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 때문에(김양재 목사님)
열왕기하 19:20-28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우리 인생에 주제가가 여럿 있는데 제일 자주 부르는 노래 중 하나는 '너 때문에 못 살겠어'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그 일 때문에 살 수 없을 때가 참 많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산헤립이 딱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며 역사에 남을 개혁을 했는데 그냥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다 망쳐놓았습니다. 적어도 성으로 둘러싸인 46개 성읍을 다 빼앗고 예루살렘 성읍 하나만 달랑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위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이 말씀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산헤립 때문에 힘들 때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오늘 위기 상황에 기도를 하겠습니다.
산헤립 때문에 기도해야 할 이유는
1.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지난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무서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이사야 선지자가 보낸 사람이 도착합니다.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드린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지체없이 즉각 응답하신 것입니다.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고 하십니다.
히스기야에게 산헤립은 반복해서 조롱하고 위협하는 문제입니다. 생각만해도 무서운 존재 너무너무 싫은 존재입니다. 이런 힘든 사람, 어려운 문제와 상황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절망합니다. 산헤립같은 좌우 이념 때문에, 산헤립 같은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형제 자매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직장 상사, 부하, 동료 때문에 출근하기가 싫습니다. 선생님, 학생, 친구 때문에 학교 그만두고 싶습니다. 산헤립 같은 질병 때문에, 시험 때문에, 경쟁사 때문에 죽고 싶습니다. 우리가 멈추고 싶고, 떠나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죽고 싶은 온갖 이유, 각양각색의 '때문에'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산헤립들 때문에 우리 맘대로 저지른 일들은 또 다른 때문에로 이어집니다. 힘든 배우자 때문에 이혼하면 잠깐 행복하겠지만 이내 다시 그 이혼 때문에 후회하고 힘들고 분해서 살 수 없다고 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내 고집대로 멈추거나 계속하거나 그만두거나 시작하거나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한 일들은 방황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산헤립 때문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산헤립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들으십니다. 특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아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떨리는 사건을 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떨린다고 기도하면 됩니다. 말씀을 보고 큐티할 때 우리의 문제를 보면서 주님! 너무 무섭고 떨리니 이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우리가 너 때문에, 그것 때문에 당하는 모든 고난은 불평하고 화내고 억울해하고 서러워 할 이유가 아니고 이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 기도할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 40편에서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히스기야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내용상 앗수르 산헤립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꾸짖고 비방하고 소리 높여 눈을 높이 뜨지만 이제 예수살렘이 거꾸로 산헤립을 멸시하고 비웃고 머리를 흔들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멸시할 것이며, 비웃을 것이며, 흔들 것이라고 하시지 않고 멸시했으며 비웃었으며 흔들었느니라고 이미 끝난 일처럼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선지적 완료시제 라고 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처럼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일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산헤립이 꾸짖고 비방하고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뜬 대상은 단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 강한 자가 믿는 나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여기십니다. 신약에서도 교회를 박해하는 사울에게 주님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교회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시지 않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십니다. 목장에서 목원이 누구누구가 누구한테 당했다고 이러면 여러분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박해합니까'하지말고 '어찌하여 나를 박해합니까' 이렇게 물어보시면 안될까요? '목자인 내가 그렇게 형편 없어서 아직도 부부 싸움을 하고 시어머니에게 그리고 부모자식 간에 그러고 싸워요~ 어찌하여 나를 박해해요' 이렇게요. 이해가 되시죠? 목자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나 때문이다 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은 우리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산헤립이 지금 우리를 무시하고 위협하고 조롱하고 괴롭힌다고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산헤립도 우리 주님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택자 편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잘나서 그런게 아닙니다. 주님이 자기 생명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변치않는 사랑으로 택하여 구원하셨기에 주님은 늘 내 곁을 지키십니다. 산헤립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산헤립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더욱 간절히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영원히 내 편이신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주님은 네가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이 땅에 다 남편도 남의 편입니다. 남편, 특히 남의 편입니다. 그러니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안 믿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은 정말 여러분의 삶의 결론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31년을 그렇게 정직하게 일을 했는데 횡령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느날부터 한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한 것입니다. 너무 성실하고 정직해서 식구보다 더 믿었는데 그랬답니다. 누굴 믿겠습니까? 믿음의 대상이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믿는 사람도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을 놓고 옳고 그름으로 따지지 마셔야 합니다.
