목사가 되기 까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부목사로 섬기다가 2024년 3월 담임 목사님 소천하시고 4월에 담임 목사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보았을 때는 성공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잘 세우신 선대 목사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말아야 된다는 두려움이 제게 너무 컸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저를 보아오신 성도님들은 설교가 시작되면 팔짱을 끼고 허리를 제끼고 뒤에 앉으셔서 설교를 얼마나 잘하나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잘해야 된다는 강박관념과 스트레스가 엄청 났습니다. 처음 당회에 들어갔는데 시무 장로님 16분과 6시간을 회의를 했습니다. 그 때부터 1,2,3부 예배 설교가 끝나면 당회를 했는데 기본적으로 6-8 시간을 했습니다. 한 쪽은 저를 힘들게 해서 어떻게든 밀어내겠다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저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회를 들어가면 어떤 이슈가 있으면 그 이슈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하루는 새벽 예배 시간에 십자가 밑에 늘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했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 저 이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이제는 안되겠습니다.' 고백하며 울고 있는데 갑자기 제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네가 나를 따르겠다며?' 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망치로 뭔가 한 대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하고 좁은 길 따라 가겠다고 울며 손을 들고 기도했던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두커니 앉아서 그냥 무릎을 꿇고 있는데 또 다른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힘드니? 외롭니? 억울하니? 그런데 예수님은 죄도 없으신데 십자가를 지셨단다' 그 음성 앞에 제가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죄도 없으신데, 나는 죄도 있는데 내가 뭐그렇게 고난 받는 게 대단한가? 예수님은 죄도 없는데 뺨을 맞으시고 침뱉음, 무시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그 고난과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 때문에 눈물이 터져나오고 너무 감사하면서도 너무 부끄러웠고 죄송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 때문에 울다가 그 눈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는 여전히 문제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이상 길이 막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고 여기가 끝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고 내려오는데 마음에 감동이 있어서 교회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16분 장로님들을 다 모시고 그 장로님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한 분 한 분 양말을 벗겨 준비된 대야에 발을 넣어 씻겨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를 위해 무얼 못하겠나 하는 맘으로 씻겨드렸는데 세 분째 장로님 발을 잡았는데 발이 너무 고생해서 험한 발이었습니다. 그 발이 예수님 발같이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고 이렇게 고난 받으셨구나. 그 때부터 복받쳐오는 울음 때문에 쏟아지는 눈물로 장로님들을 끌어 안고 기도하며 죄송하다고 하면서 위기를 다시 한 번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여전히 교회 안에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나는 동안 제게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2018년 5월 한국에 선교대회에 참석하고 주일 예배 인도하려고 토요일 새벽에 도착해서 돌예배를 갔다가 설교준비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감당할 수가 없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설교 준비를 마치고 샤워하고 교회 가려고 옷을 입는데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숨을 쉴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감당이 안되어 침대에 다시 쓰러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일어나서 그래도 교회에 가야 한다고 하는 저를 말렸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에 교회에 전화해서 부목사님에게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그 날 오후 교회 집사님 중 의사 한 분이 오셔서 저를 진찰하시고 공황장애 인 것 같다고 무조건 3개월 이상을 쉬어야 한다고 해서 교회를 쉬고 떠난다고 하니까 장로님들이 다 허락해 주셔서 안실월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한국에 와서 부모님 댁에 있으면서 한강을 걸었는데 밤에 깜깜한 한강 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는 실패자인가요? 