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원하옵소서(김양재 목사님)
제목 :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본문 : 열왕기하 19:8-19
설교 : 김 양재 담임목사님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오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가 점점 더 깊은 이제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요. 사흘 전 복지 차관이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가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제 우리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졌어요. 이런 때에 택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히스기야처럼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간절히 외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 히스기야의 유명한 기도죠. 제목을 다르게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이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옵소서의 기도는
1.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 때문입니다.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지난주 6절부터 7절까지 보면 단 두 차례 연설로 예루살렘 백성 모두를 제압한 랍사게로 인해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성전으로 들어가서 대신들 역시 굵은 베를 두르게 해서 이사야에게로 보냈어요, 왜 보냈을까요? 대신들이 협상의 달인이라서 보냈을까요? 이 사람들이 기도 대장에 가서 보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넘어질 일이 많지만 다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말씀으로 꾸짖음을 받고 처방 받고자 보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랬더니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말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로 두려워하지 말라 그를 거짓 유혹의 소문으로 칼에 죽게 하리라고 이제 구체적으로 처방을 해 주셨어요. 말씀 들으러 보냈으니까 이 말씀 들었잖아요.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죠. 우리가 말씀이 없으면 환경만 붙잡고 울며불며 기도한다고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요즘 예레미야 큐티를 하는데요. 계속 경고하시잖아요. 경고하시고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고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없으면 그냥 환경만 붙잡고 울며불며 기도한다고 기도 시간을 그렇게 쓰는데 이 예레미야가 그때 전쟁 이제 일어나는 중에 이걸 쓴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경고를 하시면서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구절마다 나옵니다. 하루 본문에 11번이 나오고 14번이 나오고 그러니까 기도는 절대 말씀 붙잡고 하라는 거예요.
랍사게가 돌아가다 앗수르 왕을 만나고 그 왕이 또 듣고 하는 것들이 소문에 의한 것임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게 좀 있어요. 소문으로 망하게 하겠다고 그러셨으니까 그때 산헤립 왕이 립나의 반란을 진압하는 중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앗수르의 목표는 예루살렘만이 아니에요. 그 일대 전체를 다 점령하고 나아가 애굽까지 정복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서 예루살렘 근처 도시인 라기스에 머물고 기다린 적이 있어요. 그때 앗수르 왕에게 소문이 들려요. 당시 애굽까지 통치하던 남쪽 구스의 왕 디르하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에요. 그러니까 산헤립이 들은 것은 애굽이 먼저 공격해 왔다는 소식이었어요. 아무리 천하무적 앗수르 군대라 해도 강국인 애굽과 싸우려면 긴장해서 대비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아직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한 거예요. 그 당시 앗수르는 적어도 성으로 둘러싸인 유다의 46개 성읍을 다 파괴하고 정복하고 빼앗았다고 해요. 그래서 유다는 예루살렘 성읍 하나만 남은 아주 위기 상황인데 산헤립 편에서 보면 다 이긴 싸움인데 마지막 예루살렘 하나가 아직 달랑달랑 나와서 안 넘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예루살렘을 보위하고 있는 병력을 빨리 빼서 애굽군과 싸워야 되는 거예요. 마음이 급해요.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고 앗수르 왕 산헤립은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는 거예요.