한 목자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도 세 자녀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서 들어가는 돈이 너무 크다고 생각되니 늘 통잔 잔고에 연연하며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는 것같고 바닥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같은 위협과 두려움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고 벌벌 떠는 저의 모습이 회개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분은 통장 잔고가 산헤립이네요. 내가 목자한다고 돈이 그렇게 많이 벌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에서 구해주신 것만도 너무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오래 다니셨지만 왜 이렇게 두려운 것인가 하면 세상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서 그런 것입니다. 한 뼘밖에 안되는 이세상인데요. 그래도 20년 살아오셨잖아요. 그래서 그 세속사로 내가 통잔 잔고가 없어서 남보다 못해서 조롱거리가 된다는 그 마음 때문에 잔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마음을 주님께서 다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유다는 죽기까지 말이 없습니다. 조롱거리가 되는 것에 토달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며느리와 동침을 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회개한 사람은 영원토록 우리를 전도합니다. 그에게서 예수님이 오셨지 않습니까? 우리들교회에는 좋은 직장을 정년퇴직하고도 청소부도 하시고 경비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를 살아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하라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나를 멸시했으며, 비웃었으며, 흔들고 있는 산헤립같은 사건과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래서 슬퍼합니까, 분노합니까, 원망합니까, 절망합니까?
-산헤립 때문에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시므로 이번 주 THINK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와서 산헤립 때문에 간절히 기도하겠습니까?
기도제목 드립니다.
나를 멸시하고 비웃고 흔들고 있는 나의 산헤립 때문에 기도하십시다.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시니 주여! 우리가 산헤립 때문에, 산헤립같은 좌우 이념 때문에, 산헤립같은 배우자 자녀 식구들 때문에, 직장 상사 부하 때문에 선생님, 학교 친구 때문에 질병 때문에 시험 때문에 경쟁사 때문에 멈추고 싶고 떠나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죽고 싶은 온갖 이유 때문에, 그래서 슬퍼하고 비웃고 분노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주여! 외치고 기도합니다.
2.산헤립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산헤립이 하나님을 비방하며 한 말을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위 두 절에서 제일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나'입니다. 4번이나 나오고 원어로는 6번이나 나옵니다. 산헤립의 관심사는 온통 자기자신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많은 병거를 자랑하고 산꼭대기처럼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세상 어디든 가장 먼 곳까지도 갈 수 있다고 뽐냅니다. 게다가 자신이 땅을 파서 물을 얻을 수도 강물을 말릴 수도 있는 마치 하나님같은 존재라며 자기힘으로 했다고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산헤립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가장 높은 자리에 높입니다.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게 여기는 교만 중의 교만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런 산헤립의 교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려고 하는게 아닌데 우리는 저절로, 자연발생적으로 내가 했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자기 관점에서 보면 모두 내가 한 것이 맞습니다. 내가 부모님 모시고, 내가 얼마나 일을 하고, 내가 얼마나 희생을 하고... 그리고 많은 것, 높은 것 좋아합니다. 그것도 교만해지고 싶어서 교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교만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교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산헤립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과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산헤립을 보면서 그것이 내 자신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난히 나를 너무 미워하는 그 사람에게 내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찌르는 산헤립의 교만은 곧 내 자신의 교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산헤립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잘나가던 산헤립에게는 들어본적이 없는 말씀입니다. 듣지도 못했던 말씀이기에 충격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주인공이었다고 하시니 놀랐습니다. 자기가 행하고 정하고 이룬 세계정복 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행하셨고 옛날부터 정하셨고 이제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자신이 멸망시키고 파괴한 승리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세상을 움직이는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움직이고 계셨다는 겁니다. 당시 세상을 지배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사야10:5-6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밝히십니다. 5앗수르 사람은...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6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하나님은 산헤립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경건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반역하는 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해 산헤립을 진노의 막대기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산헤립을 강하게 하시고 그에게 승리를 주시고 권력을 주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까 어떻게 산헤립같은 인간이 저렇게 될 수 있지? 