선대 목사님을 따라서 교회를 잘 세워야 된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 까지 따라왔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감당하려고 했는데, 교회를 사랑해서 교회를 위해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드리겠다고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교회 와서 성도님들과 함께 있기만 해도 저는 감사했는데 왜 이러는 거죠? 사람들이 왜 저를 어렵게하죠? 제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거죠?' 그러면서 성도님들이 너무 밉고 저를 자책하고 너무 두렵고 불안한 그 모든 마음들이 뒤죽박죽 한꺼번에 제 안에서 소용돌이 쳤습니다. 그 때까지도 제 인생이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국과 미국에서 두 달을 쉬고 더이상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세 달을 채우지 못하고 시드니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공황장애가 치료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드니로 돌아온 첫 주일 예배에서 열왕기 상에 나오는 엘리야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의 은혜. 갈멜산에서 850:1로 싸웠던 엘리야, 그 싸움에서 승리를 했지만 이틀 후에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위협, 협박을 했습니다. '네가 죽였던 기손 시내가에서 그 바알 선지자처럼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바알 왕이 내게 더 큰 벌을 내리길 원한다'는 협박이었습니다. 그 협박 앞에 엘리야는 두려워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먼 남쪽 유대까지 내려왔다가 광야로 들어와서 한 조그만 로뎀 나무 앞에 쓰러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 충분합니다. 이제 한만큼 했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서 데려 가세요'하며 떼를 썼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과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물을 부었던 그 제단에 고기 뿐만 아니라 물까지도 불까지도 태워 엄청난 하늘의 역사를 이루었던 엘리야였습니다. 그런 엘리야, 성공을 경험했지만 성공을 경험한 지 단 이틀 만에 협박이 들려왔을 때 더이상 나는 못하겠다고 누구와 말하는 것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내려놓고 아무도 없는 광야에 혼자 들어가서 로뎀 나무 앞에 이제 충분하니 나를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 앞에 떼를 썼습니다. 사실 엘리야는 자신이 조상들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 그 40년 광야를 지나고 우상 숭배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절대로 우상숭배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지없이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직접 데려가서 그렇게 나와 우리 집은 오직 야훼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하며 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우상 숭배에 빠졌고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 만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킬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엄청난 실망감, 자괴감에 빠집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 이스라엘 백성데 대한 실망, 이세벨의 협박 앞에 완전히 무너지면서 도망갑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그리고는 이제는 그만하겠다고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 엘리야가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대 목사님이 몸이 아프시면서 주위에서 힘들어 저를 찾아와서 장로님들, 목사님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하는 이야기들을 제가 다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로님들과 싸우지 않고 성도님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존경 받는 목사가 될 것이라고 다짐하고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교만했습니다. 담임 목사가 되자마자 기독교 월간지에서 찾아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그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너무나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았습니다. 늘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지했습니다. 사람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사람에게 잘했다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의 죄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적용질문