10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산헤립이 이번에는 편지를 보냈어요. 먼저 번에는 랍사게를 통해 말로 전했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글로 전합니다. 말을 들을 때는 엄청난 일도 지나면 금세 잊어집니다. 말은 순간이잖아요. 근데 요새야 녹음 녹화 다 할 수 있지만 사실 말 자체는 담아둘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그러면 언제든 볼 수 있게 남기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에는 좋은 말 많이 한 사람보다는 좋은 글 많이 쓴 사람이 남더라고요. 저도 QT를 날마다 쓰면서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날마다 QT 노트로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때 눈티 귀티만 했다면 남아 있는 게 없었을 거예요, 여러분들은 차에서 큐티 듣고 귀티 했다 그러시면 안 돼요. 반드시 본문을 놓고 이렇게 써가면서 하셔야 돼요. 여러분들이 큐티를 못해도 남이 하는 것이라도 쓰면서 좀 해야지 귀에 남아요. 꼭 쓰면서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편지의 내용이 나쁜 내용이면 더 괴로워요. 위협과 조롱의 말을 듣는 게 힘들지만은 그 순간 지나면 사라지지만은 편지로 딱 써서 주면은 버리지만 않으면 죽을 때까지 오는 거죠. 근데 편지에 제일 먼저 쓴 내용이 뭐예요?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넘기지 않겠다고 하는 걸 너희들이 믿는 모양인데, 믿지 마 속지 마. 원어를 직역하면 하나님이 속이게 하지 말아 그거 다 사기야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랍사게를 통해 말로 할 때는 히스기야가 속이게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히스기야를 욕했어요. 근데 이제는 하나님을 사기꾼 취급한 거예요. 산헤립이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생각과 가치관과 선택의 근간을 그냥 엄청 조롱하고 비웃는 거예요. 조롱이 다가 아니에요 위협도 있어요.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지금까지 앗수르가 직면한 왕들을 또 민족들을 열거하면서요. 가슴에 줄줄이 한 훈장을 자랑하는 거예요. 유다보다 훨씬 강한 나라들도 다 앗수르 에게 멸망당했는데 니까짓 게 어떻게 구원을 얻겠냐 그들도 다 저마다 신이 있어. 근데 그 신들이 건져주지 못했어. 그래서 망한 나라 왕들 찾을 수 있어. 그래서 그 나라마다 다 섞어놨기 때문에 저 사마리아의 혼혈인들만 남게 된 거 보라는 거예요. 근데 이미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이 잔인한 앗수르에 의해 망했잖아요. 그걸 유다가 다 봤어요. 유다인들이. 그런데 말로만 듣던 것 하고 내 눈 앞에서 그 잔인하게 죽어가고 포로로 끌려간 걸 본 사람은 이거는 상상이 안 되는 어려움이 그 남유다의 두려움은 지금 그게 다 됐어요. 후에 그 혼혈족이 된 사마리아는 예수님 당시까지도 너무너무 무시 받는 민족이 되어 있었어요. 하여튼 혼혈족을 무시해요. 현실이 이런데 일단 네가 감히 이 대 앗수르에게 맞서려고 해 이래도 항복 안 하고 버틸 거냐 이렇게 위협을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무리 힘든 문제를 가지고 왔어도 이것보다 더 힘들겠습니까? 나는 내 문제만 가지고 온 건데 지금 이 나라가 없어지는 위기 상황이잖아요. 이것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입니다. 같은 조롱과 위협이 계속 반복되고요. 반복될수록 점점 더 커집니다. 말로만 들리던 조롱과 위협이 글로 박제가 되어서 날아와요. 피하고 도망해도 소용이 없어요. 자기가 어머니처럼 붙어서 쫓아오는 거예요. 가정 안에서도 가정 밖에서도 우리 속을 긁어놓고 뒤집어 놓는 조롱과 위협의 사건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근데 바로 이렇게 힘든 상황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돼요?성경을 보니까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 기도하라잖아요. 그렇죠. 성경은 답을 줘요. 힘들지 않으면 구원이 왜 필요하겠어요? 이미 구원된 상태인데 바랄 구원이 뭐가 있겠어요?구원이 필요 없으면 하나님도 찾지 않아요. 찾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찾아오셔도 무시해요.그러면 그것이 축복입니까? 잠깐 행복하다가 영원히 고통을 당할 텐데 어떻게 축복이겠어요?우리 삶이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으로 가득하기에 그 조롱과 위협이 갈수록 심해지기에 우리가 구원을 필요로 하고요. 구원하실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따라서 우리가 오늘 당하는 조롱과 위협의 사건은 절망할 이유가 아니에요. 그런 고난은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에 기도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 적 용 질 문 >
= 어떤 조롱과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까? 반복적으로 점점 더 심하게 당해서 절망합니까?