어떻게 산헤립같은 인간이 나를 괴롭힐 수가 있어? 하며 분노하고 억울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저런 대단해 보이는 산헤립도 내가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무엇을 위한 도구입니까? 산헤립같은 내 교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그래서 돌이켜 살아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겁니다.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멸망당해야 할 세상이지만 누가 멸망시켰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이 세상을 멸망시킨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아무리 경제계를 석권하고 학계를 석권해도 하나님 없이 이긴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떨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산헤립 때문에 내가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외칠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내 구원 때문에 산헤립이 수고한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산헤립같은 사람이나 사건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인생이냐 아니야 이것이 최고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 구원 때문에 산헤립같은 남편이 수고하고 자녀가 수고하고 아내가 수고하고 시어머니가 수고하고 사장이 수고하고 다 수고합니다.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헤립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산헤립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산헤립같이 교만하고 포악학 사람까지라도 도구로 사용하셔서 나를 돌이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산헤립이 아니라 내게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특별 새벽기도회가 이런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전부 내가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산헤립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특별히 구속사적으로 큐티를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이기고 이기는 중에 속이려는 기브온 족속에게 딱 속았습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서야 속은 줄 알았습니다. 여리고에 승리하니까 도취되어 말씀 앞에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속은 자가 더 나쁘다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 주 우리나라 역사에 너무너무 중요한 선거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편을 들어주시지만 우리도 하나님 편에 서서 투표해야합니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뜻을 알면 어떤 일도 해석이 됩니다. 링컨을 전부 찬성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못살던 나라가 예수가 들어와서 세계 6위까지 되니 믿는 사람도 하나님께 묻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만년 역사에 이런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셨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믿는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선거입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서야 속은 줄 알면 안됩니다. 말씀 앞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번 기도회를 통해 우리 각자 산헤립처럼 힘든 일들이 다 해석되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가 되고 우리 나라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적용질문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산헤립도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됩니까?
-산헤립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내 구원 때문에 우리 가족의 구원 때문에 우리나라의 구원 때문에 수고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기도제목
늘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생색을 내지 않게 해달라고...
산헤립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임을 알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산헤립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이번 대선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대선이 되게 해달라고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3.산헤립의 악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하나님이 산헤립을 심판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높음을 자랑하던 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앗수르에 의해서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거기 살던 백성은 내 힘이 이렇게 약했다니 하고 두려워하며 놀랐습니다. 마음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기 집에서 제일 잘났다고 자랑하다가 앗수르에 망하고 나니까 자기 실체를 직면한 것입니다. 그만큼 앗수르가 무서운 것입니다. 거기에 가기만 하면 다 지는 겁니다. 하지만 심판 당한 그들보다 심판의 도구가 된 앗수르의 악이 훨씬 더 커지는 겁니다. 앗수르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분수를 지켰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도취에 빠져 자기가 주연인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정복한 나라들을 아주 잔인하게 다뤘습니다. 들의 채소와 푸른 풀처럼, 지붕 위의 잡초처럼,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처럼 짓밟아 버렸습니다. 이런 절대 권력에게 누가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랬다간 전부 잡초처럼 될텐데 말이죠. 그러니 점점 더 오만해지고 뻔뻔해지며 아무렇지도 않게 더 큰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의 평범성입니다.