-어떤 일을 성공한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그 성공이 오히려 고난을 가져다 준 적이 있습니까?

-그 고난을 통해 나의 죄를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3.주님만 계시면 충분합니다.

안식월을 갖고 교회에 돌아와서 엘리야가 자신을 차라리 죽여 달라고 나는 실패자라고 외쳤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를 통해 불을 내렸는데, 내가 너의 기도에 응답했는데 너는 여기서 뭐하고 있니, 왜 이러고 있니, 너의 믿음이 그것 밖에 되지 않니, 왜 넘어져서 이렇게 약한 모습이니 라고 야단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서 어루만지시고 먹은 것이 없는 엘리야에게 물과 떡을 가져다 주시면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위로해주셨다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외쳤지만 사실은 공황장애에서 제가 치료 받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이면 강대상에 올라가기 전에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올라가기 전의 그 불안이 감당되지 않았습니다. 손에서 땀이 나고 등에서 땀이 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보이지 않게 손을 의자 밑에 집어 넣고 쥐어 짜면서 버텨야 했습니다. 평일 교회에 오면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혀오고 병원 심방 가서 성도님들의 힘든 마음을 경험하고 그 마음이 제게 유입되어지면 그것에 너무 답답하고 힘든 것이 해소가 안되니까 운저하고 오다가 차를 세우고 내려서 호흡을 고르고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교회에 나오지 못한 그 죄책감, 불안감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무릎 끓고 기도하다가 해소되지 않으니까 땅 바닥을 굴렀습니다. 나를 살려달라고... 하나님 나를 이 고통에서 건져달라고 그러지 못하면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사람들을 피해다녔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까 웃으면서 인사했습니다. 한 번은 새신자가 오셨습니다.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신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어려워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오전에 쇼핑하로 잠간 나갔다가 그 분이 보여 제가 돌아서서 숨었습니다. 못 본척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을 그 이후로 교회에서 한 번도 못뵈었습니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되고 죄책감이 들던지... 그 때 인사하고 손을 잡아드리고 따뜻하게 만났더라면 그 분이 시드니에 와서 교회에 나오셨고 구원으로 인도되실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아서 너무 후회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예배 중 말씀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가르쳐주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교회가 반토막이 나서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잖아도 힘들게 싸움 때문에 그 싸움이 싫었던 성도님들, 교회가 힘들게 하고 저를 힘들게 했던 성도님들이 다 안나오셨습니다. 예배 중에 찬양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훵 하기도 하고 잘 나오시던 성도님들이 보이지 않으면 그렇게 불안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조금 모인 것 같으면 마음에 안심이 되고 그러면서 자꾸 제가 성도님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저의 자랑이고 성도님들이 제게 많은 칭찬 받는 것이 제게 소망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예배 중에 찬양부터 설교하기 전까지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내 자신을 올려드리고 내 마음을 올려드리고 오직 하나님만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그렇게 하나님께 올려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데 노력하고 예배 드리고 찬양하는 가운데 어느날 제 안에서 이런 고백이 나왔습니다. '주님 한 분이시면 저는 충분합니다.' 그 고백은 성도님이 많은 것이 저를 만족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저의 만족이시고 주님이 저의 기쁨이십니다. 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제게 무엇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삶과 환경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제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게 진정한 기쁨과 소망은 평안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주님 당신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주님만 계시면 저는 충분합니다. 다른 것 필요없고 주님 사랑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만 계시면 됩니다. 라는 고백이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교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백이 제게서 나오는 순간 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저는 교회가 아니면, 성도가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주님이시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있으니 자유해지기 시작하고 제가 자유해지니까 교역자들이 자유해지기 시작하고 교역자들이 자유해지니까 성도님들이 감사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그렇게 힘들던 교회가 회복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백은 이제 예배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제 삶의 모든 부분에서도 고백되어집니다. 제가 무엇을 할 때, 두려움이 밀려올 때, 힘들어지며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님, 당신 한 분이시면 충분합니다. 고백하면 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왜, 주님이시면 되니까, 더이상 제게 다른 것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고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셔서 나를 책임져 주실 것이 믿어지니까... 

 

적용질문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의 인생과 자녀와 배우자를 하나님께 믿고 맡길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무엇까지 믿고 맡길 수 있습니까?

-자녀의 문제를, 남편의 문제를, 아내의 문제를 맡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생물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새만 하나님께 불평했답니다. 그 이유는 가느다란 약한 힘이 없는 다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새에게 하나님은 자기 몸뚱이 보다 더 큰 날개를 두 개나 등에다 얹혀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새가 더 화를 냈습니다. 다리도 형편 없는데 몸뚱이 보다 더 큰 짐 두 개를 등 위에 얹혀주시니 이제는 아예 나를 죽이려고 하시는 거냐며 더 화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등에 얹혀진 날개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날개에 힘이 들어가고 어떻게 날개를 쓰는지 방법을 알게 되니까 점점 다리를 사용하지않고 날개를 펴서 하늘을 날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단숨에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상의 어떤 짐승들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자유로운 새가 불평이 찬양으로 변하고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너무 감격해서 아침 일찍 어떤 짐승보다 일찍 일어나 아름다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이야기 입니다.

혹시 여러분 등에 하나님이 무거운 날개를 붙여주셨습니까? 그런데 그게 너무 버겁고 무겁다고 못살겠다고 못하겠다고 하셨나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복이라는 것을 몰라 이 남편이, 이 아내가, 이 자녀가, 이 일이 고난이 라고 생각될 때 그 고난 때문에 내 죄가 깨달아지고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십자가를 통해 나의 모든 죄가 용서 받고 내 영혼이 자유되어져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질 때 우리가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게 될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서 자신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의 억압 가운데 눌려 살지만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날개를 펴며 자유인으로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무거운 날개가 있습니까? 그 날개가 여러분을 날게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겨드려서 지금 어렵고 힘들다 할 지라도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여전히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시다는 믿음 가운데 용기를 갖고 일어나 하나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을 통해 높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그래서 하늘의 삶을 누리며 이 땅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