= 구원에 더욱 간절해집니까? 언제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눔을 이렇게 하는데 이제 남자들이 듣기 싫은 말이 아내가 약을 더 늘려보는 게 어때?설교 시간에 아내가 저건 네 얘기야 또 이렇게 반대되는 의견을 하면 너나 잘해 그리고 애들 좀 그만 야단쳐.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해도 오늘 전혀 유다라 이스라엘 하는 것처럼 예쁜 말로 이렇게 이제 듣기 싫어하는 얘기는 이제 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저거 네 얘기야 이러시면 돼요. 저 얘기는 나도 그렇고 당신 얘기 아닐까 그래야지 네 얘기하고 남편한테 네 얘기하고 남편한테 얻다 대고 네 얘기하라 절대로요. 이 질서가 있잖아. 여자는 남편에게 그렇게 너 이딴 일 있으시면 안 돼요. 애들이 보고 배우는 게 진짜 없어요. 정말 나이가 어려도 남편한테는 꼭 당신 이라고 호칭을 그렇게 예쁘게 써주세요. 그래 이거 다 그냥 말만 너나 잘해 그런 얘기를 한다고 그래도 당신이나 잘하세요. 이렇게라도 써봐라. 너나 잘해가고 너나 이거 그대로 지금 생으로 다 적은 거예요. 얼마 남편한테 그렇게 너 그냥 딴 얘기 좀 하지 마라. 반말 좀 찍찍거리고 하지 마라. 진짜 앞길이 깜깜해 그러면 뭐 친근감이 없어 친근감 좋아지는데 우리 연애할 때 나 이제 그러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여보 당신 꼭 쓰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 기도는 첫째 이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 때문이에요. 서울대학을 들어가도 이런 원리를 몰라 교회를 이렇게 그러니까 너무 힘들게 살은 어떤 엄마가 아이를 서울대학에 보냈는데 그렇게 스토커한테 지금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을 당하고 있는데 그래서 학교를 못 간다는 것 그런 걸 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되는데 그러니까 날마다 이렇게 어디 남자가 쫓아와서 그렇다는데 그런데 우리들 교회 들어오지 않으면 그걸 굉장히 죄 없이 여기는 거예요. 아니 거기까지 서울대학까지 간다고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그래서 너무 쉬운 거를 그렇게 못하는 게 있더라고요.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은 가만히 있다가도 딸이 어떤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렇게 학교를 안 보내고 이러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수많은 글을 받아보았을 텐데요. 아마 이 앗수르왕의 편지가 가장 무겁고 무서운 글이었을 거예요. 너무너무 수치스럽고 분하고 두려웠을 거예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잖아요. 편지 들고 있기도 너무 힘들고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데 히스기야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건 답이 아니에요. 내 힘든 삶에서 포기하고 절망하고 떠나고 사라지고 이혼하고 죽고 이런 것들은 절대로 그 해결책이 될 수가 없어요. 온 집안을 내려가면서 더 큰 조롱과 위협이 반복될 뿐이에요. 나무 십자가 피하면 뭐가 온다고요? 철 십자가가 온다고 했어요. 히스기야는 주저앉는 대신에 성전으로 지금 또 올라가죠. 그죠? 왜죠? 이미 이사야에게 말씀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옷을 찢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말씀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올라갔어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 무거운 편지 쳐다보기도 싫은 편지, 당장이라도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은 편지를 어디에 놓습니까? 여호와 앞에 펴서 놓습니다. 하나님께 다 보여드리는 거예요. 수치스럽고 분하고 두려운 것들을 모두 펴서 하나님께 맡기는 거예요. 이 성전에 와서 목장 예배처럼 다 터놓고 말씀으로 해석 받으며 그래서 그 말씀 가지고 여호와 앞에서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응답받는 것은 내 환경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큐티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응답인 줄 몰라요. 말씀을 붙잡으니까 옷을 찢지도 않고 기도하잖아요. 그래서 말씀을 붙잡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 요즘에 예레미야 계속 말씀 얘기 나와요. 예레미야 30장 17절에 나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주리라. 30장 11절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음,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너를 고쳐 주리라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근데 이 끝에 뭐가 있어요?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오. 결코 무지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이게 하나 붙었잖아요.고쳐 주리라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까지는 거짓 선지자 참 선지자가 다 비슷하게 말해요.그러나 고쳐주지만 멸망시키지 않겠지만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다음 말은 그러나 택자는 법에 따라 징계하시고 결코 무지한 자로 여기지는 아니하겠다고 토를 다시잖아요. 그죠. 끝까지 택자인 나를 값을 치러서 고치시길 원하신다는 거예요. 위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위로만 하는 것이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돼요. 그런데 거짓 선지자 등은 예레미야가 포로로 가서 집 짓고 살아야 한다고 하니까 아니라고 우리는 언제나 고쳐주고 우리는 택자니까 언젠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바벨론에서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저렇게 가서 포로로 간다고 하는 예레미야를 책망하라, 책망하라 이러잖아요. 그죠. 