그런데 이 교만한 산헤립도 피할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이렇게 산헤립이 교만한 것을 내가 가슴을 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답니다.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산헤립의 출입과 거처와 분노를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합니다. 거처는 존재를 말합니다. 산헤립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출입은 행위를 가리킵니다. 산헤립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는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분노, 즉 하나님을 반역하는 불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잘난 산헤립도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이를 갈며 분노할 수밖에 없는 흉악한 죄인인 것입니다.
전세계 대통령이 잘나서 대통령이 되었다고 죄가 없는 게 아닙니다.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시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세상이 못 알아 들으니 우리는 좁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만이 구원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하나님은 산헤립에 대해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아시는 게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전부 아십니다. 산헤립의 처음은 물론 그 마지막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전부다 알고계십니다. 산헤립이 하나님을 향해 품은 분노와 교만한 말이 하나님 귀에 들렸다고 하십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말, 속삭임, 심지어 마음의 생각까지라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하나님 귀에 들립니다. 너무 두려우신가요, 그까짓거 괜찮아요 하시나요?
이렇게 높고 높은 자리에 올라 자기에게 도취되어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자기가 세상의 왕인 것처럼 행세하는 산헤립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28 ...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산헤립이 세상 모든 나라와 유다의 코를 꿰었던 그 갈고리를 하나님께서 산헤립 코에 꿰어서 또 산헤립이 그들에게 물렸던 재갈을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물리셔서 그리고는 그대로 그를 끌어서 그가 왔던 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죄악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신다는 뜻이 아니고요 그가 왔던 그 죄악의 길로 도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과 멸망을 뜻하는 겁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십니다. 도덕과 행위의 죄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살인, 음란의 죄보다 가장 무서운 죄는 예수 믿지 않는 죄인 것입니다. 저 죄 때문에 나는 전도를 못해 하는 말은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런 죄가 있는 사람들이 더 빨리 예수 믿습니다. 산헤립이 하나님의 도구인 줄 알고 겸손하게 제 역할만 했다면 좋았을텐데 권력에 도취되어서 제멋대로 교만하게 행하니까 돌이킬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입니다. 금그릇들이 돌아오기가 아주 어렵잖아요.
우리는 저마다의 산헤립 때문에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산헤립의 악을 반드시 갚으십니다. 지금은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산헤립 같은 악인이 이기고 잘되는 거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반드시 손보십니다. 왜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악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지금 이순간 우리도 누군가에게 산헤립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에게, 지체에게 친구와 이웃에게 우리가 산헤립인 부분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드러났건 드러나지 않았건 우리 안에 있는 산헤립같은 악을 주님께서 다 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산헤립 때문에 산헤립을 탓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산헤립 같은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헤립 처럼 왔던 죄악의 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산헤립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나오는 것을 하나님은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산헤립 같은 고난 때문에 낙심될 때 하나님 편에 서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겁니다.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우리가 산헤립 때문에 산헤립 같은 우리 자신의 악을 회개하며 주께 돌아오는 것, 산헤립을 물리쳐 주시옵소서가 아니고 산헤립이 제게 있어요 주여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우리가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마음은 잘보고 잘듣게합니다. 고난 처럼 기도를 간절하게 하는 힘이 없습니다.