근데 이 거짓 선지자들은 그렇게 말을 하니까 예레미야 29장에 23절에 보면 정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고 거짓을 내 힘으로 말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다. 그러니까 29장 32절에 그 스마야의 자손을 벌하리. 지금은 안 나타나는 것 같아도 그런 거짓 예언을 하면 스마야 자손을 벌하리니, 이 백성 중에 살아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하나님이 행하려는 복된 일을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러잖아요. 그죠 말씀 붙잡는 게 이런 거예요. 오늘 큐티 말씀도 예레미야 31장 15절에 쭉 전체를 보면 오늘의 주제가 라엘의 통곡이 있고 에브라임의 탄식이 있어요. 다윗도 연약하잖아요. 그러니까 멍에 익숙하지 못해서 징벌을 내렸다고 하시죠. 라엘과 에브라임이 전부 다 요셉 후손이잖아요. 그게 이게 구속사인 거예요. 구속사 왜 라엘이 통곡하냐 근데 그게 멍에 익숙하지 못해서 이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사니까 그래도 주님은 깊이 생각하시고 창자가 끊어지도록 불쌍히 여기리라 하시잖아요. 그러면 밤잠을 자고 깨어서 아비가 포도를 먹었다고 내 이가 시다고 남 탓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말씀이 깨달아지는 비결은 탓을 하지 않는 거예요. 탓을 하지 않으면 말씀이 깨달아져요. 근데 탓하고 앉아 있으면 말씀이 안 깨달아져요, 죽자 사자 성경 공부하고 열심히 하고 큐티를 해도 깨달아지지 그러니까 이게 학벌하고 전혀 상관이 없어요. 이것이 이정표가 되는 삶이에요. 여러분 이번 주간에 이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눈이 많은 제사장 시대에 그냥 거짓 선지자처럼 나만의 사생활이 필요하다고 우리 너무 강조하지 마세요. 모든 건 일원론이에요. 물론 경건주의는 아니에요. 그러나 거짓 선지자처럼 죄만 짓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은 창조 질서를 넘는 막는 악법이에요. 낙태의 동성애 이면은 생명이 끊어지는 거잖아요. 그거는 나만의 사생활 보호가 아니에요. 우리를 구원하옵소서가 절로 나오는 거예요.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상대방이 아무리 아들이라도 있는 우리는 법과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믿는 우리는 법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부터 시드기야까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모두 42명의 임금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이렇게 명시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기록된 왕이 몇 명일까요? 단 3명이에요.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근데 이제 역대기까지 포함하면 므낫세 한 명이 더 있어요. 그 가장 악한 왕이 회개하고 기도했으니까 바로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다른 왕들에게 어려움이 없었습니까? 아니죠.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나라가 망할 뻔 한 적도 있고 직접 멸망을 겪은 왕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한 왕은 단 이제 열왕기의 3명이란 말이죠. 기도라는 말은 너무 익숙하고 기도해야 하는 건 다 알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 이렇게 드물어요. 왕 같은 사람은 더욱더 안 해요. 가진 게 많으니까. 동성애자들 중에 부자가 많고 굉장히 스펙이 좋은 것입니다. 왜냐 가진 게 있으니까 그 쾌락을 못 끊어요. 록 허더슨이 엄청난 미남이에요. 우리 시대는 자이언트 이런 데 이렇게 나왔던 유명한 무기여 잘 있거라 라고 이런 너무 잘생겼어요. 그 사람 너무 가난했었는데 1960년대부터 70년대부터 그렇게 동성애를 평생 못 끊었다는 거 왜냐하면 그 쾌락을 뒷받침해 줄 돈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왕 같은 사람일수록 더 기도 안 해요. 왜 그럴까요? 기도를 받으시는 그 유일한 대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이 죄라고 했는데 회개가 안 돼요. 그래서 누구에게 기도하느냐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그룹은 하나님 곁에 있는 천사예요. 세상 왕이 왕좌에 좌정한다면 하나님은 하늘 위 천사들 위에 좌정하신다는 거예요. 진짜 왕의 영광과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말인데요. 이렇게 높으신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시라는 고백이자 기도예요.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고백합니까? 천하만국의 홀로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고 하는 거예요. 온 우주에 하나뿐인 하나님 그야말로 원 탑이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우리가 믿고 무릎을 꿇을 존재는 엄청난 군대를 끌고 와 우리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그 산헤립 같은 사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뿐인 거예요.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산헤립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들으라 하시고 구하라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들으소서 보시옵소서 들으시옵소서 하나님 들은 대로 기도합니다. 그냥 듣는 게 아니고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그냥 보는 게 아니고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너무너무 간절한 기도예요. 나는 차마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이 어마어마한 시련을 이 기가 막힌 사연을 조롱과 위협이 가득한 이 편지를 그 앞에 여호와여, 여호와여 부르잖아요. 그죠? 제발 좀 직접 들으시고 직접 보시옵소서 하면서 부르짖는 거예요. 이 위협은 나만을 향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것도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비방이니까 주님의 귀로 들어보시고 주님의 눈으로 봐주시라는 거예요.