히스기야의 고난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아버지 아하스의 악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난이었고 전대미문의 개혁을 하느라고 너무 힘이 들었는데 상은커녕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놀라가지고 금,은,성전의 기물까지 다 뺏겨 뇌물을 주었습니다. 주고나서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했겠습니까. 그 연약함 때문에 고난이었을 것이고 그런데 성전의 금,은, 기물을 다 주었는데 엄청난 대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는 왜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이런 고난이 오나? 생각할 법 하잖아요. 이런 고난을 있는 모습 그대로 직시하고 자기 속의 산헤립을 깨닫는 것이 기도의 태도인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안 믿어, 이러니까 교회를 떠나겠어 한 적은 진짜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훈련되어서 온통 하나님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왜죠? 모든 때는 목적이 있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만이 악한 자의 악을 아시며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스스로 계신 자, 여호와입니다. 모든 고통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시간과 공간에 순종해야 하는 그 작은 일에 순종하면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엄청난 선물을 주십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즉 암이 걸려도 시한부 인생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기에 자유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죽는다는 시간에 자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암에 순종하게 됩니다. 집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산헤립의 악을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우리 나라를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들교회 협동 목사님이신 황성주 박사님 칼럼을 읽었습니다. 영국은 명목상 60%가 기독교인 이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9%미만입니다. 지금 영적인 폐허 속에서 무신론의 온상이 되었고 3백만이 넘는 이슬람의 확장으로 휘청이고 정치 부패, 경제 위기, 성도의 급격한 감소 등으로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세계에서 몰려온 이민자 교회들의 기도와 간구로 겨우겨우 교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한국을 방문한 나이지리아의 에녹 아데보레 목사님은 세계 최대 교회 목사인데 그가 담임하는 Redeemed Christian Church of God은 라보스에 있는 초교파 교회로 성도 수가 9,980,000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단일 교회로서 수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세계 1위 선교 교회인데 거룩과 추수를 목표로 모든 성도를 거룩하게 하고 전세계 모든 도시에 5분 거리마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영혼 구원에 전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이지리아는 가장 열악한 환경을 가진 국가입니다. 평균 수명이 52.7세로 세계에서 꼴찌에서 2번 째입니다. 그런데 2억 3천만 인구 중 51%가 기독교인이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7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 10대 교회 중 8개가 나이지리아에 있을 정도입니다. 7-80년대 우리나라의 부흥을 연상하시는데 옛말이 되었습니다. 물론 나이지리아도 아주 고질적인 가난과 부패가 최대의 난제입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인 나라입니다. 정치만 제대로 하면 못 살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60년대 부터 뇌물 수수와 횡령이 공공연하고 4천억 달러에 달하는 원유 판매 대금이 부패한 관리들의 손에 넘어가 국가 전반에 거대한 검은 고리를 형성해서 이 악순환을 풀자가 없다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교회 공동체의 기도와 간구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핵폭탄급 기도가 매주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기도가 나이지리아 전역에 퍼졌고 그 결과 그 가난한 나라에서 전세계를 뒤흔드는 전무후무한 부흥이 일어나서 그 한 교회가 전세계 200여개 국에 5만개 지교회를 갖고 때 있다는 겁니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의 응답을 이뤄내실 줄 믿습니다. 나라의 문제가 심각할지라도, 믿는 성도가 소수일지라도 각자의 산헤립 때문에 하는 우리의 기도가 반드시 들어 응답될 줄 믿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여기도 가난하니 전무후무한 부흥이 일어났는데 우리도 그랬습니다. 가난할 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묻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소수에 속해 외롭더라도 구속사로 한 사람이 일당 천을 하면서 곳곳에 사명자로 서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 내가 산헤립이 되어 남을 짓밟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산헤립 같은 악은 무엇입니까?
-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하나님이 앗수르가 나를 훼방하는 그 말을 다 들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 속삭임 심지어 마음의 생각까지라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다 하나님 귀에 들린다니까 주님! 하나님 귀에 들리는 생각과 말이 거룩하게 도와주세요. 위정자를 뽑습니다. 산헤립이 아니라 히스기야 같은 분이 뽑히게 도와주세요. 성도는 중립적인 분을 뽑는게 아니고 1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가까운 분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1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쪽에 가까운 분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나왔을 때는 하나님의 도구인 것을 알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지금부터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싸우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되면 목을 놓아 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잖아요. 하나님 내 편이잖아요. 하나님은 다 아시고 보시고 들으시고 통치하시고 그 하나님께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회개함으로. 나의 회개를 지금 기다리시는 겁니다. 누가 이편이 되고 저편이 되는 것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의인 10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구해주신다고 하십니다.그 의인 10명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나 한 사람의 진정한 기도가 우리 나라를 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다 같이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산헤립 때문에 기도해야 될 이유는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왜죠? 산헤립도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산헤립의 악을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