여호와여,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원수가 우리를 괴롭히면 이렇게 기도하시라고요. 저 높은 곳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에요. 높으신 하나님은 또한 살아 계신 하나님이에요.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 귀로 우리의 사정도 들으시고 말도 들으시고 신음도 들으시고, 생각과 감정까지도 심지어 우리의 무의식의 소리까지도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 눈으로 우리 형편을 보시고 우리의 행동도 보시고 우리 몸짓도 보시며 심지어 우리 마음의 움직임까지 보십니다. 높으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세요. 하나님께서 지금 내 생각도 들으시고 내 마음도 보신다고 하시니 여러분은 어때요? 두렵고 부담스럽습니까? 하나님께 들키면 안 되는 게 있어서 두려우세요? 아니면 내 생각과 마음까지도 살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셔서 평안입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이 직접 보고 듣고 책임져 주시는 것은 우리가 받은 특권입니다. 우리 오늘 인생의 깊고 깊은 구덩이에 빠진 듯한 우리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 이 간절한 기도를 부르짖을 수가 있는 거예요. 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듣고 계시기 때문에 너무 놀랍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구할 구원자 찾아 이리저리 방황할 필요가 없어요. 어떤 사건에서도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기도를 할 때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이런 기도를 해야지 그냥 살려 달라고 그냥 붙게 해 달라.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 이 그냥 현실만 붙잡고 기도를 하면 공허하다 이거예요.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 적 용 질 문 >
= 사람들 앞에 펼쳐 놓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사건이 있습니까?
= 회개를 위해 누구를 무엇을 찾아 방황했습니까?
= 하나님께서 귀로 들으셨고 눈으로 보셨음을 믿습니까?
=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들 사람들이 이러고 ,저러고 해도 우리들 교회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거는 이건 기가 막힌 일인 것 같아요. 이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가 자기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한 목자님의 나눔이요. 저는 사람들의 외침에 주눅이 들어요.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고요. 요즘 새벽에 탑차 차를 끌고 배송을 해서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냉장고에 들어가는 일을 하니 사람들의 눈에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의식이 됩니다. 우리들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주신 장로라는 직분이 가벼운 자리가 아닌데 세상에 돈 권세에 왠지 눌리고 주눅이 드는 것이 속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묵상이 됐습니다. 수치를 펼쳐 놓으셨네요. 웬디 정이 유능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싫으면 언제든지 버리고 가는 것처럼 저도 또한 그 웬디 정과 같은 죄인이라고 인정이 되고 묵상이 됩니다. 이분은 아주 그분의 표현대로 배운 거 가진 거 없어도 구속사를 늘 좍 꿰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을 살리는 거예요.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가 난무하잖아요. 맨 날 잘 된다는 얘기만 하는데 그 후손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그러잖아요. 우리는 의인의 후손은 결백함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 구속사를 깨달아야 된다.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의 기도. 첫째 뭐라고요? 왜 기도해야 돼요?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 때문에 죽어야 되는 게 아니고 기도를 해야 되는 기도를 입만 열고 가면 안 되는 거예요. 말씀을 붙잡고 해야 되는 거예요. 말씀을 붙잡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 큐티 하라고 지금 큐티 이번 주 QT를 그냥 전부 다 귀로 드렸어요. 그런데 어느 나라의 얘기인가 하고 저거 있었나 하고 그러시지요. 그러니 이 모두 똑같은 얘기인 거예요. 예레미야가 열왕기에 그 기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기도의 목적은
3. 영혼 구원이 목적입니다.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간구한 히스기야는 이제 이어서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인정하고 직면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히스기야가 과연 이라고 했어요. 참으로 정말 진짜 그렇다는 거예요. 앗수르 와의 조롱과 위협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 믿는다. 너는 뭐냐 이러지 않고요. 앗수르 왕이 그 자랑으로 다 나았다, 당신이 다 물리쳤다. 난 따라갈 수가 없어 인정을 했어요. 세상 여러 나라를 황폐하게 할 만큼 강한 나라라는 것도 맞고, 그 신들을 불에 던질 만큼 힘이 세다는 것도 맞다고 받아들여요. 이렇게 닥친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 같아요. 우리들 교회에서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큐티를 한 우리 꿈나무들이 자라서 반드시 대통령도 하고 그래서 그때 진짜 하나님의 말을 쓰는 지도자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해요. 하나님의 말을 아무도 안 써요. 이 나라 위정자들께서 그렇게 인정을 하지 않아요. 정말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기가 막힌 거예요. 직면하지 않아 연약하기 때문에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직면하지 못하는 거예요. 자신이 이 문제 때문에 힘든 나보다 내가 나아야 한다는 굳센 신념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예요. 두려운 것은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 때문에 상처와 피해를 받을 자신의 모습이잖아요. 결국 내가 머물고 싶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거예요. 다 피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내가 빠져 있는 이 구덩이를 직시하고 받아들여야해요. 왜죠? 기도의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이기 때문인 거예요. 이미 내 생각까지 다 들으시고 내 마음까지 다 보신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고 눈을 떠서 봐주시기 때문이에요. 내 믿음으로 증명하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함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힘입어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샤스 왕이다 물리친 거 맞잖아요. 그럼 맞다고 인정을 해줘야죠. 네가 이기면 다야 하나님도 안 믿는 게 이딴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야. 하나님만 믿으면 다예요. 상식이 있어야지 믿음은 상식을 또 넘어서면 안 되는 거예요. 상식이 있어야 돼. 상식이 있어야 초월적인 하나님이 내 편이 돼 주시는 거예요. 자신을 직면하게 되면서 이어서 히스기야는 매우 중요한 기도를 드리는데요.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그런데 19절에 이렇게 얘기를 한 다음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근데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다르다는 거죠. 원하는데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 하옵소서 이거 앗수르 왕한테 한 게 아니고 지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상대방 앞에 가서 또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돼요. 당신이 이렇게 바라는 비는 대상은 나무와 돌 뿐이므로 내가 멸했어요.이딴 얘기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강한 앗수르가 조롱하고 위협하는 문제를 직면하고 인정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앗수르가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앗수르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약함 때문이었어요. 이 사람이 30점 40점도 안 되는데 그 밑에 사람은 10점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 나라들이 믿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나무와 돌로 만든 우상이었기 때문에 앗수르를 막지 못하고 진멸을 당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이렇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딱 펼쳐놓고 기도를 하니까 사태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신 거예요. 정말 구속사를 모르면 사태 분별이 안 돼요. 남이 와서 너 잘한다, 너 잘한다, 그 거짓 선지자처럼. 그럼 다 훅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고 히스기야 드디어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부릅니다. 드디어 19절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 보낼 때 뭐라고 했어요? 이사야 보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그랬잖아요. 이제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간 문제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자기 문제를 다 인정하면서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 기도하니까 이사야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되심을 저절로 고백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기도할 줄 몰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잘 몰라도 예배의 자리에 올라와 함께 예배드리고 목장에 나아가 지체들의 기도와 또 이제 같은 나눔을 듣다 보면 어느덧 우리 하나님 여호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의 예배와 한 번의 목장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짧은 구절에 드디어 우리 히스기야가 여호와여, 여호와여, 여호와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 네 번 읽어 나오는 거 앞뒤로 찾아봐. 여호와, 여호와 여호와여 여호와 여기 하나님 여호와여 히스기야 거기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핵심이 뭐예요?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 하옵소서 이제까지 일어난 일 다 들으셨고 다 보셨으니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를 저 무서운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옵소서 구원 하옵소서 간절하게 외치는 거예요.
근데 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반드시 건져주셔야만 할까요? 이스라엘의 간절한 기도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19절이에요,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면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아니고요. 구원하시면 하나님이다 있다는 얘기가 아니고요. 이사야를 통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이제 말씀을 이루시기 때문에 홀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이루시니까 이 목요일 큐티 예레미야 30장도 내 말을 기록하라고 하셨잖아요. 야곱의 반란 가운데 고통 가운데 철필로 기록한 것처럼 내가 이 고난이 있어서 QT를 기록했더니 이게 70년 후에 이루어질 예정이잖아요. 예레미야도 그렇고 저도 수십 년 전에 말씀 지금 그대로 다 이루어졌죠. 그래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오늘 말씀만큼 기록하고 오늘 나에게 통곡과 에브라임의 탄식을 위하여 그거는 멍에가 익숙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셨기 때문에 라엘이 날마다 통곡하고 에브라함이 탄식한다는 거예요. 이 땅에서 모든 걸 갖춘 사람이잖아요. 그죠? 레아에 비해서는 유다에 비해서는 그래서 주여 하나님이신 줄 알게 되었어요. 오늘 만큼만 기록하고 또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그러니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알겠습니다. 기록하고 기도하는 그만큼 두려움이 물러나는 거예요. 여호와여, 여호와여, 여호와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여호와여가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왜 구원하셔야 돼요? 모든 나라 백성이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심을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경험하여 깨달아 알기 위해서라고 해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심지어 지금 저렇게 하나님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위협하는 앗수르왕 산헤립 조차도 온 천하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믿게 되도록 우리를 구원 하소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쪽, 저쪽 미워할 게 아니라 전부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 구원이에요. 우리가 하는 모든 사명의 목적은 오직 영혼 구원이에요. 다른 모든 것은 다 이 최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인 거예요. 결론이 영혼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교회가 부응하고 많은 사역을 한들 뭐 하겠어요? 그저 세상에 많은 기관 중 하나일 뿐인 거예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최고의 뜻이 뭐예요? 한 영혼이 주께 돌아와 구원받는 거예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구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따라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 하소서 부르짖는 기도도 그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역에 초점이 오직 구원에 맞춰져 있어요. 그랬더니 저절로 창조적인 사역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어디서 배우고 자격을 따고 유능한 사람들을 모시고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예배를 드려도 목장으로 모여도 모든 심방에서 모든 경조사에서 하여튼 우리 관심은 오직 영혼 구원에 있었어요. 한 영혼 예수께 돌아오길 바라며 거기에 함께한 모든 지체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섬기게 하셨어요.이걸 제가 처음부터 설계하고 계획해서 했겠습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죽었다가 살아난 구원이 확실하니까 그것만 보였어요. 그렇게 주께 돌아오는 지체들이 생기니까 계속 그것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늘까지 이어지게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모이는 게 아니고 영원히 복음이 돼야 돼요. 가치관이 올바로 서야 되는 거죠.
저는 지난 주일에 99세를 사신 새어머니 장례를 통해서 그 이복 여동생이 지금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지 50년이 훨씬 넘었네요. 그동안 얘를 전도해도 안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3일간 계속 예배를 드리면서 마지막 화장을 할 때 그때 기다릴 때 정말 마지막 순간에 영접 기도를 따라 했어요. 그때가 정말 전도할 때더라고요. 그 화장하는 그 시간 우리 어머니가 내가 죽어야 그 아이가 믿으려나! 하시더니 정말 죽으셔서 믿게 됐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이라도 우리 자녀들이 다 믿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찾아오시게 될 줄 믿어요.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거예요. 큐티도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것이고 우리 인생도 우리 삶을 주님의 삶에 맞추는 거예요. 그게 거룩이에요. 그게 구속사를 사는 인생입니다. 행복이 아닌 거룩이 목적인 인생이고요. 성공이 아닌 구원을 향해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구원을 목적으로 기도할 때 우리를 구원 하옵소서의 기도가 100% 응답되는 기도가 될 줄 믿습니다. 7천 배의 응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3일 동안에 한 사람을 공략하고 예배를 주셨어요. 영혼 구원이에요. 지금 딴 사람 다 예배 다 교회 다니는데 위로받아야 될 일이 뭐가 있어요? 그 한 사람을 구원을 해야지 안 그래요 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모든 수치를 다 드러내고 간증하고 장례식마다 그렇게 하셔야 돼요. 때마다 위로 예배 인간에게 다른 모두 자기에게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 적 용 질 문 >
= 요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그 기도는 왜 응답되어야 합니까?
= 기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 삶의 최고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까?
요즘 광주에서요. 예배 후에 예전 우리 가족 찬양처럼 가족 인터뷰가 있어요.이제 모든 게 우리는 정말 요새 시간이 없어서 그걸 못하는데 그래서 이제 지난 주일에 한 부부 가정이 무대 위로 올라왔어요. 남편 집사님은 토목 회사 대표인데 최근에 종합 건설사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그새 계약금을 양도자 측에서 그냥 최종 잔금만 치르면 되는데 겨우 3일을 남겨놓고 계약금을 두 배로 물고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거예요. 왜냐 갑자기 그 회사가 42억짜리 낙찰 받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수하려고 했던 그 회사가 낙찰을 3일간 있다가 받았으면 너무 42억짜리 공사가 들어올 뻔했는데 3일 전이니까 인수받으려고 사람도 구하고 막 그냥 대출도 받으면서 준비를 다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 그냥 뭐 눈앞에서 종합건설사가 눈앞에 사라지게 되었대요. 그런 얘기를 하니까 우리 이제 목사님이 항상 공동체에 묻지 않고 먼저 일을 저질러서 걱정이 되었는데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3일을 남겨놓고 옷을 찢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허락하신 것 같네요. 앞으로는 모든 것을 공동체에 먼저 묻고 가시면 좋겠어요. 저처럼 거기도 인터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내 집사님은 남편은 그걸 지금 못 받아서 난리가 났는데 최근에 남편이 예비 목장 양육을 받는데 그 과제물에 몇 년 전에 주식으로 날린 돈이 3억이 아니고 7억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예요. 그건 그냥 계약이 파기된 것보다 이게 너무 분해가지고 주일 예배도 빠지고 남편도 예목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하셔가지고 그래서 이제 그 가정으로 신방을 다녀왔는데 또 목자님 아내 집사님은 너무 억울해서 옷을 찢고 싶었을 텐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물어보니까 아니 이 일로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우리 남편을 많이 혼내줄 거라고 잔뜩 기대했는데 남편이 잘못했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하시고 부부가 이제는 목자가 되어 사명을 감당하라 그 말씀만 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또 처방이 뭔가 하면 아니 오늘 말씀처럼 옷을 찢는 사건을 통하여 굵은 베옷을 입어야 하는데 아내 집사님이 화려한 새 왕복만 찾는 것 같아서 일부러 남편을 혼내지 않았다고 해드렸어요. 두 분 다 목자를 시키면 교회를 떠나겠다고 자꾸 말씀하시는데 이 일로 사명의 자리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올라온 자녀들에게도 말을 시켰어요. 엄마 아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나씩 얘기해 보라고 그랬어요. 둘째 딸이 엄마가 집에서 술 좀 그만 마셨으면 좋겠어요, 폭탄을 터뜨려서 참고로 이 남편과 아내 집사는 광주 채플에서는 대표적인 선남선녀예요. 남편은 술 마시는 거 너무 싫어하는데 아내는 청소년 때부터 마시던 술을 끊지 못해서 집에서 매일 술을 마신다고 하면서 주식 이렇게 많이 손해 봤다고 억울해할 게 하나도 없어요. 본인도 술 못 끊으면서 그래서 이 집사님의 나눔과 아이들의 짧은 나눔에 이제 은혜와 감동이 있었는데 대구도 예배 끝나고 그런 가족 인터뷰를 좀 하셨으면 좋겠고, 앞으로 이제 또 시간이 있는 교회에서는 옛날에 우리 가족 찬양했거든요. 노래를 잘하는 집은 찬양도 한번 연습해서 하게하고 그래서 이제 이분이 승진을 굉장히 잘했더라고요. 남편 집사님이 고난 가운데서 이사야를 찾고 예목을 받음으로 사건이 해석이 되고 여호와를 부르짖으며 사명을 감당하게 됐는데 갑작스럽게 주식 시장에 투자한 회사가 망했고 투자의 대부분을 날렸어요. 엄청난 돈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외로움과 자책감. 하나님과 멀어진 거리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저는 지금 교회를 나오는데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있었고, 주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제 자신과 판단을 믿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 삶의 방향키를 하나님이 아닌 돈에 맡기고 있었던 거죠. 그러나 이번 말씀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저의 어지러운 시기에도 모든 것을 때에 맞게 지으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이번 계약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것이다,‘라고 믿었고, 결과가 엎어 졌을 때 큰 실망이 찾아왔지만 제 마음속에 주님은 함께 계셨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 길 끝에서 주님께서 새로운 문을 열어주시라는 소망도 품고 있습니다. 이분은 그 종합건설사 인수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술도 못 끊지 예목도 안 받았지 이러다가 잘 됐으면 어쩔 뻔했어요. 우리는 다 허무한 인생이야. 밑동 잘린 나무. 예수 믿고 여호와여 나를 구원 하옵소서 하는 기도하는 인생이 새로운 인생인 줄 믿습니다.
말씀 맺어요.우리를 구원 하옵소서’의 기도는 첫째,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그것은 기도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 목적인 거예요. 나 잘 먹고 잘 살려고‘가 아니라 영혼 구원이 목적이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이것이 너무 간과돼 있어요. 본문에 11절에 하나님 말씀이 막 14번 나오는 거예요. 지금 여호와의 말씀이 이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 말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나님이 주 지금 이제 준비 없이 말씀 없이 여러분들이 무슨 기도를 해요 이 구속사를 끊임없이 깨닫고 그 가치관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응답인 줄 믿습니다.